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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보스턴 혼혈아기 아빠의 6주 차 육아일기

by 안건

벌써 아이가 태어난 지 6주가 되었다. 지난번 글에도 적었지만,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6주 만에 벌써 3.6kg으로 태어났던 아들은 6kg가 넘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아이는 벌써 눈을 똘망똘망 뜨고 나를 쳐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제는 엎드려서도 벌써 자신의 목을 조금씩 들어 올린다. 심지어는 하루에 몇 번 나를 쳐다보며 천사 같은 미소도 지어준다. 글을 써서 그 생생함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


잠이 부족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전체 수면 시간은 아주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길게 지속되는 시간이 좀 부족하다 보니 아무래도 명료한 사고를 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번 주부터는 아내는 9시에 아이를 모유수유 한 이후 잠을 자고, 12시에는 내가 젖병을 이용하여 아이에게 밥을 주고 있다. 그래서 아내도 5시간 정도 연속으로 잠을 잘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9시에 아이와 아내가 잠에 들면 12시까지 한 3시간 정도 홀로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


처음 며칠은 워낙 졸리고 피곤해서 그냥 넷플릭스 드라마를 관람했다. 일어나서 하루 종일 아이 밥 먹이고, 나와 아내가 밥 먹고 하다 보면 거의 하루가 끝난다. 사실 그렇게 혼자 조용히 넷플릭스를 보는 것도 꽤 즐거운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영상만 시청한다면 내가 지금 느끼는 이러한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금세 잊어질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여전히 피곤하지만, 이렇게라도 지난 3주간의 기록을 남겨보고자 한다.


아이의 변화


3주 차가 지나고 6주 차가 되니 이제는 아이가 낮과 밤의 행동이 확실히 다르다. 낮에는 눈을 뜨고 세상을 관찰하는 시간이 확실히 많고, 밤에는 밥을 먹기 위해서 일어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쭉 잠을 잔다. 보통 8~9시에 잠에 들면 처음에는 12~1시쯤에 깨고, 그 이후에 3시, 5시, 6,7시 이런 식으로 점점 잠에서 깨는 텀이 아침에 가까워질수록 짧아진다. 한 5주 즈음되었을 때부터 눈과 입을 함께 진짜 웃음을 짓는다. 이 웃음 한 번이 내 하루의 하이라이트다. 너무 피곤하다가도,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그 모든 피로감이 다 없어진다. 물론 그러고 나서 울기 시작하면 바로 다시 피곤해진다. 이제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면 그 물체를 눈으로 따라가기 시작한다.


인류애


좀 웃긴 이야기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조금 더 애틋함이 생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80억 명의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뱃속에서 태어난 것이다. 감사하게도 아내가 진통을 하는 모든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아내가 고통에 비교적 무덤덤한 편인데 산통이 있을 때는 고통 10점 만점에 8점을 이야기했다. 고통이 너무 심해 제대로 사고도 못하는 정도였다. 이렇게나 힘든 것을 겪어야만 아이가 태어난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 아이가 아내에 품에 안기는 순간, 그리고 내가 처음에 아이를 안았을 때의 감동은 글로 전혀 표현을 할 수 없는 수준의 깊은 감동이었다. 세상에 모든 인간들이 다 이렇게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가 길러준다. 내가 내 아이에게 이렇게 모든 것을 다 주면서 사랑하고 있다. 이렇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보는 것은 처음이다.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과는 또 다른 차원의 마음이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부모에게는 이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않았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잘해야겠다는 애틋함이 생긴다.


자아: "나"


지난 6주간 "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지 않고 살았다. 이것은 좋은 점이기도 하고, 또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새로운 변화로써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당연히 아들이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6주 차의 신생아는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로 해주지 않으니 아이가 울면 지옥의 객관식 시험 시작이다. 배가 고픈가? 기저귀를 갈아야 하나? 트림을 시켜줘야 하나? 안아줘야 하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 네 가지 안에서 정답이 나오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을 때가 항상 문제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봤는데 여전히 아들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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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제 저 초록색 베이비케리어로 아이를 안고 혼자 이상한 춤을 추며 아이를 달래 본다. 어구 둥둥하며 무릎을 궆이고 내 이상한 나름의 스텝도 밟아본다. 입술로 푸르를 르~~ 이상한 소리도 내어 본다. 이중에 무언가가 효과가 있었는지 그냥 적당히 시간이 지나서 울음이 그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울음이 그치면 그제야 안심이다.


하루의 대부분이 이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아이의 밥을 먹이고, 잠깐 아이가 잘 때는 겨우 나도 숨을 돌리며 휴식을 취하고, 그 이외에는 계속 아이의 울음을 그치는 것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 나의 공부, 연구, 일, 커리어에 대해서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고민해보지 않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아이는 너무 예쁘고 잘 크지만, 나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가고 있는 것인가 묘한 감정도 든다. 생각을 이렇게 하지 않으며 살아본 시간이 처음인 것 같다.


두 번째 화살


아내가 낮잠을 잘 수 있도록 아이를 보고 있을 때에는 시간이 빨리 가기를 바랄 때도 많다. 아이를 혼자 2~3시간 보고 있으면 계속 움직여야 되고, 허리도 아프고 팔꿈치도 아프다. 처음에 아이를 제대로 안는 방법을 모르는 상태로 달래려고 열심히 어화둥둥을 팔힘으로 버티다 보니, 왼쪽 팔꿈치에 테니스엘보가 왔다. 테니스도 안치는데 육아하느라 팔꿈치가 아프다. 참 웃긴 일이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보니 시간이 빨리 지나가거나 아이가 좀 제발 잤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가끔 너무 아이가 울면 솔직히 짜증도 나는 것 같다. 이건 첫 번째 화살이다.


그러고 나서 나는 사실 두 번째 화살도 스스로 맞았던 것 같다. 아이한테 짜증이 났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에게 짜증이 난다. 메타 짜증이랄까.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육체적으로 힘들다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난다니 스스로 "내가 이래도 아빠의 자격이 있는 것인가" 자책하기도 한다. 이게 두 번째 화살인 것 같다. “첫 번째 화살은 맞을 수 있지만 두 번째 화살은 맞지 마라"라고 불교의 <잡아함경>에 나와 있다.


육체적으로 힘들면 순간적으로 짜증도 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잠깐 일어난 짜증을 알아차리고 다시 아이의 울음을 달래주면 되지 않을까. 굳이 이미 일어난 짜증, 사실 이미 지나가 버린 짜증을 굳이 다시 들고 와서 스스로 마음을 자책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앞으로는 두 번째 화살은 적어도 맞지 않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아내와의 시간


아내와 둘이 보내는 시간이 그립다. 아내와 함께한 지 벌써 6년이 넘었다. 핀란드, 터키, 한국, 미국을 돌아다니며 살 때마다 모든 것이 변했지만, 아내와 내가 둘이 함께 무엇이든 해나간다는 것은 언제나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상수였다. 고민거리가 있으면 언제나 아내와 함께 대화하면서 그 고민거리를 정리하고, 나아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했다. 그 많은 시간들을 소소하게 대화하면서 보내곤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아내와 함께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아내와 단 둘이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다. 밥을 먹을 때 한 명은 거의 아이를 달래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이 밥을 다 먹으면 이제 서로 역할을 바꿔 식사를 끝낸다. 아내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당연히 아내도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잘 모를 것이다. 사실 나도 나 스스로 어떻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오늘은 힘든 점에 대해서도 많이 적게 되었던 것 같다. 이러한 힘든 점들도 잊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힘듬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통해서 느끼는 행복감이 너무도 큰 것은 사실이다. 특히 아이가 한번 웃어주면 그 행복의 강도는 이 모든 힘듦을 금세 이긴다. 너무 행복하면서 너무 육체적으로 힘든 것이 같이 진행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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