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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rard Jun 26. 2017

심심함과 외로움에 대하여

 네덜란드에서 지낸 지 어느덧 2주가 되었다. 워킹 비자가 아직 나오지 않아 출근하지 못하는 나의 최근 2주 동안의 직업은 장보기, 요리하기, 먹고살기 등이다. 그 사이에 몇 가지를 더 끼워 넣자면, 심심해하기, 외로워하기, 그리워하기이다. 시간이 많은 요즘은 하루하루가 심심하고, 외롭다. 나와 친분이 있는 지인들은 내가 혼자서 영화도 잘 보고, 혼자 밥도 잘 먹기 때문에 쟤는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나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그런 심심함을 잘 느끼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에 사랑하던 아이가 있었다. 양질의 토양에서 막 솟아 오른 파릇파릇한 새싹 같은 아이였다. 언제나 생기 넘치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사람. 그때는 나도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매번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고,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달려드는 심심함 따위는 모르는 사람.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면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 사람과 맞는 반쪽의 톱니바퀴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느 날은 길을 걷다가 그 아이가 말했다.


"나는 심심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가. 어떻게 심심할 수가 있지? 이 세상엔 할 게 얼마나 많은데. 너도 심심할 틈이 없지? 나한테 그런 말 한적 한 번도 없잖아"


 겉으로는 맞장구를 쳤지만, 마음속으로는 괜히 움찔했었다. 그때는 그 아이의 말에 동조하는 것에 대한 실체 모를 죄책감 같은 것이 들었다. 나이를 먹고 보니, 나는 곁에 누군가 있어도 내 안에는 고독과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에 찌들며 조금은 더 어두운 색으로 물들 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심심해서 책을 보고, 외로워서 커피를 마시며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그리움도 많아서 쉽게 눈물 흘리고.


 심심하다는 건 여유가 있다는 것이다. 할 일이 태산처럼 쌓여있는데 결코 심심 할리가 없다. 서른이 넘어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근 이 년 동안 제대로 심심하다거나 외롭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평일에는 회사 일에 치이다 집에 돌아오면 처리해야 하는 또 다른 일들이 있었다. 술자리를 좋아하는 나는 금요일이면 친구들이랑 한 잔 기울이는 데 시간을 보냈고, 토요일은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다 보면 또 하루가 갔다. 일요일은 몸은 쉬고 있지만, 마음은 다시 시작될 월요일을 걱정하며 보냈다. 심심할 틈이 없었다. 오늘 새로 시작한 '효리네 민박'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이효리가 그러더라.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심심함을 느끼게 해주겠어!"


 나뿐만 아니라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심심함이란 크게 마음먹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린 것 같다. 요즘 나는 심심하고 외로워서 미치겠다. 침대에서 뒹굴며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하염없이 듣다가 잠들고, 멍하니 플레이리스트에 있는 노래를 들으며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쓴다. 이유 없는 외로움이 밀려와 마음에 비가 내리기도 한다. 밤 열 시가 되어도 해가지지 않는 백야 아래선 심심함이 배가 된다.


 심심하지 않으면 누군가가 그립지도 않고, 외롭지도 않을 것이다. 몸을 혹사시키면 심심함이나 외로운 느낌 따위 들 리가 없다. 헤어진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괴로움 또한 쉽게 잊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잊게 될, 한 때 미치도록 사랑했던 그 사람을 그런 식으로 잊어버리면, 나중에 미련만 더 남게 되었던 것 같다. 심심함에 죄책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꼭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심함과 외로움을 뿌리쳐 내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심심함도 외로움도 있는 그대로 온전하게 받아들여야지 나의 진짜 모습들을 바라볼 수 있다. 남이 바라보는 나의 모습이 아닌, 내가 바라보는 진짜 나의 모습. 


 이 글 또한 심심함과 함께 하는 짓이며, 결론도 없고, 감동도 없는 내가 생각하는 심심함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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