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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rard Feb 17. 2023

삿포로에 갈까요?

삿포로에 갈까요. 멍을 덮으러, 열을 덮으러 삿포로에 가서 쏟아지는 눈발을 보며 술을 마실까요. 술을 마시러 갈 땐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스키를 타고 이동하는 거예요. 전나무에서 떨어지는 눈폭탄도 맞으면서요. 동물의 발자국을 따라 조금만 가다가 조금만 환해지는 거예요.

하루에 일미터씩 눈이 내리고 천 일 동안 천 미터의 눈이 쌓여도 우리는 가만히 부둥켜안고 있을까요.


미끄러지는 거예요. 눈이 내리는 날에만 바깥으로 나가요. 하고 싶은 것들을 묶어두면 안 되겠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절망한 것을 사과할 일도 없으며, 세상 모두가 흰색이니 의심도 서로 없겠죠. 우리가 선명해지기 위해서라기보다 모호해지기 위해서라도 삿포로는 딱이네요.


당신의 많은 부분들. 한숨을 내쉬지 않고는 열거할 수 없는 당신의 소중한 부분들까지도. 당신은 단 하나인데 나는 여럿이어서, 당신은 죄가 없고 나는 죄가 여럿인 것까지도 눈 속에 단단히 파묻고 오겠습니다.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 이병률




서로가 모호해 지기 위해서 삿포로가 딱이라는 말이 와 닿았다. 순백의 세상은 모든 것을 모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왁자지껄한 이자카야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감정이 들었는진 잘 기억나진 않는데, 그냥 사랑이었다. 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면 모든 모호함은 사라질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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