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합니다, 지니어스
1.
대구에 있는 U.S Airforce의 Sabre Inn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3개월 간 파트타임을 한 적이 있다.
2.
영어를 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경험삼아 하게 된 일인데,
평일 새벽 5시 20분에 출근하여, 오후 1시 20분에 퇴근하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루에 분명히 8시간을 근무하기는 하는데,
점심때 일이 끝나서 뭔가 매우 적게 일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신기한 파트타임이었다.
거기는 분명히 대구였지만, 행정구역상으로는 캘리포니아였다.
그래서 거기서 카드를 긁으면 캘리포니아에서 긁었다고 나오고,
방송도 미국 방송만 나왔고, 콘센트도 110v를 사용했다.
결제 할 때도 미국 달러로 결제했고,
식재료도 전부 미국에서 항공직송 된 것들이었다.
주변의 건물 양식들도 전부 미국식이라서,
군 부대 입구에서 출입증을 받아 운전을 하고 들어가 그 앞에서 주차를 하고 내리면
뭔가 순간이동을 해서 미국에 온 것 같은
정말 정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3.
아침 식사 시간인 6시 30분 부터 10시 30분까지, 거의 10명 이내의 단골 손님들만 방문했고,
대부분에 보잉에서 일하는 미국인들이거나, 퇴역한 미 공군들이었다.
나는 핫초코를 타 마시며
아침 일찍 방영되는 the late show나 the late late show를 보면서 그들을 기다렸다.
왜 아침인데 late show를 하냐고?
미국 시간으로는 그 시간이 밤이었으니까 그럴 수 밖에!
4.
나는 그 곳에서 Fantastic Ellen으로 불렸는데,
늘 누군가 How are you? 하면 내가 I'm fantastic! 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졸릴 때에도 느리게 눈을 깜빡이면서 그렇게 대답하는 날 보며,
그 사람들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었다.
그렇게 얼마 안 가 그들과 친해졌고,
나의 특유의 기억력은 거기서 아주 유용했다.
처음엔 아침 단골 손님들의 식성만 기억하다가,
일주일이 지난 후에는 점심에 50명도 넘게 오는 손님들의 식성을 전부 기억하게 되었다.
누구는 아침마다 서니사이드 업에 홈프라이를 먹었고,
그 홈프라이를 서니사이드 업의 노른자에 찍어먹었다.
또 다른 누구는 오버 이지에 프렌치 프라이를 먹었고,
또 다른 누구는 팬케이크에 슈커파우더 없이 메이플 시럽만 많이 달라고 했다.
누구는 점심마다 베이컨 치즈버거를 주문하면서
야채 다 빼고 사우전 아일랜드 소스를 추가했고,
콜라는 다이어트 콕만을 고집했따.
누구는 금요일 점심마다 치킨 샐러드와 이탈리안 드레싱,
누구는 베이컨 치즈 오믈렛에 스윗 티,
누구는 항상 to-go로 음식을 포장해 가면서 잼을 많이 요구했다.
그걸 다 기억하고 먼저 말해주면, 그 사람들은 그 사소한 것에 엄청나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럼 나도 너무 즐거웠다.
5.
어떤 날은 단골 중 하나가
아침부터 '와인이랑 하이네켄을 시키겠다'면서 농담을 했다.
'아침부터 술을 마시면 너의 몸에 안좋다'고 답하니까
웃으면서 '너는 그런것까지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너의 건강을 걱정한다'고 애기 했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러냐면서 완전 신나게 웃었다.
또 어느날은
베이컨 치즈버거 아저씨가 주문을 하고 나서
잘 안보이는 자리로 옮겼길래 가 보았다.
"나는 너를 trick에 빠뜨리려고 자리를 옮겼는데,
내가 여기 있는지 어떻게 알았냐"고 농담을 하는 그에게,
"난 모든것을 다 알 수 있다"고 답을 했다.
그러니 나를 genius라고 불렀다.
그러고는 "치킨 파마산에 만두가 딸려 나오냐"고 물어서
내가 스페셜메뉴를 확인하러 가니까
"genius라 모든걸 아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며 또 농담을 하는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으면서도 엄청 웃겼다.
나중에 내가 스윗 티를 리필해주러 가니까
어눌한 한국말로 "감사합니다 genius" 라고 해서 또 웃었다.
5.
아무튼, 그 곳에서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면서
가장 먹고 싶었던 음식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웨스턴 오믈렛이었다.
베이컨, 치즈, 햄, 버섯이 전부 들어가는 그 오믈렛을
그 레스토랑에서는 웨스턴 오믈렛이라는 이름으로 제공했고,
그건 K의 단골 메뉴였다.
K는 늘 같은 메뉴를 시켜서, 같은 방법으로 먹었는데,
오믈렛을 포크로 툭 잘라서
토스트 된 식빵에 올려서, 와작! 하고 먹었다.
그리고 나서는 사이드로 나온 베이컨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서 아작 아작 씹어 먹었다.
그러고는 냅킨에 손을 닦고,
스윗 티를 마시는 것이다.
나는 K가 토스트를 깨물때마다 와작! 소리가 나는 것이 너무 신기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는 그 와작! 와작! 소리를 듣다 보면,
나 자신이 토스트가 되어서 저렇게 경쾌한 소리를 내며 부서져보고 싶을 정도였다.
언제인가부터는 K와 아침을 먹을때 그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는데,
베이컨이 충분히 바삭하냐느니, 오믈렛 맛있냐느니,
매시드 포테이토와 나오는 그레이비는 맛이 괜찮냐느니 하는 시시콜콜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어젯밤 꾼 꿈 이야기, 내 고양이 버터에 관한 이야기,
내 본업이 원래 학생이고 휴학중이며 내 꿈이 무엇이다까지
별 이야기들을 다 하며 킬킬거렸다.
K랑 나는 금방 친한 친구가 되었고,
그녀가 가끔 음식을 포장 해 갈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대의 애정의 표시로,
잼을 엄청나게 많이 챙겨주곤 했다.
나중에는, 나로부터 받은 잼들이 너무 많아서
책상 서랍에 Ellen's zone을 만들고
거기에 나로부터 수많은 잼들을 쌓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그 기억이 너무 내게는 재미있는 기억이라서,
그 뒤로는 어떤 오믈렛을 먹어도 K 생각이 나서 행복해졌다.
6.
부록에는 K가 아침마다 먹었던 웨스턴 오믈렛은 아니라도,
내가 좋아하는 나만의 오믈렛 팁을 적어두겠다.
그런 추억이 없더라도,
아침에 오믈렛을 먹으면 분명히 기분이 좋아질것이다.
일어나서 눈을 비비며 휘리릭 오믈렛을 만들면서 잠을 깨고,
이내 만들어진 따뜻하고 부드러운 계란 덩어리를
입안에서 오물거리는 기분이 어떻게 싫을 수 있을까?
거기에 드립커피까지 한잔 곁들이면,
내가 지금 호캉스를 하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기까지 한다.
오늘 밤에는
'내일 아침은 오믈렛을 만들어서 먹어야지,
그리고 향긋한 커피도 내릴거야!'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잠들어보자.
나의 미라클 모닝의 팁은 명상도, 자기 암시도 아니다.
바로 나를 행복하게 하는 따뜻한 오믈렛과 향긋한 커피다.
나의 중요한 미라클 모닝의 비밀이,
당신의 아침을 역시 기대하게 만들어 주기를!
P.S 그 뒤로도 K랑 연락을 했느냐고?
당연하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K는 나의 Best Friend이다.
보고싶다, 나의 K.
코로나가 끝나면 어떤 나라에 그녀가 있든지 꼭 만나러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