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도쿄 단상

생각보다 쓸모 있었던 컨설팅

2번째 이직활동 이후 느낀 점

by 도쿄 소시민


“이 슬라이드를 조금 더 알기 쉽게 만들 수 없을까?”


컨설팅 회사를 3년 반 동안 다니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반발심이 들었다. ‘여기서 뭘 더 쉽게 만들라는 거지?’, ‘초등학생도 이해할 자료를 만들 거면, 그냥 초등학생을 데려와서 일 시키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급기야 이런 의심은 컨설팅 업무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으로 이어졌다. ‘컨설팅의 가치가 고작 자료를 알기 쉽게 만드는 것뿐이라면, 나의 전문성은 어디에 있는 걸까?’

하지만 놀랍게도, 새로운 회사로 이직하고 나서야 그 경험이 얼마나 큰 자산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과거에 했던 프로젝트 지식은 현재 업무와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컨설팅 회사에서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운 ‘일하는 방식’만큼은 그 어떤 지식보다 강력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1. ‘프로젝트 메뚜기’ 경험이 최고의 적응력을 선물하다

컨설팅의 가장 큰 특징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1년 단위로 계속해서 새로운 프로젝트에 투입된다는 점이다. 프로젝트가 바뀔 때마다 나는 완전히 새로운 업계, 목표, 팀 구성, 고객사의 특징까지 모든 것을 빠른 시간 안에 익혀야만 했다. 이 경험은 이직 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저는 새 회사를 하나의 ‘새로운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

마치 새 프로젝트에 배정받은 컨설턴트처럼, 저는 체계적으로 회사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1단계: 목표와 역할 정의 (Goal & Role)

가장 먼저 내 직무의 목표와 역할을 명확히 하고, 업무 프로세스의 처음과 끝에 어떤 동료와 부서가 있는지 파악했다.

2단계: 의사결정 구조 파악 (Decision Making)

누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과정에 어떤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지 정리해 두었다.

3단계: 업무 툴과 스케줄 습득 (Tool & Schedule)

업무에 필요한 툴을 익히고, 일/주/월/분기 단위로 어떤 업무가 어떤 스케줄로 진행되는지 파악했다.

4단계: 정보의 출처 파악 (Go-to Person)

마지막으로, 어떤 질문을 누구에게 해야 가장 정확한 답을 얻을 수 있는지 파악해 두었다.

이렇게 ‘프로젝트에 적응하는 공식’을 적용하자,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업무에 적응하고 상사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2. 내가 그토록 불평했던 ‘자료 만들기’ 능력의 재발견

내가 항상 불평했던 ‘알기 쉬운 자료 만들기’ 역시 의외의 순간에 빛을 발했다.

결론부터 쓰기, 내용 구조화하기, 그리고 독자/청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전제하기

컨설팅 1~2년 차 때 지겹도록 들었던 이 원칙들은 새 회사에서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 우리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메일로 설명할 때, 이 원칙에 따라 구조화된 메일을 보내자 고객들의 이해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고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

이 능력은 뉴스레터 개선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분기별로 발행하는 뉴스레터는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지만, 20~30쪽에 달하는 분량과 어려운 표현들로 가득해 가독성이 매우 낮았다.

나는 컨설팅에서 보고서를 만들던 방식을 적용했다.

Executive Summary 추가: 맨 앞장에 고객이 반드시 해야 할 일과 핵심 내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요약 페이지를 추가했다.

배경지식 추가: 처음 보는 고객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기존에는 생략되었던 배경지식과 전제들을 친절하게 덧붙였다.

작은 변화였지만, 개선된 뉴스레터는 고객과 상사 모두에게서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 transferable skill’이었다


돌이켜보면 컨설팅 회사에서 보낸 3년 반은, 특정 분야의 지식이 아닌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 transferable skill(이전 가능한 기술)’을 연마하는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그토록 무의미하게 느껴졌던 일들이 사실은 나의 가장 단단한 기초 체력을 길러주고 있었던 셈이었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하는 일이 반복적이고 쓸모없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당신도 모르는 사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어줄 역량이 숨어있을지 모릅니다. 컨설팅이 제게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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