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자유주의자의 생각을 엿보다
듀이는 자유주의 사상의 계보와 위기, 그리고 그 대응책을 전개해 나간다.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하여 '급진적' 해결책을 주장한다. 그는 자유주의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유, 개별성, 그리고 사회적 지성의 증진을 위하여 현 사회제도의 전면적인 변혁을 제일의 과제로 생각했다. 이러한 듀이의 생각에 대하여 최근 논란이 된 기본 소득 이슈를 듀이의 해결책과 관련하여 생각해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듀이의 '급진적' 해결책이 결국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는지 여부에 대하여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자유주의의 뿌리는 로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로크는 자유를 두 가지 차원에서 다루었다. 정부-개인관계의 자유와 사회에 만연한 불관용에 대한 비판, 즉 개별성의 문제 두 가지이다. 고전 자유주의에서 후기 자유주의로 넘어가면서 전자의 문제만이 부각되었다. 후기 자유주의를 주도한 경제학파와 공리주의자 모두 자유를 지배/피지배와 관련지어서만 생각했다. 또한 자본주의 경제 체계가 더욱 발전하면서 초기에 소유와 관련되었던 자유의 개념이 생산과 교환의 자유로 변화하였다. 자본주의 체제가 더 확대됨에 따라 자유주의의 '자유'는 개별성이 아닌 생산과 교환의 자유만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러한 후기 자유주의 움직임은 결핍의 해소, 불안정의 해소, 경제의 집중화, 법인화의 변화에 직면하여 유연한 모습을 보이지 못 하고 위기를 맞았다. 변화된 조건 속에서 자유주의는 자유, 개별성, 지성을 지향하는 기제가 아니라 지양하고 억압하는 기제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저자는 자유, 개별성, 지성을 함양하기 위하여 급진적인 해결책을 요구한다. 개별성과 정부-개인 간 자유 두 가지 차원의 자유를 주장했던 본래의 자유주의로 돌아가는 것이다. 생산과 교환에 사회적 통제력을 적용시켜 삶의 기반을 안 정시 켜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적 지성 함양을 위한 제도를 만들고 참여적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 등을 해결책으로 언급했다.
1. 『자유주의의 사회적 실천』 리뷰
상일: 나는 생각보다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았다. 말이 전체적으로 너무 길다. 계속 말을 번복한다. 솔직히 난 이 책을 완벽히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문체만 좀 깔뿐 내용을 깔 수 없다.
현우: 매우 좋았다. 4가지 점에서 좋았다, 시대에 대한 진단을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정확하게 했다. 또한 형이상학적일 수도 있는 내용들을 실용주의자답게 현실에 맞게 표현한 점도 좋았다. 그리고 또 책 구성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앞의 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밀이 자유론에서 주장했던 것과 연속성 있는 부분이 있어서 다루기 매우 좋은 책이 아닌가 생각한다.
원진: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자유주의에 대한 역사적, 사상적 연원이 있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요즘,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에서 ‘자유’를 앞에 단 단체나 사이비 자유주의자들이 넘쳐나는데 그 와중에 진정한 자유주의자가 어떤 것을 생각했고, 사상의 방향이 어떠했는지 명쾌하게 정리되어 좋다. 강연 정리이기에 학문적 깊이는 좀 떨어질지 몰라도 자유주의에 대하여 유의미한 책이다.
상일: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듀이를 신자유주의의 기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고 사민주의자의 기원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신자유주의랑 사민주의, 사회민주주의는 완전 상극이 아닌가? 연결고리가 있긴 한가 궁금하다.
원진: 책을 보면 듀이를 사회민주주의자로 소개하긴 한다. 미국에서 제 3 정당 운동을 이끌기도 했고 현실 사회주의 국가인 소비에트에도 관심이 많았다. 혹시 신자유주의가 정통성이 없으니까 듀이를 끌어 쓰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현우: 난 오히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고 생각했다. 왜 위키피디아에서 듀이를 신자유주의자를 봤는지 모르겠다.
원진: 신자유주의는 자유를 지배/피지배의 개념으로만 이해해서 경제적인, 생산의 영역에 관련된 자유만 다룬다. 그러나 듀이의 자유주의는 로크가 다루었던 관용/개별성의 문제까지 다루기에 다른 것 같다.
2. 기본소득 문제
글 속에서 드러난 듀이는 자유주의의 역사성을 생각하며 시대와 상황에 맞는 자유주의를 강조하며 자유주의가 추구하는 근본적인 가치들을 강조한 진정한 의미의 자유주의자다. 진정한 자유주의자의 시각에서 스위스가 추진하려 했던 기본소득은 어떻게 보일까? 듀이의 입장에서는 기본소득이야 말로 급진적 자유주의 대응이라고 평할 것이다. 문화의 융성, 사회의 지성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물질적인 안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기본 소득의 제공은 물질적 기반의 안정을 의미한다. 정부가 기본 소득을 제공함으로써 시민들은 불안정과 결핍에서 벗어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세력들은 지난날 스피넘랜드의 실패 주장하며 기본 소득은 말도 안 되는 제도라고 폄하한다. 특히 '자유'를 앞에 달고 있는 일부 단체들이 비판에 앞장서고 있다. 자유, 개별성, 지성을 가치로 여기는 자유주의 관점에서 기본 소득 제도를 둘러싼 여러 의견들을 평가해 볼 수 있다.
사회적인 인간, 자아실현으로서의 노동, 자유주의 가치의 실현 기반
상일: 스위스에서 했던 기본 소득 문제에 대해서 우선 기본적으로 투표율이 높지 않다고 들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300만 원이 큰돈이 아니다, 스위스 국민들에게는 실질적으로 100만 원 정도의 가치라고 알고 있다.
그것과 별개로 내가 <썰전>에서 본 내용을 토대로 정리하자면, 기본소득은 스위스가 스타트를 끊은 역사적인 현상이다. 이것은 계속 논의가 될 문제다. 왜냐하면 인간은 역사적으로 계속 생산 활동은 던져버리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즉,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본소득은 현실적이지 않다. 사람이 배불러지면 일을 안 하게 된다.
현우: 나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은 어쩌면 더 큰 가치를 창출해내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반대하는 사람들 논리의 기원인 스피넘랜드의 사건은 기본소득 문제 반대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당시의 상황이 현재와 너무나도 다르다. 우선 노동자를 한 곳에 고정시켰다는 점이 달랐으며 당시의 산업이 농업밖에 없었다는 점, 두 가지가 완전히 다르다, 당시에는 선택권이 없지만, 현재의 경우 사회 구성원들은 직업과 노동에 대하여 다양한 선택권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기본소득 반대의 논리는 될 수 없다.
사람들이 배불러질 수는 있으나 당시와 상황이 상이하다. 현재에는 다양한 산업과 분야가 있다. 농업에 비하여 부가가치가 큰 다양한 일이 존재한다. 난 사람들이 경제적 속박 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함으로써 잃게 되는 사회적, 경제적 부가가치도 꽤 크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게을러지면서 가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게을러지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생기는 가치도 충분히 생산성에 기여할 수 있다.
원진: 현우 의견과 같다. 인간의 사회적인 부분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노동사회학에서 배운 내용에 따르면 실업급여를 오랫동안 지급하는 사회들의 경우, 실업 급여 수령 첫 몇 달은 아무 일도 하지 않지만, 몇 달 뒤 열정적으로 구직활동에 참여한다. 인간의 노동은 자아실현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뭔가를 창조하고 부가가치를 만들며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인간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이다.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해서 당장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항상 우리는 사회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복지로 성공한 사회와 실패한 사회의 경우를 비교해 봤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은 사회적인 것이었다. 성공한 사회들의 경우 노조도 강하고 일터 외의 조직들의 결속력도 강했다. 즉 자발적 결사체가 많고 힘이 강했다. 반면 스피넘랜드를 포함해서 실패한 사회들의 경우 자발적 결사체들이 없거나 적었다.
사회적인 요소가 단 하나의 독립 변인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변수이다. 사람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전원책과 비슷하게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물질적인 욕구만을 갖고 있는 개체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은 그 외에 사회적인 욕구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간과한다.
현우: 그런 사람들의 또 하나의 특징은 도구적 노동관이다. “일은 싫지만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으로만 본다. 그러나 사실 노동은 자아실현의 수단도 될 수 있고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게을러도 일을 할 것이다.
원진: 물론 비판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단순 노동직이나 기피 업종에 사람이 적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해보지 않았기에 모른다.
현우: 나는 오히려 그러한 업종에 노동 공급이 급격하게 줄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의 원리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선진국들에서는 기피 업종의 임금이 매우 강하다. 노동 공급이 줄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추가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추가적인 임금을 동기로 하는 사람들은 그러한 기피 업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시장원리에 따라서 임금이 높아지면 또 공급이 자연스럽게 늘어 날것이다. 시장의 능력을 믿는 것만큼 그런 부분에도 시장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원진: 정리하자면 인간이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고 기본소득이 제공되어도 시장의 원리에 따라 사회 분업 체계가 유지되기에 기본소득은 가능하다. 더 나아가 자유주의에도 부합한다. 물질적 기반이 있어야 자유, 개별성, 사회적 지성의 함양이 가능하다.
상일: 그렇다면 논지를 변경해서 “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의 제공이 정당한가? ” 이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까. 이들은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게 생산 활동에서 나오는 부(富)를 제공하는 것에서 어떻게 정당성을 찾을 수 있을 까?
현우: 내 생각에는 약간 보험 같다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을 위한 세금이 나도 언젠가 일을 하기 싫어질 때 일 하지 않을 자유라고 생각한다.
상일: 그런데 그것을 강제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원진: 그래서 민주적으로 합의를 하는 것이다. 뉴딜정책이나 소련식, 중앙집권적 개혁이 아니라 투표에 의한, 사회 구성원에 의한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상일: 고전적 자유주의가 내세운 게 국가의 지배를 배제하는 것 + 관용성이다. 이 두 가지를 달성하기 위한 자유주의의 제일 원칙이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기본소득 제공은 이것에 어긋나는 것 아닐까?
원진: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의 세금은 자의적이지 않다. 세금은 강제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전제 군주가 자의적으로 재산을 강탈해 간다면 그것은 자유를, 재산권을 침해하는 것이지만 민주적 합의에 의하여 세금을 징수하는 것은 전자와 다르다.
상일: 그런데 그렇다면 모두가 100% 동의해야 정당성이 있는 것이 아닐까?
현우: 그렇다면 너는 네가 내는 세금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나? 네가 내는 세금이 쓰이는 모든 복지 분야에 대해서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지 않나?
상일: 그런 건 아니지만 기본소득은 기존의 복지와 다르다. 이것은 선별적인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보편적 복지이기에 차원이 다르다.
현우: 다르지 않다. 건강보험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아프지 않은 사람들도 건강보험료를 납부하여 아픈 사람들에게 쓰지만 모두가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기본소득도 이와 비슷하다고 본다. 의료보험이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보험이라면 기본소득은 행복추구권을 지키기 위한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현우&원진: 그리고 잡다한 복지제도보다 수혜자들에게 직접 가는 시스템이 더 효율적일 수 있다.
원진: 이런 사실들을 고려했을 때 기본소득은 자유주의 가치를 헤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토양이 될 수 있는 제도이다.
#듀이의 참여적 민주주의는 뭘 까?
원진: 듀이가 이야기하는 민주주의는 전형적인 미국식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반응적 대의민주주의다. 기존의 대의제 국회가 있고 밑에 시민들의 자발적 결사체가 활발히 활동하여 국회를 견제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로비단체들이 많은 상황이다.
상일: 한국 사화에서는 맞지 않는 것 같다.
현우: 사회적 지성이 낮아서 그렇다. 듀이가 1930년대 이야기한 이야기가 지금도 한국 사회에 적용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현우: 이런 사람이 우리나라 장관으로 와야 하는데...
원진: 아마 대통령에게 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서별관 회의 같은 데 가서 조인트 까이고 사임하고...
3. 듀이와 사회주의의 관계
더 나아가 듀이의 사상과 사회주의 간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논해 볼 수 있다. 듀이가 분석한 자유주의의 3대 가치와 그 구현 수단은 모두 사회주의와 유사한 내용들이다. 사회주의, 마르크시즘 또한 인간 개인의 완전한 발달, 자아실현을 목표, 전제로 한다. 혁명과 생산수단의 통제, 계금 및 국가의 해체는 결국 완전한 자아실현을 위한 수단이다. 그러므로 사회주의 또한 자유와 개별성, 사회적 지성을 소중히 여긴다. 목표 외에도 듀이가 주장하는 수단도 결국 사회주의적이다. '생산수단의 사회적 통제'는 거의 대부분의 마르크시즘 정당의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에 있어서 차이점이 있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제도 개혁과 민주주의의 실천 등을 강조했다.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분석도 마르크스주의와 달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으며 생산의 영역에서의 계급 관계 또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마르크스주의와 비교하며 유사성 및 차이점을 분석해 볼 수 있다.
원진: 또 궁금했던 점은 듀이와 사회주의의 관계이다. 결국 듀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사회주의 정당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듀이는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아니라고 말하며 책에도 이를 반복하고 있다. 듀이의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간의 차이점 혹은 유사점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실용주의자답게 “굳이 써야 하는가?”라고 묻는 느낌이다.
현우: 일단 듀이는 혁명이나 폭력에 대한 전복을 싫어한다. 폭력은 어느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정당화 이전에 폭력은 필요성이 없다고 본다.
원진: 전체적인 사회적 지성이 키워지면 폭력이 필요 없다고 보는 것이다.
현우: 지성에 의한 급진주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책의 많은 부분을 폭력에 대한 비판에 할애했다. 다 맞는 말이긴 한데...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원진: 그럼 가장 큰 차이점이 수단으로써 폭력에 대한 부분이다. 마르크스나 엥겔스는 폭력을 어느 정도 혁명의 도구로서 인정한다. 그러나 듀이는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으며 사회적 지성이 함양된다면 필요가 없다고 본다.
현우: 실용주의자답게 “굳이 써야 하는가?”라고 묻는 느낌이다.
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원진: 두 번째 찾은 지점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언급 여부이다. 듀이는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한 이야기는 있지만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비판은 없다.
현우: 그렇다. 듀이가 현재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그 자체, 시장 경제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
현우: 그런데 사회적 지성 함양을 위한 수단은 결국 교육인데, 우리가 읽은 책에는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다는 점이 아쉽다. 항상 교육이 장기적인 대안인데, 문제는 교육의 방향성과 내용은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가?이다. 이것에 대한 답에 따라 사회가 전체주의로 흘러갈 수도 있고, 사회적 지성이 함양되어 참여적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가 읽은 책에서는 형이상학적인 대원칙만을 언급한다. 이 점이 유일하게 아쉬운 부분이다.
상일: 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세히 보면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는 사람들이다. 성선설자들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 본성에 대한 회의가 있기에 이러한 대안들을 비현실적이라고 평가한다.
원진: 나의 경우 원래 사람에 대한 신뢰가 있었으나 최근 **역에서 근무하면서 많이 잃어버렸다. 사회적 지성은 말도 안 되는 소리 같다. 지성은 개별 인간마다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우: 이게 우생학이나 사회 다위니즘이 광풍이 분 이유가 있어ㅋㅋㅋㅋ
상일: 살다 보면 실망할 기회가 많지.
현우: 그래서 교육이 중요한 것이다. 교육의 방향성을 잡을 때 그것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 하기에 교육 자체에 대한 신뢰가 없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으므로 교육이 가능할 리가 없다.
상일: 자유주의자들은 보통 인간에 대한 믿음이 강한 것 같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이기에 아무런 규제가 없을 때 더 자아실현에 가까워지고 행복해지는 것이다.
원진: 사회주의도 이 지점에서는 같다. 마르크스의 사상 기반에는 인간의 자아실현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 타파 및 혁명 등은 모두 이를 위한 수단이다.
상일: 19세기 등장한 대부분의 이념들은 모두 계몽주의의 영향이기에 인간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것 같다.
상일: 추가적으로 민주주의 지점이 다른 것 같다.
원진: 아니다 사회주의에서도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상일: 그렇다면 왜 사회주의 정당들의 문서에서는 굳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라는 용어를 쓰는가?
원진: 그것은 많은 오해가 있는 부분이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정치를 한다는 의미일 뿐, 독재 정치를 편다는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 이후 엥겔스의 저작은 공산주의 혁명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혁명이 일어나서 부르주아와 부르주아의 관리 위원회 격인 부르주아 국가를 와해시킨다.→프롤레타리아트들이 해체된 국가 조직의 자리에 앉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즉 프롤레타리아트들만이 정치에 참여하는 사회주의적 국가를 형성한다.→마르크스주의적 정책들을 통해 자본주의가 사라진다. 그에 따라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에서만 존재했던 프롤레타리아트/부르주아의 계급 구별이 없어진다.→국가가 사멸하고 지배자=피지배자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적 국가, 즉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충분히 민주주의가 가능하며, 또한 민주주의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상일: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읽어온 자유주의의 책들을 본다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때로는 상극이 될 수도 있지 않나?
현우: 듀이는 사회적 지성이 전제된다면 민주주의가 자유주의 가치를 위한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상일: 그렇다면 나는 사회적 지성이 낮거나 없기에 민주주의가 힘들다고 하는 걸로 하자.
국민재판이나 배심원제도에 따른 판결은 나중에 전문가들에게 엄청난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것이 타당한가? 국민투표제도도 포함해서 타당한가?
현우: 나는 괜찮다고 본다. 결과주의로 본다면 안 좋지만 좋다. 결국 자신들이 책임지는 것 아닌가?
상일: 그렇다면 어떠한 사안에서 반대한 사람들을 그 사안이 결정되어 피해를 봤다면 뭔 죄인가?
현우: 항상 우리에겐 자유가 주어졌다. 사전에 더 설득할 수도 있고 다양한 선택지들이 있다.
현우: 그리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결과주의적이다. 수단이나 과정을 결과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기에 어떠한 결과를 예측하고 그에 따라 절차나 과정의 타당성을 판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참고자료
『자유주의와 사회적 실천』, 존 듀이/김진희 옮김, 책세상, 2011,1.25
*이미지 출처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park&wr_id=46954156
https://namu.wiki/w/%EC%A1%B4%20%EB%93%80%EC%9D%B4
https://responsestoliberalism-period2.wikispaces.com/Socialism+-+Gener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