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뽀가 시작되고, 한국 프로야구가 시작한 그해.
서울 강동구 천호동 한증막 앞집에서 태어났다고 들었다.
그 집은 아직 남아있고, 한증막은 공용 주차장이 되었다.
시작이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 멀리 합천 땅에서, 고령 땅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정착한 곳이 천호동이었나 보다. 고모도, 외삼촌도, 작은 아버지도 모두 천호동에서 사신다. 그렇게 여전히 옹기종기 산다.
천호동에서 자랐다. 학교를 다녔다. 물총 싸움도, 눈싸움도, 망까기도, 처음으로 꽃을 심었던 기억도, 돈을 빼앗긴 기억도 다 천호동 어느 골목에서다.
잠깐 성남으로 이사한 적이 있다고 들었고, 사진도 남아 있지만, 기억은 없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처음으로 천호동 밖에서 밥을 사 먹고, 놀았다.
결혼을 하고 겨우 천호동을 떠났다. 어머니는 아직 천호동에 계시고,
나는 종종 천호동으로 돌아간다.
쇠귀 신영복 선생님의 호가 우이동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그럼 나는 천집으로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는데...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재미있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다.
천호동 골목골목을 사진으로 남겨놔야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벌써 몇 년째다.
흑백사진이 좋을 것 같다.
내 고향이다.
(2021.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