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또, 새해

봄 이야기

by 아미달라

벚꽃 새해. 이쁜 말이다. 동네 산책을 나간 남편이 보내 준 사진 속 어느 집 담벼락에 소복이 핀 이른 벚꽃을 보며 김연수 작가의 단편소설 <벚꽃 새해>가 떠올랐다. 헤어진 여자 친구에게서 온 문자로 시작된 이야기는 4년 전보다 나아진 것 없는 두 남녀의 재회로 이어지고 만개한 벚꽃의 이미지와 어우러진 한나절의 만남은. ‘둘이서 걸어온 길이라면 헛된 시간만은 아니다 ‘라는 개운함을 남기며 마무리된다.


이 소설과의 만남은 문유석 작가의 <쾌락독서>를 통해서였다. 이 작품 외에도 <쾌락독서>에 소개된 다양한 작품들은 가라앉아 있던 마음을 흔들어놓았는데, 작가의 젊은 시절 독서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 대한 추억들과 오버랩되며 묘한 흥분마저 불러일으켰다. 문고판 세계 명작 소설로 시작해 순정만화를 거쳐, 김용의 무협지, 무라카미 하루키, <슬램덩크>, <태백산맥>, <토지>, 움베르코 에코, 비틀스로 이어지는 글은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고 글을 읽는 내내 입가의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특히 책을 읽는 행위 자체를 즐기기, 책을 읽고 남은 감각의 중요성, 그리고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에만 담아두지 말고 함께 나누라는 책의 프롤로그가 마음에 콕 박혔다. 작은 출렁임이 만나 큰 파도를 만들듯 서로의 감각과 생각이 만나 더 큰 출렁임을 만든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에게도 역시 책을 읽는다는 것은 그 순간을 즐기고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쳤을 때 고이 접어두었던 그 감정들을 활짝 펼쳐 다시 나를 만나고 새롭게 세상을 만나는 것. 기쁨이 밀려오는 순간이다.


<쾌락독서>를 시작으로 독서에 변화가 생겼다. 심심풀이로 하던 독서가 생활에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육아와 다른 일들에 치우쳐 있던 마음이 책으로 향했다. 우선 집에 있는 책부터 한 권씩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필사모임에 들어가 매일을 독서를 기록해 보기도 했다. 각자 책을 읽지만 함께 읽고 있다는 기분도 색다르고 독서 감상을 누군가와 함께 나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책상에 각 잡고 앉아 한 줄 한 줄 글을 읽어 내려가는 그 시간이 그냥 좋았다. 모든 에너지를 가족과 집안일에 쏟으며 느끼던 아내와 엄마로서의 만족감과는 또 다른 내 안에 가득 차 솟아나는 기쁨을 느꼈다. 나로 돌아가고 있다는 기쁨.


변화된 책 읽기의 첫 선택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었다. 대문호의 작품이라 엄청 진지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어라. 귀여운 구석이 있는 괴짜 노인이네 ‘하는 것이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의 첫인상이었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의 방대한 지식과 이야기꾼다운 면모에 감탄에 감탄. 도스토옙스키 사상의 정수가 담겨있다는 1권의 5편 <Pro와 Contra>에 이르러서는 이해도의 한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다시 읽는다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은 달라져 있으려나? 또, 조르바라는 사나이를 통해 존재의 가치를 찾아가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 시간은 더없이 좋았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지요?”

“자유라는 거지!”


주름투성이에 세상 풍파에 찌든, 하지만 강렬한 눈빛을 간직한 사나이. 인간 영혼의 구석구석을 누빈듯한 그가 절대 포기할 수 없던 단 한 가지는 ‘자유‘였다. 삶의 매 순간을 자기 자신으로 살며 온몸의 체중을 실어 두 발로 대지를 밟고 선 자유인 조르바. 모든 것을 다 잃은 그가 부주카의 선율에 맞춰 양팔을 한껏 벌려 추던 춤과 함께 조르바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춤추는 나를 상상했다. 그리스 해변 어디선가 중력을 거부하듯 온 힘을 다해 펄쩍펄쩍 뛰어오르는 해방감과 자유의 순간 아니 영원. 조르바와의 만남은 인간의 자유, 자유가 준 순간과 영원의 관념을 다시 인식하게 된 시간이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입안의 별사탕이 탕탕 터지는 기분으로 소리 내어 읽어보기도 하고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신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를 읽으며 서양의 근. 현대 문학에서 셰익스피어와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용되지 않은 작품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계절을 책으로 기억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감각적인 소설 <상실의 시대>는 봄을 떠올리게 한다. 미도리(초록)라는 이름의 등장인물 때문이기도 하고, ‘청춘‘의 한 때를 떠나보내는 주인공의 이야기에 동화되어서이기도 했다. 가을을 기다리며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의 멜로디와 함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되뇌는 폴을 추억하기도 하고, 강렬했던 첫 문장 ’ 국경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로 기억하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설국>은 눈 덮인 겨울 그 자체였다. <설국>을 처음 읽었을 때는 무언가 맹숭맹숭한 기분이 들었는데 두 번째 읽기 후 이 글은 이미지를 따라가며 읽어야 하는 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천천히 이미지를 따라 책을 읽다 보니 영화를 보듯 주인공의 감정선이나 미장센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글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때, 책 읽는 사람의 기쁨이란.


한 여름 아침의 시 읽기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무더운 8월의 여름 새벽. 멋진 풍경은 아니어도 창문너머 보이는 초록의 싱그러움과 파란 하늘, 수선스런 새들의 지저귐, 코에 송골송골 맺힌 땀, 마음을 환기시키는 시들, 한 권의 시집과 함께 8월의 농익은 여름은 지나갔다.


한 권의 책으로 시작된 독서의 즐거움은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알아차리게 했다. 읽는다는 행위만으로 가슴 가득 즐거움을 느끼는 나, 글의 행간을 읽어내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고 기억하고 감정을 담고 다시 떠올리고 또 다른 기억들과 연결시키고 음악과 그림과 시로 읽기의 범주를 넓혀가며 홍수처럼 밀려오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나를 각성하는 시간. 책 읽기의 기쁨은 일상으로 번져가 일상을 아름답게 느끼고 나를 새롭게 보고 삶의 반경을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넓혀가게 했다. 소란스럽지 않게 조금씩 밀려드는 감정들에 마음은 부풀어 올랐고, 기쁨이 달아나던 내 가슴에 봄꽃처럼 화사한 기쁨들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밤이다. 남편이 보내 준 사진 속 봄꽃과 다시 찾아온 기쁨. 문득 <벚꽃 새해> 속 이야기가 생각난다. 1997년 4월 1일 장국영은 그의 콘서트에서 이렇게 외쳤다고 했다. “오늘은 새해 첫날처럼 특별한 저녁이야.”


벚꽃이 새하얗게 펼쳐진 봄밤이면, 남편과 호젓하게 새하얀 밤길을 걸으며 다시 온 새해 같은 특별한 날을 만끽해야겠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