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희 Jul 21. 2023

길에서 찾은 답

https://www.youtube.com/watch?v=yWbLNhyzPoQ

글과 함께 들으면 좋습니다.



국방부 시계가 다 돌아갈 때쯤, 나는 국토 대장정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동기와 후임들은 전역 후에도 행군을 하냐고, 사서 고생을 하냐고 한마디씩 했지만, 나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우선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살면서 언제 내가 국토대장정을 하겠는가! 체력도 가장 좋았고,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은 9월의 날씨 또한 최상이었다. 그리고 길을 걷다 보면 답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의 인생에 대한 답 말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때의 나는 확실한 답을 찾고 싶었다. 만약 정답이 있다면 그에 따른 풀이도 존재할 것만 같았고, 그 방법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수십 권의 책을 읽고, 성공한 사람들의 영상도 찾아보고, 인터넷에 검색도 해봤지만 어느 누구도 내가 아니었기에, 나의 정답은 없었다. 그리고 어렴풋이 깨달았다. ‘확실한 답”이라는 바보 같은 생각 말고, “나만의 답”을 찾아야 된다는 것을.



전역 후, 답을 찾기 위한 국토 대장정을 떠나며


갈고리풀과의 사투


카카오 맵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가면 안 될 것 같은 길이 나왔다. 풀이 무릎까지 자라있어 밑이 보이지 않는 비탈길이었다. 앞에 보이는 길은 위험해 보였지만 최단 거리였고, 다시 돌아서 간다면 2시간을 더 걸어야 되었다. 더 걷는 것은 죽어도 싫었던 나는 울며 겨자 먹기로 발걸음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런데 풀이 그냥 풀이 아니었다. 갈고리처럼 생긴 풀이 종아리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제발 놓으라고 뿌리치기를 반복하며 다섯 발자국 정도 내디딘 그 순간,


빠졌다. 빠졌다? 풀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도랑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가슴팍까지 올라오는 높이의 도랑에 무거운 짐을 든 상태로 앞으로 넘어져 목, 팔, 다리 안 다친 곳이 없었다. 잠시 동안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이내 몸을 일으켜 도랑에서 빠져나왔다. 보기도 싫던 갈고리 풀에서 얼른 벗어났고 조그마한 터널 가장자리에 걸쳐 앉아서 다친 곳을 소독하고, 몸에 붙은 풀을 떼고 있자니 갑자기 서러워졌다.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였기에 누구도 탓할 수 없었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보인 풍경은 황당하게 아름다웠다. 다리에서는 가족끼리 삼삼오오 낚시를 하고 있었고, 할 일을 마친 해는 떨어지면서 강가는 따스한 노을을 머금고 있었다. 험난한 길을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더니 아름다운 풍경이 나를 반겨주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마음 속 짜증이 눈 녹듯이 사라지면서 평탄한 길에 대한 감사를 하게 되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한다.


30kg가 넘는 짐을 들고, 하루에 8-9시간을 걷다 보니 몸에 이상신호가 감지되기도 했다.


발바닥에 물집이 생겼다. 발가락 양말을 신고, 딱 맞는 신발을 신어 최대한 마찰을 줄여봐도 물집이 생기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물집이 생기면 터트려야 된다. 바늘을 불에 달궈 소독하고 물집을 터트려 물을 빼고, 발과 바늘을 소독하면 끝난다. 하지만 물집은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터트린 물집 사이에는 또 다른 물집이 생기고, 또 터트리면 물집이 또 생기고… 그렇게 물집 마트료시카가 완성된다.


무릎도 안 좋아진다. 사실 나는 오른쪽 무릎이 원래 안 좋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까지 오래 걷다 보면 절뚝이곤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릎 통증이 빨리 찾아왔다. 산행이 많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 보니 더 무리가 간 듯했다. 약국에 들러 소염 진통제를 먹기도 하고, 병원에 가서 진통 주사를 맞기도 했다.( 진료실 안에서 지도를 펼쳐놓고 의사 선생님께서 친히 길도 추천해주셨다.)


정말 많이 아팠다. 하지만 멈추기는 싫었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해야 되는 성격인지라 포기하는 것은 죽어도 싫었다. 결국 완주를 했을 때 1주일은 넘게 절뚝였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뿌듯함이 너무나도 컸다.


감사한 분들


아픈 추억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감사한 인연도 많이 만났다. 감을 파는 아주머니께서 걷느라 고생한다고 감을 10개나 주셔서 먹은 기억도, 너무 배고파서 우연히 들어간 중식당 사장님께서는 젊었을 때 자기도 국토대장정을 했다고 공짜로 밥을 주시기도 했고, 텐트를 필 곳이 없어 방황하다 들어간 교회에서 만난 목사님 가족과 예배도 드리고, 집에 데려가 주셔서 재워주시고, 아침까지 사주신 기억도.. 처음 본 내가 뭐라고.


그래서 그 때의 나는 답을 찾았을까?


반쯤 찾았다고 생각한다. 

어렴풋이 알겠더라 나의 답을. 

다른 사람들을 통해 얻은 것이 아닌 직접 내 발로 걸어서 얻은 나의 답을. 

그런데 뒤돌아서야 깨달았더라 나의 답을.


https://youtu.be/rQPwUfTpW4M


그리고 지금


3년이 지났기에 기억은 희석되었기에 그때의 일기장을 펼쳐보고 글을 썼다. 그런데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들을 이때도 똑같이 하고 있었고, 그에 대한 나만의 답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는 깨닫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인생은 뒤돌아볼 때 비로소 이해되지만, 우리는 앞을 향해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다.”


"길" 이라는 노래를 듣다 보면 수많은 물음만 던지고, 답은 알려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서야 이해가 될 것 같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가사를 쓴 작사가도 현재를 살고 있기에 미래의 답을 다 알지 못한다는 것을.


“발 닿는 그대로 힘차게 달려 나가리라. 속도와 방향에 구애받지 않으리라.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리라. 그리고 이 모든 다짐을 잊지 않으리라.”


답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바꾸기 나름이라는 것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