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직장 생존기
어느 나라의 직장에서든 가장 중요한 역량을 꼽으라면 단연 '커뮤니케이션'이다. 상사, 동료, 그리고 고객과의 소통이 모여 하루의 업무가 완성된다. 이는 내가 일하고 있는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유독 일본에서는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하는 소통의 대원칙이 있다. 바로 '호렌소(報・連・相)'다.
'호렌소'는 보고(報告), 연락(連絡), 상담(相談)의 앞 글자를 딴 합성어다. 일본 회사, 특히 사내 커뮤니케이션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상사와 팀원들에게 적절한 타이밍에 진행 상황을 알리고(보고), 정보를 공유하며(연락), 의견을 구하는(상담) 것을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예를 들어 본다. 다른 부서에서 내가 담당하는 프로젝트의 일정 수정을 요청해 왔다. 담당자로서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이미 머릿속에 답이 있다. 하지만 나는 바로 회신하지 않는다. 일단 상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보고/연락), 내 생각에 대한 확인을 받은 뒤(상담) 답변을 보낸다.
'호렌소'의 핵심은 "나 혼자 생각하고 결정하지 않는 것"에 있다. 이러한 문화는 사소한 문의 사항에 답변할 때조차 적용된다. 가능하면 상사의 확인을 거친 후에 소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 문화가 너무나 답답하고 어려웠다. '대체 무엇을, 어떤 타이밍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지?'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내 머릿속에 답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여러 사람의 확인을 거치느라 업무 속도가 더뎌지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불만이 쌓였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었을까? 연차가 쌓이며 '호렌소'가 가진 진짜 힘을 깨닫게 되었다.
가장 큰 장점은 "모두가 같은 그림을 보게 된다"는 점이다. 내 업무 현황과 의견을 꾸준히 공유하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팀원과 상사가 프로젝트에 대해 동일한 인식을 갖게 된다. 덕분에 내가 자리를 비우거나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해도 팀 전체가 유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이 된다. 모두가 같은 정보를 갖고 있기에, 이후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오해가 생길 여지도 현저히 줄어든다.
'호렌소'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극도로 경계하는 일본의 조직 문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이슈 하나에 대해 모두가 같은 정보를 갖고 다음 행동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으니, 돌발 상황이 발생할 확률 자체가 낮아진다.
또한, 다음 행동을 결정하기 위해 의견을 나누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직과 팀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모인다. 개인의 독단적인 결정이 아닌, 집단의 지성을 통해 가장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호렌소'는 언제, 어떤 상황에서 해야 할까?
물론 회사나 산업의 특성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일본 회사 1~2년 차 주니어라면 '거의 모든 것'을 '호렌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좋다. 아직 업무 파악이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개인의 섣부른 판단과 행동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경험이 쌓이고 주니어에서 시니어가 될수록 '호렌소'의 대상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아직 외부 발표 자료나 보고서처럼 대외적인 커뮤니케이션, 혹은 예상치 못한 문제 상황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상사에게 보고하고, 연락하고, 상담한다. 잠시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함께 확인하고 결정하는 것이 결국 더 빠르고 안전한 길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