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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erard Jul 19. 2018

키다리 아저씨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는 키가 190cm는 족히 넘는, 정신지체장애를 가진 키다리 아저씨가 살았다. 항상 자전거에 박스를 한 가득 싣고다녔는데, 그 모습이 흡사 거인이 외발 자전거를 타고 곡예를 하는 듯 보였다. 겉모습 때문인지 동네 아이들 사이에선 아이들을 잡아먹는 괴물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친구들과 숨바꼭질을 하다가도 아저씨만 나타나면 다들 혼비백산하여 ‘도망가! 애들을 잡아먹는 키다리 괴물이 나타났다’라고 소리치며 도망가곤 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인데, 아저씨는 아픈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고 한다. 본인이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 집안을 꾸려갈 수 없기에 아저씨는 파지를 줍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동네 이곳저곳을 누비며 파지를 모았다. 더운 날에도, 추운 날에도. 내가 중학교에 진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군 복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날에도 아저씨는같은 자전거를 타고,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파지를 줍고 있었다. 한 동네에서만 평생을 살았던 나에게 아저씨는 늙지 않는 요정이거나,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한번은 좁은 동네 골목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발을 접질린 적이 있는데, 아저씨가 그 모습을 보고 나에게다가오는 것이 아닌가? 친구들은 평소처럼 소리를 지르며 사라졌다. 다가오는 아저씨를 바라보며 내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었다. 두근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면 숨겨져 있던흉측하고 날카로운 이로 날 잡아먹을 것 같았기에, 가슴을 부여잡고 ‘제발그만’이라고 부탁했다. 아저씨는 조용히 내 신발을 벗겼다. 발목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이 만지는 아저씨의 손길에, 욱신거렸던통증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때부터 나는 아저씨가 요정이란 걸 확신했던 것 같다.


 멈추지 않는아저씨의 자전거 바퀴처럼 시간은 흘렀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일 때문에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출근전 회사로 서류를 보낼 것이 있어 우체국을 가던 길에 아저씨를 보았다. 널찍한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도, 이젠 왠지 모르게 쓸쓸해 보이는 아저씨가 선명하게 보였다. 아저씨는 더 이상 자전거와 함께하지 않았다. 늙지 않을 것만 같던 아저씨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포개져 있었다. 흑백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아저씨와 나는 느리게 옷깃을 스쳤다. 순간 아저씨가 나이를 먹은 게 아니라 내 동심이 나이를 먹은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이사를 간 건지 알 수 없지만, 동네를 가도 더 이상 키다리 아저씨는 볼 수 없다. 지금 동네의 모습은 내 유년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친구들과 뛰놀던 그리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주택가는어느덧 울창한 원룸 숲이 되었다. 32년동안 ‘우리 집’이라고 불렀던 장소도 *마로니에라는 이름의 한 그루 원룸이 되어있다. 원룸들이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바삭한볕 들을 먹어 치우는지, 미하엘앤데의 동화 ‘모모’ 속 시간을 빼앗긴 마을처럼 온통 회색 빛으로 물들었다. 탁색으로 변해가는 동네를 바라볼 때마다 내 동심과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가슴이 시큰하다. 예전 모습을 잃어가는 동네처럼, 하나, 둘 나이를 먹으며 동심이 모래 바람처럼 사라진다. 그래서 저 한 편에 커다랗고 깊은 오아시스 선물해준 아저씨가 감사하기만하다. 이제 더 이상 키다리 아저씨를 볼 수 있을진모르겠다. 하지만, 내 마음속엔 바보 같이 우직했고, 따듯했던, 키가 커다란 요정으로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마로니에: 서양 칠엽수라고도 불리는, 무환자나무과의 낙엽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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