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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쿄 소시민 Jan 31. 2016

사색이 필요하다면

더 깊은 교토 1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고민한다. 취업, 연애, 진로 등의 문제들은 우리의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자유의지를 갖고 있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처럼 대학교에 가면 모든 고민이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에 입학한지 얼마  안 되어서 내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되었다.  정리해야 하는 생각은 점점 늘어갔지만 정리할 시간은 없었다. 드디어 시간이  생긴 작년 9월 교토로 향했다.

사색이 필요하다면 교토
천년수도 교토

  일본 문화수도 교토는 간사이 공항에서 JR하루카를 타고 1시간 10분이면 도착한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사찰과 신사가 17개가 있다는 사실이 이 도시 역사와 문화의 깊음을 잘 설명해준다. 도쿄에는 마을이 900개, 오사카에는 가게가 900개, 교토에는 절이 900개라는 말이 있듯이  그중에서도 대부분은 사찰들이다. 이 명찰들은 일본 불교의 자랑이며 일본 문화의 진면목이다. 특히 일본 불교는 선종 중심이기에 선종의 정신인 공(空), 불변(不變), 지(止), 관(觀)을 잘 보여준다. 수 많은 사찰들 중 동선과 역사적 중요도를 고려한다면 동복사, 건인사, 천룡사, 인화사, 용안사, 은각사는  사색이 필요하다면 가볼 만한 곳들이다.


선종 사찰의 인트로-동복사

동복사 삼문은 교토 3대 삼문 중 하나이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무인 사회로 접어들면서 불교의 중심 또한 교종에서 선종으로 옮겨갔다. 교토 남동쪽의 대찰 동복사는 이러한 시대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교토역에서 208번 버스를 타고 음악을 2~3곡 듣다 보면 동복사에 도착한다. 동복사의 가장 큰 특징은 가지런한 7당 가람배치이다. 삼문, 법당(우리의 대웅전), 방장(주지스님 거처)을  중심축으로 하여 좌측에 고리와 동사, 우측에 선당과 욕실이 놓여있다. 경내를 돌아다니면서 7개 건물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다. 그러나 우리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여기이다.

금당의 뒤쪽으로 가면 하늘을 가로지르는 다리, 통천교가 있다. 방장과 석정을 잇는 회랑으로서 추가 요금을 받지만 꼭 가볼 만하다. 숲 속을 통과하는 회랑을 지나다 보면 산사에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선종 사찰 정원의 정석-건인사

 건인사를 찾아가는 건 꽤 어렵다. 208번 버스 정류장 건너편 꽃집 앞 정류장에서 207번이나 202번 버스를 타고 히가시야마 야스이에 내려서 지도를 보고 골목을 돌아야 한다. 좀 헤매다 보면 주택가 사이에 단아한 삼문이 보인다. 건인사는 동복사와 같은 가마쿠라 시대에 창건한 절이다. 일본 차 문화와 선종의 시조 영서 스님이 창건한 만큼 내력이 깊다.

석정과 동그라미 네모 세모 정원

 입장료를 내고 방장에 들어가면 회랑을 따라서 3가지 정원을 볼 수 있다. 백사의 모래가 펼쳐진 석정, 난해한 이름의 동그라미 네모 세모 정원, 그리고 조음정이 우리를 맞이한다. 참선의 공간인 정원들은 각각의 의미가 있다. 특히 동그라미 네모 세모 정원의 의미는 논란의 대상이다. 그러나 책에 나온  의미보다는 우리가 정원을 보고 고민하면서 부여하는 의미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건인사의 스님들이 그랬듯이 석정 앞 툇마루에서 조용히 백사를 보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은 색다른 경험일 것이다.


지천 회유식 정원-천룡사

세계문화유산 천룡사는 사진에 담기 어렵다.


 건인사에서 나오면 바로 기온이다. 기온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201,203,206,207번 버스를 탄다면 교토 북쪽의 관광지를 연결하는 란덴 전철의 시발역 시조 오미야에 도착한다. 일일 권을 끊고 종점, 아라시야마역에 내리면 바로 앞에 천룡사가 우릴 기다린다.

 천룡사의 하이라이트는 몽창국사가 만든 조원지이다. 14세기 정원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된 이유도 바로 이 조원지 때문이다. 방장에서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몽창국사의 조원지가 미닫이 문으로 살짝 보인다. 그리고 방장을 나서면 그림이 펼쳐진다.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이다. 방장의 툇마루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잘 그린 수채화를 보는 기분이다. 특히 정원이 뒷산과 잘 어울리기에 보기 좋다. 전에 건인사에서 마른 정원을 보아서 그런지 물이 더 반갑다. 연못 수면이 툇마루에 앉은 사람의 시선에 놓여있기에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눈이 편안하다. 툇마루에서 떨어지기 싫어하는 엉덩이를 붙잡고 내려가면 조원지를 중심으로  돌아볼 수 있다. 지천 회유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기 좋은 곳이다.


명품(名品)-인화사

  다시 란덴 전철에 몸을 실으면 왕실 문적 사원 인화사에 도착한다. 문적 사원이란 연호를 하사받은 절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로열 브랜드이다. 그만큼 어전과 신전에서는 형용하기 힘든 고급스러움이 담겨있다.

비가 내리는 회랑

 절 어디를 둘러보아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진다. 꾸미지 않았지만 격이 높은, 정갈한 명품이다. 비가 내리는 듯한 회랑을 지나면 사색을 할 수 있는 신어전의 툇마루가 우리를 맞이한다.

 신어전 마루에서 바라본 풍경은 내가 교토에서 본 풍경 중 가장 아름다웠다. 마루에 앉아 정원과 오중탑을 바라보니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초라한 노지가 연못 위에 있는 한편, 화려한 꽃과 오중탑이 한 화면 안에 있다. 극과 극의 대비, 그로 인한 쓸쓸함. 일본 미의 정석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싶다면 인화사가 제격이다. 우선 관광객이 적은 편이다. 앞의 천룡사, 뒤에 볼 용안사나 은각사는 관광객으로 넘친다. 정원을 감상하거나 사색할 시간도 없다. 이에 비하여 인화사는 세계문화유산이지만 관광객이 잘 안 오기에 여유 있게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전에 말했듯이 교토 제일의 명품 풍경이 있다. 신어전 마루에 잠시 짐을  내려놓고 멍하게 있다 보면 고민에 대한 답이 떠오를 지도 모른다.


선의 공간-용안사

  존 케이지를 비롯한 많은 현대 예술가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준 용안사는 금각사 근처에 있어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시간이 있다면  한 번쯤 들려야 할 사찰이다. 인화사에서도 그리 멀지 않아 란덴 전철과 도보로 1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했던가 , 개인적으로는 용안사에서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지 못 했다. 너무 기대가 커서 그랬는지, 전율은 오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많은 관광객들이 마루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던 이유도 어쩌면 그 오지 않는 전율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고요한 백사의 정원을 보면서 약간의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변하지 않는 돌과 흐르는 듯한 모래는 무엇이 영원하고 무엇이 변하는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얼핏 배운 불교에 관한 지식들이 떠올랐다. 불변하는 것과 변하는 것 중에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는 정원이었다.


일본 문화의 꽃-은각사

향월대 은사탄과 은각. 은각은검사 결과 은이 붙은 흔적은 없었다.

  용안사에서 59번 버스를 타고 센본이마다가와에서 203번으로 갈아타 은각사로 향했다.  아슬아슬했다. 교토의 사찰들은 대부분 4시 반이 마지막 입장이기 때문에 항상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 4시에 정류장에 내려 입구까지 달려가니 4시 10분이었다. 숨을 고르고 일본 문화의 꽃, 은각사 관람을 시작했다.

 무로마치 막부의 정치적 혼란으로 나라가  분열될 때 역설적으로 일본 문화 능력은 최전성기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 축적된 문화 능력의 결과물이 은각사이다. 많은 사람들은 금각사와 은각사를 쌍둥이 절로 생각하지만 사실 100년 정도의 시간적 차이가 있는 엄연히 다른 절이다. 무로마치 막부의 8대 쇼군 요시마사의 유언으로 완성된 은각사는 가마쿠라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에 축적된 무가와 선종 문화가 피어난 사찰이다. 동백의 참배로 를 따라 들어가면 향월대, 은사탄과 은각이 펼쳐진다. 절로 차분해지는 느낌이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금각사에 가기 때문에 분위기 또한 조용한 편이다. 차분한 사색과 함께  일본 문화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나는 오직 족함을 알 뿐이다
용안사 쯔쿠바이

  교토의 절들을 순례하다 보면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고 못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가지 가르침을 주기는 한다. 오유지족(吾唯知足). "나는 오직 족함을 알 뿐이다" 현재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는 자세이다. 얼핏 들으면 현실과 타협하는 일종의 패배주의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러나 오유지족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교리에 의하면 모든 고통과 고민은 헛된 욕망에서 나온다. 따라서 그러한 욕망을 제어하는 것이 해탈로 가는 첫걸음이다. 여기서 오유지족의 자세가 필요하다. 당장 나에게 무엇이 없는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취직을 걱정한다면, 취직에 대한 걱정과 집착보다는 내가 지금 어떤 직무 능력을 갖고 있으며 어떤 스펙을 갖고 있는지 먼저 생각하는 것이다. 내 주변의 것에 감사하고 만족한 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들 고민의 대부분은 풀릴지도 모른다.   



*식사

 식사는 건인사를 돌아본 후 기온에서 하거나, 기온에서 버스를 타고 산죠가와라마치에 가는 것이 좋다. 점심시간 기온에서는 교토 정식 요리를 부담 없는 가격에  맛볼 수 있다.

#추천 식당

1. 탄고 혼텐(Tango Honten)

위치: 가와라마치역 6번 출구 근처

가이세키 정식요리 1600엔부터


2.라멘 카리키야(Ramen Karikiya)

위치 정보:  산조 카와라마치 사거리

가격: 특제 쇼유라멘 680엔부터

*동선

당일 동선

*사찰 정보

1. 동복사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4시

입장료:400엔

2. 건인사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30분(3/1~10/31)

               오전 10시~오후 4시.   (11/1~2/128)

입장료: 500엔

3. 천룡사

관람시간: 8시 30분~5시

입장료: 600엔

4. 인화사

관람시간: 9시~5시( 3월~11월)

               9시~4시 30분(12월~2월)

입장료: 500엔

5. 용안사

관람시간: 8시~5시 30분(3/1~10/31)

               8시 30분~5시( 11/1~2/28)

입장료: 500엔

6. 은각사

관람시간: 8시 30분~5시(3/1~11/31)

               9시~4시 30분(12/1~2/28)


 왜 교토의 절들이 일찍 닫는 지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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