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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rard Mar 31. 2016

그때 나, 그리고 우리의 사랑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그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한 장면처럼 세상에 나 혼자 존재하는 것 같은 조용한 새벽, 발걸음을 타박타박 옮겼다. 얼굴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이 불던 겨울날, 그녀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은 한 없이 아쉽고 허무하기만 하다. 길 위에 덩그러니 서있는 가로등에 비친 싸리 눈은 한 여름밤 앞뒤를 다투며 불빛으로 모여드는 벌레들 같다.


 벌써 그녀와 함께한지 2년이 넘었다. 주머니를 아무리 뒤져봐야 먼지뿐이었던 가난한 학생 때 만났다. 호주에서 막 돌아와 영어공부도 계속할 겸 영어 모임을 찾아 참가했다. 두 번째 가던 날 그 아이를 처음 봤다. 새 하얀 블라우스와는 어울리지 않게 날카로운 인상,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에 쉽게 다가갈 수 없었지만, 환하게 웃는 얼굴은 그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였다. 만나는 횟수가 거듭 될수록 첫인상과는 다르게 여린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말이 잘 통해 마음이 갔다. 어느 날 저녁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문자 하나가 온다.


“지금 공부 안 하면 죽을 것 같아? 그런 거 아니면 나와서 같이 놀자”


 그 날 이후로 일 년 동안은 명절을 제외하고는 매일 만났던 것 같다. 그녀의 고향은 대구이지만 학교 때문에 청주에서 자취 생활을 했다. 주머니가 가난한 나였지만, 그 아이는 학교를 다니며 과외를 해 수중에 돈이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바른 아이다. 학비며, 생활비며 모두 다 제 손으로 벌어서 해결했다. 하지만, 내 입장은 달랐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는 처지였으니 재정 상태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밖에서 식사를 할 때도 그 아이가 계산하는 모습을 바라보면 참담한 기분까지 들었다. 괜히 화도 내고 미안하다며 앞에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도 뭔가 주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께 죄송한 이야기지만, 집에 있는 반찬이며 생필품 등을 실어 날랐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것이 재료 몇 가지 사서 요리해주는 것이나 마음을 담아 몇 글자 적어 주는 게 다였다. 내가 줄 수 있는 건 그때 그 정도였다. 그때는 천 원 지폐 몇 장도 없어서 택시 탈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집에 가지니 헤어짐이 아쉬워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 보면 어느덧 두, 세시가 훌쩍 지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같이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걸었다. 원래 걷는 것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그때는 사색에 잠겨 모든 생명이 잠든 새벽을 걷는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가로등에 비친 벌레들은 온 데 간데 없이 사라지고 싸리 눈만 조용히 차가운 바닥에 몸을 기댄다. 평소엔 잘 듣지도 않던 라디오가 그날은 왠지 듣고 싶었다. 라디오를 켜고 이어폰을 귀에 가져가니 팝송의 끝자락이 흐른다. 다음 이어지는 한 남자의 사연. 지금은 번듯한 직장에 다니다는 그 남자가 옛사랑을 회상하며 사연을 보냈다.


‘학생 시절 나 또한 사랑하는 여자가 있었고 주머니는 가벼웠다. 그녀는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나 보다는 금전적으로 풍족했다. 너무나 사랑했지만, 내가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을 알기에 헤어지기로 했다. 좋은 말로 하면 헤어질 것 같지 않아 괜한 일에 트집을 잡아 서로 얼굴을 붉히며 헤어졌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후회된다. 나의 20대에 마음을 다 바쳐 사랑했던 그녀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라디오 사연을 듣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500원짜리 동전 한 개가 나왔다. 손바닥에 얹혀 있는 동전을 한 참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도 한 때 헤어질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녀 옆에 있다는 사실이 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 내 뜻대로 되던가? 머리는 만나지 말아야지 하면서 몸은 그 아이를 향하고 있었다.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그 아이를 포기했다면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했을 것이다.


 내가 미안해하면 도리어 자기가 더 미안해했고, 항상 내 편이 돼 나를 응원해 줬던 그녀가 올해 여름이면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얼마 전 소식을 듣고 많이 울었다. 매일 봐왔던 얼굴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더 기억이 안 나는 것 같다. 보고 싶은 사람 얼굴은 아무리 기억하려 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가슴이 찢어질 것 같지만 항상 내 편이 돼 주었던 그녀를 위해 이제는 내가 그녀를 응원해 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옆에서 챙겨 주진 못하지만 건강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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