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이야기
지난 저녁 부산문화회관에서 열린 부산 네오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브람스 교향곡 전곡 사이클 공연에 다녀왔다. 찬란한 5월의 봄에 안녕을 고하는듯한 ‘브람스 대학 축전 서곡’을 시작으로 낭만적이면서도 성숙한 고전미를 간직한 ‘브람스 교향곡 4번‘ 그리고 ‘헝가리 무곡 1번’의 여흥은 공연의 완성도를 떠나, 가는 봄밤의 정취와 함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공연장 마당을 가로질러 가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떠올렸다. 소소한 일상 정경이 시가 되는 순간, 삶의 순간순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인생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일상의 시작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시, 이문재 시인의 ‘봄밤‘의 일부다.
…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찍는다.
…. 백목련 사진은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 나간다.
계란탕처럼 순한
봄날 이른 저녁이다.
오토바이로 배달을 하던 청년이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꽃을 발견하고 급브레이크를 밟고 멈춰 서 핸드폰으로 어여쁜 순간을 담는 장면을 담은 시는 봄밤을 떠올리는 마음을 순탕하고 흐뭇하게 만든다. 시가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칠레의 시인 로베르토 블라뇨의 ‘부활‘은 시가 내가 시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을 경험하게 한다.
잠수부가 호수에 들어가듯
시가 꿈속에 들어간다.
…….
바닥에서 시를 응시하라.
의지의
깃털에 싸인
결백한
잠수부.
시가 꿈속에 들어간다.
신의 눈에서
죽은 잠수부처럼.
시집 <낭만적인 개들>에 실린 시 ‘부활‘을 라디오에서 듣는 순간 마음 저 밑으로 침잠하여 시를 응시하는 의지의 깃털에 싸인 결백한 인물에 동화되었다.
<교양으로 읽는 시-당신은 어느 날 그 시를 찾을 것이다>의 저자 양자오는 말했다. ‘시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며 두려움 없는 전율, 열기 없는 모던함’이라고. 한 편의 시가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양자오의 말대로 ’ 시는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하고’, ’ 시인의 시는 나 자신의 언어보다 더 나와 가까이 있는 것‘이다.
“만약 제가 한 권의 책을 읽고 온몸이 차가워지고 어떤 불빛으로도 저를 따뜻하게 할 수 없다고 느낀다면 저는 그것이 시라는 것을 알아요. 만약 정수리가 열린 듯 한 기분을 여실히 느낀다면 저는 그것이 시라는 걸 알죠. 이게 제가 아는 시를 판별하는 방식이에요. 다른 방법이 또 있을까요?
-에밀리 디킨스의 시에 관해, 양자오 <교양으로 읽는 시>중에서
에밀리 디킨스의 시에 관한 글을 읽고 ‘더 이상 어떻게 시를 정의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에밀리 디킨스의 표현처럼 시가 내게 다가 온 순간을 떠올린다.
우리는 서서히 죽는 죽음을 경계하자.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숨을 쉬는 행위보다 훨씬 더 큰 노력을
필요로 함을 기억하면서
-류시와의 <시로 납치하다> 중 마사 메데이로스‘천천히 죽어 가는 사람‘
온몸이 차가워지고 어떤 불빛으로도 나를 따뜻하게 할 수 없지만 단 하나 나 자신만이 차가워진 몸을 따뜻하게 데워줄 수 있음을 알게 한 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또, 양자오 <교양으로서의 시> 중 추안민의 시는 잔잔한 공감과 위로를 준다.
이 난잡하고 시끄러운 세계는
시계방과 무척 닮았다.
들쭉날쭉 올레줄레
각자 자기 시간으로 자기를 간다.
끊임없이 시 그리고 시인과 대화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적인 공허와 갈증을 느낄 때 격정적인 시의 폭발과 조우하는 순간과 비록 답이 다를지라도 시인이 시에 내포한 공통적 신비를 깨닫는 순간 그리고 열정을 잃어가고 있음을 거듭 깨우쳐 주는 시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어느 날 그 시를 찾은 것‘이다.
오직 비 때문에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 선 건 아닙니다.
……..
나무와 나의 오랜 우정으로 거기에
조용히 서있던 거지요
…..
기다리며 이해하며
이 세계도 늙었다고 나무와 나는 생각해요
함께 나이 들어가는 거죠.
오늘 나는 비를 좀 맞았죠.
잎들이 우수수 졌거든요.
공기에서 세월 냄새가 나네요.
내 머리카락에서도
‘비 오는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 서다 ‘ 올라브 H. 하우게
어느 날 시의 한 장면 앞에 멈춰 서는 날이 올 것이다. 푸르른 날, 봄비 내리는 나무 아래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 순간‘ 말이다.
“인생에는 늘 시적인 건 아니지만 그 별 볼 일 없는 삶에도 시적인 순간은 있고,
그것을 붙잡을 때 우리는 시인이 되고 우리 인생도 시가 된다.”
-김이경 <시 읽는 법>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