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인간이란 과연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가.

by 이병찬

[내 인생의 소설 제2화]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김연수


한 남자가 있었다. 엄혹했던 80년대에 대학에 다녔다. 어느 날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랑하던 여자가 짧은 유서를 남기고 한강에 투신한다.


“부모님, 그리고 학우 여러분! 용기가 없는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야만의 시대에 더 이상 회색인이나 방관자로 살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후회는 없어.”


남자는 여자의 죽음으로 충격에 빠진다. 특히 마지막 순간에 자신에게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불면의 밤을 보내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남자는 집에 있는 책을 모두 읽어치우자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기 시작한다. 어느 날 남자는 직원의 실수로 대출을 신청한 책이 아니라 다른 책을 건네 받게 되는데, 대출카드를 살펴 보다가 여자가 자살하기 직전에 그 책을 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자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읽은 그 책은 "왕오천축국전"으로 신라의 승려 혜초가 거의 1300년 전에 쓴 여행기였다. 남자는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또 읽다가 여자와 있었던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왕오천축국전을 번역한 여교수에게 보낸다. 여교수는 남자가 잘못된 주소로 원고를 보냈다고 오해하고, 남자의 원고를 출판사에 전달한다. 얼마 뒤 남자는 출판사에 원고를 되돌려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출판 관계자의 술자리에 동석하게 되고, 술자리에 함께 있던 여교수, 그러니까 왕오천축국전을 번역한 연상의 여교수와 사랑에 빠진다. 그것도 순식간에.


대학에서 산악회 멤버로 활동했던 남자는 88 올림픽을 앞두고 파키트탄 낭가파르바트에 오르는 원정대에 참여하고, 무리하게 정상에 오르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른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 투성이다. 여자가 사랑하던 남자에게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투신한 것도, 여자가 자살하기 직전에 왕오천축국전을 읽은 것도, 여자가 왕오천축국전에서 엄마와 결혼하고 자매를 아내로 삼는다는 풍습에 밑줄을 그은 것도, 남자가 왕오천축국전을 번역한 연상의 여자 교수와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것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남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어쩌면 죽고 싶다는 마음으로 무리하게 낭가파르바트에 오르려는 상황이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나. 정말로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나에게 정말로 의미가 있는 것은 무엇인지, 과연 알고 있나? 어떤 사람을 사랑하는지, 어떻게 사랑에 빠지는지 설명할 수 있나?


돌아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별로 알고 있는 게 없고, 다른 사람의 경우는 말할 나위도 없다. 설사 우리가 모든 역략을 '총동원'한다고 해도 우리가 남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다.


작품을 읽다보면, 뭐라고 정확히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이 안에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 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야말로 그런 느낌을 주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나를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남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에 빠지고 상대방을 이해해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리고 때로는 이런 노력이 목숨까지 걸게 만든다.


과연 이건 무모한 짓일까, 아니면 눈물나게 아름다운 시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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