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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메이커 Aug 02. 2020

거친 숨소리,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세계 14봉 중 가장 높은 4봉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고쿄 리 정상

* 10일 차, Gokyo(4,790m) → Gokyo Ri(5,360m) 2시간 소요 → Gokyo(4,790m) 1시간 소요



2017.10.25, 수 오전


  어제는 방을 함께 쓰는 아저씨의 코 고는 멜로디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잠이 들었다. 밤사이 2~3번 깨긴 했으나 내일 하루 이 곳에 더 머무를 수 있었기에 부담 없이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몸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오며 06시 45분 자연스럽게 눈이 떠졌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면서부터는 날씨가 춥고 물을 자주 마시다 보니 화장실 가는 횟수도 평소보다 많아졌다.  


  일어나서 밖을 보니 생각보다 날씨가 좋았다. 왠지 기대되는 하루의 시작. 오늘은 과연 고쿄 리(Gokyo Ri)를 등반하며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어떠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이른 아침부터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고 계란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간단하지만 5천 원이 넘는 아침식사.


  08시 10분 왼쪽으로는 고쿄 호수가 있는 돌다리를 지나 고쿄 리를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막상 밖에 나와보니 고쿄 리 정상에 올라서서 아름다운 뷰를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일어났을 때와는 달리 아침 일찍 안개가 자욱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안개가 걷히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내디뎠다. 


안개가 자욱한 고쿄 호수 그리고 이 곳에 사는 조류.
드디어 간다. 고쿄 리.


  오늘 하루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이곳에서 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평소와는 달리 큰 부담감이 없던 탓인지 마음은 편안해서 좋았지만 그 덕에 몸이 조금은 퍼진 것 같았다.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다. 며칠 전 새벽 에베레스트 산봉우리 뒤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기 위해 칼라파타르 등반을 할 때보다 거의 2배 정도는 더 힘든 느낌이었다. 경사가 45도를 넘어 50, 60도를 넘었고 심할 때는 70도를 넘는 거 같았다. 도저히 속도는 안 났고 손에 잡고 있는 스틱에 의지하여 거북이걸음으로 아주 천천히 올랐다. 해발고도 5,000m에 가까운 곳에서 2시간 만에 고도를 600m 정도를 더 높여야 하는 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땅에 엎드려 기어가는 건지 두 발로 걸어가는 건지 알 수 없는 가파른 경사였다. 몸이 힘들어지니 마음에 가지고 있던 여유는 온대 간대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른 생각은 아예 할 수도 없었다.


  '아, 너무 힘들다. 미치겠어. 쓰러질 거 같아...'


  몸에 힘은 빠지고 정신은 흐려지는 거 같았지만 절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왕 시작했으니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번에도 정상에 오르고 싶은 마음만 간절할 뿐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파른 경사와 높은 고도로 인해 숨이 멎을 것 같았고 아무리 걸어도 제자리걸음이었다. 몇 발자국 가지 못해 계속해서 멈춰 서서 쉬고 걷기를 반복하며 올랐지만 그래도 너무 힘이 들었다. 도대체 이 고산과 오르막은 언제 적응이 되는 건지, 정상은 어디에 있고, 언제 도착할 수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알 수도 없었다. 얼굴은 찡그려지고 심장은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고쿄 리 정상에 올라가고 싶었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오르고 또 올랐다. 히말라야에 와서 개인 페이스의 중요성을 느꼈기에 그 깨달은 것들을 떠올렸다. 방향, 지속, 여유! 다른 누군가의 속도가 아닌 고쿄 리 정상을 향해 나만의 속도로 여유를 갖고 천천히 걷기.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하며 적용하려고 노력했다.


올라가서 큰 소리로 외칠 힘이 없었다. 성취의 기쁨을 최대한 표현한 게 이 정도였다.


   로지를 나선 지 정확히 2시간이 지난 후 해발고도 5,360m에 위치한 고쿄 리에 도착했다. 내가 약한 걸까, 이 곳이 힘든 걸까. 이 오르막이라는 녀석은 이제 제법 적응될 때도 된 거 같았지만 아무리 오르고 올라도 울고 싶을 만큼 힘이 들었다. 고쿄 리 정상에 오르자 다행히도 구름이 눈 앞에 보이는 여러 봉우리들을 절묘하게 비켜 지나가고 있었다. 그 구름들은 내 발아래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마치 손오공이 되어 구름 위에 떠 있는 거 같았다. 고개만 들면 사방에 파노라마 치는 만년설산들이 만들어내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산들은 마치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거 같았다.


  '와! 말도 안 돼. 이거 그림이야? 진짜야? 내가 이거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감격스러웠고 눈물이 날 거 같았다. 만약 내가 두 다리가 아닌, 헬리콥터를 타고 이곳에 왔어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을까?


왼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가 에베레스트 산.
정말 환성적인 고쿄 리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옆에 계시던 아저씨께서 설명해 주시길 우리 앞에 보이는 봉우리들 중 8,000m가 넘는 고봉만 4개가 보인다고 하셨다. 에베레스트(8,848m), 로체(8,511m), 마칼루(8,463m), 초오유(8,201m), 이 고봉들이 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나 칼라파타르 정상에 섰을 때와는 또 다른 풍경이었다. 그때보다는 조금 더 멀리에서 마주하는 봉우리들이었지만 여러 고봉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360도로 펼쳐져 있는 세계 최고의 만년설산들의 아름다움은 감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고쿄 리는 쿰부 히말라야 코스 중 에베레스트를 비롯한 여러 고봉들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날씨가 좋을 때 고쿄 호수 앞 또는 고쿄 리에 등반하여 사진을 찍거나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다른 곳에 가지 않고 우리 로지가 있는 고쿄 마을에서만 며칠 혹은 몇 주씩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만큼 고생도 많이 해야 하고 숙식으로 인한 비용도 많이 들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었을 텐데 이렇게 내가 직접 경험 후 듣는 이야기들은 무척이나 쉽게 공감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 영상 색깔이 마음에 든다.
세계에서 6번째로 높은 8,201m 초오유를 가리킨다.
구름과 히말라야 산들이 만들어내는 신비로움.
아름답다 가장 높게 솟은 에베레스트 산.
저 멀리 에베레스트 산과 어제 넘어온 고줌바 빙하 그리고 구름.
고쿄 리 정상에 있는 깃발 룽다와 작은 호수 그리고 만년설산.


  잠시 후 마치 꿈같은 관람 시간이 다 끝났다고 알리는 것처럼 구름 떼가 눈 앞을 완전히 가려버렸다. 에베레스트를 배경으로 맑은 하늘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으나 구름으로 인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서 주변 고봉들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다. 보통은 아무리 성수기라 할지라도 구름이 많고 날씨가 흐린 경우 아예 주변 풍경을 감상하지도 못하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라나 나는 이번 트레킹에서 환상적인 히말라야의 자연경관을 감상한 후 기분 좋게 숙소로 향했다. 내려가서 쉴 수 있고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럼에도 고산이고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기에 조심히 내려갔다. 매일 느끼는 중이지만 만약 스틱이 없었다면 이곳을 어떻게 오르고 내렸을지. 올라올 때 미처 감상하지 못한 고쿄 호수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뿜어내는 내 인생에서 본 가장 아름다운 호수였다. 해발고도 5,000m에 있는 에메랄드 빛 자연 속 호수. 마침 구름이 바람과 함께 호수 위를 타고 지나가는 거 같은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본 사람만 공감할 수 있는 이 감정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지. 사진으로 다 담아올 수 없음이 아쉬울 뿐이었다. 믿을 수 없는 이러한 풍경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게 마치 꿈속을 여행하는 거 같았다.


내려오는 길에 마주한 고쿄 호수.
기본 카메라로 담은 풍경. 색 보정 따위 하지 않았다.
왼쪽에 고쿄 마을과 고쿄 호수.
고줌바 빙하.
올라갈 땐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내려가는 길은 가팔랐지만 눈 호강하느라 행복했다.


* 세계 최고봉,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산맥 8,000m 14봉

1. 에베레스트 8,848m
2. K2 8,611m
3. 칸첸중가 8,586m
 4. 로체 8,516m
5. 마칼루 8,463m
6. 초오유 8,201m
7. 다울라기리 8,167m
8. 마나슬루 8,163m
9. 낭가 파르밧 8,125m
10. 안나푸르나 8,091m
11. 가셔브룸 1봉 8,068m
12. 브로드피크 8,047m
 13. 가셔브룸 2봉 8,035m
14. 시샤팡마 8,012m






누군가의 인생에 '울림'을 주는 삶을 꿈꿉니다.

916일 동안 80개 국가, 300개 도시를 방황하였고, 조금 다른 인생을 나만의 페이스로 살아가는 중.


- 개인 키워드 : 동기부여(울림), 가족, 약자, 자신감, 리더십(영향력), 강점, 세계일주, 퇴사(전역), 도전, 성취, 강연, 공감, 글, 코칭, 관계, 멘토, 달리기(러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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