상하이 여행기 3, 미국과 중국
나는 도서관을 좋아한다. 책을 좋아하는 내게 마음대로 책을 골라 읽을 수 있는 뷔페 같은 곳이기에 좋아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워낙 많은 시간을 보냈다 보니 책에 둘러 쌓여 있는 것이 마음의 편안함을 주어 그 공간 자체가 좋아졌다. 그래서 그 도시에서 가장 큰 도서관이나 가장 큰 대학교의 도서관을 들어가 보는 것을 좋아한다.
상하이를 걸어 다니다 tourist information에서 획득한 지도에 상하이 도서관이 크게 강조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루는 상하이 도서관에 방문하게 되었다.
상하이 도서관에서 재미있는 잡지를 발견하였다. 한국의 도서관에서는 한 번도 볼 기회가 없었던 북한에서 나온 잡지였다.
가장 가까운 나라이지만 가장 접하기 어려운 나라인 북한이다. 중국의 도서관에서 접할 수 있는 책 중 영어를 제외하고 (영어 책조차도 많지 않았다.) 유일하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이었다. 김정은에 대해서 참 여러 가지의 이유로 찬양하고 신격화하는 것이 흥미로웠다.
대부분의 글들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크게 와닿지 않는 글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굉장히 흥미롭게 읽은 논평도 하나 있었다.
제목은 "제국주의자들이 떠드는 <세계화> 론의 변동성"이다.
나는 지금까지 세계화에 대해서 항상 큰 가치를 두고, "세계화"라는 것은 언제나 좋은 방향성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라나면서도 한국적이고 전통적인 가치관은 대부분 구시대적이고, 한국이 새롭게 받아들이고 있는 세계화적 가치는 멋지고 긍정적이라고 많이 생각했다. 한국에 대해 감사한 마음보다는 비판적인 마음이 더 많이 있었다. 그래서 항상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살펴보기 위해 한국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했다. 대략 20개국을 여행했고, 어린 시절 미국 매릴랜에서 몇 달, 시애틀에서 한 달을 거쳐, 대학 시절 탄자니아에서 2주, 터키에서 두 달간 봉사활동을 해보았으며, 핀란드와 미국 보스턴에서는 14개월 정도 살아보았다. 참 많은 나라에서 여행도 하고, 살아도 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득 깨닫게 된 것 같다. 내가 막연하게 가치 있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세계화란 서구화, 그중에서도 미국화인 경우가 많았다. 많은 나라들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는데, 사람들은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손에는 아이폰을 들고 구글링을 하다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피고, 유튜브 쇼츠를 관람하다 왓츠앱을 켜서 답장을 해서 친구들을 만나서 영화관에서는 할리우드에서 개봉하는 영화를 보거나 그게 아니라면 집에 가서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본다. 거의 모든 나라를 가도 공통적인 현상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제는 미국적인 것이 되고 있다. 미국적이지 않은 것은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처럼 우리도 모르게 여기고 있다. 내가 처음에 러시아를 가려고 했을 때 왠지 모를 두려움이 있었던 것, 그리고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도 어쩌면 우리가 인지하지도 못한 채 미국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에서 야기된 것 같다.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위에서 소개한 천리마라는 잡지에서 서술하고 있다
《세계화》 론의 목적은 미국을 《세계화의 표본》 : 《유일한 지도자》 로 내세우고 미국과 그에 종속된 자본주의열강들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신식민주의적 국제질서를 세우려는데 있다.
(중략)
반인륜적인 《총기문화》와 인종주의가 범람하는 미국사회의 사상문화는 인민대중의 인권을 짓밟고 말세기적이고 퇴폐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표본》으로 내세우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미국 보스턴에서 14개월 동안 살게 되면서 미국의 장점을 많이 배웠지만, 그만큼 단점 역시 굉장히 많이 배웠다. 미국에는 미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총기가 있다. 일부 지역에서 총기사고는 너무 자주 있어서 이제 큰 뉴스거리조차 되지 않기도 한다. 여전히 시스템적으로 인종차별이 있다. 미국에 오래 살다 보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사회적 인프라를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은 건강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게 느껴진다. 이 세상에서 돈이 제일 중요한 것이 너무 자명하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돈으로 안전, 시간, 행복도 살 수 있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미국식으로 세상을 바라 보는 것이 반드시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도 하나의 관점일 뿐임을 인지하면서 사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일한 해가 아닌, 여러 가지 정답 중 하나인 것을 인지하고만 있으면 그것만으로도 우리의 관점은 굉장히 풍부해진다.
세계화의 문제점에 대해서 서술한 것은 천리마라는 잡지가 유일한 것은 아니다. 1997년 한스 페터 마르틴과 하랄트 슈만은 <세계화의 덫>이라는 책을 통해 세계화가 가져올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 서술한 바 있다.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나라 간 무역장벽과 관세 벽이 사라진다. (중략) 세계화 덕분에 국경 장벽과 관세율이 낮아짐에 따라서 소비자들도 해외직구를 통해서 해외기업의 물건을 집에서 사들인다. 이제 글로벌 1등 제품만 살아남는 사회로 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그 글로벌 1등 제품은 거의 대부분 미국제품이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미국식으로 생각하고, 미국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국가들 예를 들어 중국, 러시아, 이란, 등의 나라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2024년 현재 압도적인 패권을 가지고 있는 1등 국가다. 세계 대전이 끝난 이후 단 한 번도 미국을 견제할만한 나라는 나타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최근 중국이 매섭게 성장했고, 그 결과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하며 서로 패권을 다투게 된 것이다. 미국은 멋지고 중국이 나쁘기보다는, 미국은 오랜 시간 동안 1등이었고, 중국은 1등의 자리를 넘보는 2등인 것이다. 서로 경쟁하고 있는 것 뿐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자유롭게(규제 없이) 디지털 전환을 시도한 나라 중 하나입니다. 공산당 주도로 거의 모든 부야에 디지털을 도입해 버렸습니다. 덕분에 중국의 대표 플랫폼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한 때 시가총액 세계 6위와 8위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중략) 규제가 적다 보니 안면인식, AI닥터 등 다른 나라에서 금기시하는 분야까지 매우 활발하게 AI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 <AI 사피엔스>, 최재붕
중국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공산당 중심의 아주 강력한 중앙통제를 통해 사회를 발전시키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는 미국의 전략과 자명하게 다르다. 그러나 유일아주 강력한 중앙통제를 통한 성장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정도의 경제적 성장을 가능하게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해서 단순히 중국을 비난하는 것은 세상을 너무 평면적으로 보는 시선일 수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1등인 미국과 정치 외교적으로는 가깝지만, 2등인 중국에게 많은 물건을 팔아야 하는 참으로 애매한 위치에 선 것이다. 1등과 잘 지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2등을 척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슬기로운 처세술이 필요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은 맞고 미국은 틀리다는 것도, 중국은 틀리고 미국은 맞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둘은 현재 전 세계의 패권을 놓고 서로 경쟁하고 있고, 각각의 관점은 서로가 택한 일종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세상에는 항상 유일한 해가 있지 않다. 언제나 답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후보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기억하는 것 만으로도 우리의 삶과 관점은 굉장히 풍부해진다. 이 글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하는 "세계화"라는 것이 정말로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