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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쏘 Jun 17. 2023

행함없는 가짜믿음

야고보서 1장 22절 - 25절

[날마다 기막힌 새벽 #1148] 행함없는 가짜믿음

https://youtu.be/8u55LjpYsCI

김동호 목사 아카이브 - [날마다 기막힌 새벽 #1148] 행함없는 가짜믿음


위 김동호 목사님의 [날마다 기막힌 새벽 #1148] 영상의 본문인 야고보서 1장 22절 - 25절 말씀과 함께 목사님의 스크립트 전문을 직접 아래 인용하고, 저의 기도와 적용점을 덧붙여 보았습니다. 그러나 영상으로 전문을 들으실 때의 은혜 역시 누리시기를 추천합니다.


성경 말씀 본문 - 야고보서 1장 22절 - 25절

야고보서 1장 22절 - 25절

22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3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24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25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김동호 목사님의 스크립트 전문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동호 목사입니다. 오늘도 우리 잊지 않고, 우리 날마다 기막힌 새벽에 나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야고보서 1장 22절에서 25절까지 말씀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아멘."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제가 참 하나님을 믿으면서 제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이 저에게 자유를 주셨다는 겁니다. 그건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자유 속에서, 하나님이 저를 ‘단순한 피조물이 아닌 당신의 자녀로 창조하셨구나, 낳으셨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존중해주시는지를 우리에게 있는 자유의지 속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에게 주신 그 자유 때문에 하나님은 얼마나 속을 썩으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힘들어하시는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속박하려하지 않으시고, 구속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함부로 목에 목줄을 매고 끌고 다니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자녀이고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미신을 섬기는 사람들은 운명과 팔자를 믿습니다. 인생을 집을 짓는 건축에 비유한다면, 우리의 집을 우리가 짓는 것이 아니라 신이 짓는 것이에요, 자기 마음대로. 그리고 자기한테 좀 잘하면 좋은 집을 주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집을 주고, 이렇게 하는 나름 좀 폭력적인 신인데요. 그 집이 마음에 안 들면 신에게 제사 하고, 아부하고, 마음을 돌려서 그 집을 바꾸는 거, 그게 미신의 개념입니다. ‘팔자를 고친다’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기독교는 그런 개념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 준행하는 자는 반석위에 터닦고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 들어가 있어요. 집을 우리가 짓는다는 것이에요, 지혜롭게.

그런데 하나님은 "네 인생의 집은 네가 짓거라" 하고 내팽개치시는 분이 아니시라서, 지을 수 있는 자유, 지을 수 있는 지혜, 지을 수 있는 능력을 주시고 우리를 이렇게 지키시는 분이세요. “그래, 열심히 지어봐. 짓다 실수하면 내가 다시 기회를 줄게” 하시는 분이신데,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스스로 건축할 수 있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게 기독교의 특징이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여러분, 미신을 섬기는 사람은 이사한 번도 아무 날이나 아무 데나 못 갑니다. 꼭 무당에게 찾아가서 “어느 쪽으로 가야되냐? 어느 날짜에 가야 되냐?” 받아야 됩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언제 이사가나요? 자기가 가고 싶은 날 가면 되죠. 어디로 가면 되나요?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가면 돼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거든요. "네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나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이게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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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금 모순되어 보이는 것이 하나 있기는 있어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자유와 함께 주신 것이 있어요. 그게 율법이에요. 율법. 우리가 얼핏 생각하면 둘은 모순되는 개념 같아 보이죠. 율법은 얼핏 생각하면 "이대로만 가", "이렇게 살아"하는 좀 구속적인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자유와 함께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어요. 겉보기에는 자유와 율법이 모순되어 보이지만,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자유는 법 안에 있습니다. 물론 우리 인간이 자유가 있기 때문에 법을 어길 자유도 있지만, 여러분 그 법을 벗어나는 순간 자유로 선택한 어긴 법이 우리의 자유를 박탈합니다. 자유는 법 안에 있거든요. 율법은 우리를 자유케 하기 위해 주신 것이지 우리를 속박하기 위해 주신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도 있잖아요, ‘자유케 하는 율법‘이라고. 이게 굉장히 모순되어 보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에요. ’자유케 하는 율법‘. 우리의 자유는 하나님의 율법,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에요.

대부분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율법을 하나님이 주셨을 때, “순종하겠습니다 ”해놓고 대충대충 적당히 적당히 눈치보면서 지켜요. 교회에 와서는 하나님의 식대로 사는 것처럼 세상에 나아가서는 세상 식대로, 뭐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이 있죠. 그런데 그것을 옳지 않다 생각하고 율법을 한번 잘 지켜봐야지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그게 바리새인들이었어요.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한번 잘 지켜보자‘라고 작심한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율법을 잘 지키게 되었죠. 근데 율법을 잘 지키다가 교만한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라는 거예요. 자랑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율법을 잘 지켜 나는 너와 같지 않아, 나는 세리 같은 사람은 아니야‘ 이런 오만한 마음이 들어가면서부터 자유케 하는 율법이 오히려 인간을 구속하는 ’율법주의‘로 바뀌게 돼요.

여러분, 율법은 자유케 하는 것이고요. 율법주의로 넘어가면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어’하는, 율법이 구속의 도구가 돼요. 이게 아주 예리한 차이인데, 굉장히 중요한 차이에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키려고 하는 사람에서 율법주의자로 넘어가게 되었어요.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에요. 율법을 잘 지키고 살면 우리가 자유하고, 우리가 행복하고, 잘 살기 때문에 주신 것이지, 뭔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너 안 지키면 죽어, 너 안 지키면 이렇게 할거야” 겁주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닌데, 자기들이 좀 율법을 조금 잘 지킨다고 자랑하다가 “너희들은 그렇게 하면 천당 못 가” 하고서 율법주의로 변질이 됐어요. 이건 매우 중요한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거예요.

예수님은 율법주의자들, 바리새인들을 싫어하셨어요. 사실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을 육체가 없거든요. 또 율법을 좀 지킨다고 구원을 얻었으면, 여러분 구원의 공로가 하나님께 있는 게 아니고 우리에게로 돌아오는 것이잖아요. 그건 아주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사탄의 계교라고 얘기할 수 있어요. 그래서 중세 교회도 비슷한 맥락으로 흘러갔어요. 고행을 하고 금욕을 하고, 뭐 헌금을 많이 하고 이렇게 되면 구원을 얻는다. 베드로성당인가? 이제 신축하며 개축하면서 돈이 많이 드니까 면죄부를 팔았잖아요. ‘헌금함에 돈이 딸랑 떨어지는 순간에, 부모님을 위해서도 헌금할 수 있는데 죽은 부모님을 위해서도, 그렇게 하면 연옥에 있던 부모가 천국으로 옮겨진다.‘ 뭐 이런 정도로 중세교회가 타락하기 시작했어요.

근데 여기에 대해서 반발하여 나온 것이 종교개혁자들인데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율법을 행하므로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이게 이제 로마서의 핵심이고 또 종교개혁자들의 굉장히 중요한 생각이었죠. 오직 믿음. 그게 맞아요.

그런데 여기도 또 치우침이 있어요. 좌로도 치우치지만 우리는 우로도 치우치거든요. 오직 믿음. ’율법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거야.‘ 즉, 율법주의를 배격해야 되는데 율법주의를 배격하다가 율법까지내다버렸어요. 그냥 ”그냥 주여주여 하고 믿기만 하면, 마음으로 믿기만 하면, 우리 행동은 어차피 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셨으니까, 죄인이라는 걸 인정해주셨으니까, 믿기만 하면 돼“ 해서 율법주의를 버리다가, 율법을 버리는, 그것을 이제 값싼 은혜주의라고 얘기하더라구요. 즉 은혜가 은혜주의로, 율법을 율법주의로, 이렇게 될 때 이게 다 치우침의 현상이 일어났어요.

종교개혁자들에 의해서 오직 믿음으로, 그러니까 중심을 잡은 건 좋은데, 또 지나쳐서 율법을 무시하게 되니까, 야고보가 바로 그것을 지적하고 나섰어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그래서 ’자유와 율법의 밸런스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 이 야고보서의 매우 중요한 정신이라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길을 몰라서 길을 물었어요. 그랬더니 친절히 길을 가르쳐 주었어요. 그러고선 ’잘 알았다고 당신이 가르쳐준 거 내가 믿고 가겠다‘고 말은 해놓고 안 간다면, 믿은 거예요? 안 믿은거에요? 안 믿은거에요. 그거 다 알아요. ’네가 믿는다고 말만 하고 내가 한 말을 믿지 않는구나.‘ 그 약도 그려진 대로 그냥 모르는 길이지만 믿고 가야만, 그것을 믿은 거거든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거는 가짜 믿음이죠. 그러니까 우리가 "믿음이 있다" 라고 하면, 뭘 믿어요? ’하나님을 믿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옳다는 것을 믿어요.‘ 그러면 그대로 살아야죠.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입으로만 "주여주여" 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잖아요.

지나친 율법주의도 문제이지만, 율법 자체를 부인하고 율법주의를 배격하다가, 결국 율법까지 무시하고 그냥 행함이 없는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믿음을 믿음인 것처럼 알고 신앙생활 하는 일은, 매우 심각한 오류를 범하는 것과 같아요.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식구들은 율법주의에도 빠지지 말고, 은혜주의에도 빠지지 말고, “율법과 은혜“. 여러분, 율법과 은혜는 대치되는 개념이 아니에요. 율법과 자유는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에요. 율법 속에 은혜가 있고, 율법 속에 자유가 있는 것이에요.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니까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 밸런스를 잘 유지해서 율법 좀 지켰다고 행위를 자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고(바리새인처럼), 그렇다고 율법을 아주 무시하고 값싼 은혜주의에 빠져서 그냥 "주여 주여" 주의 이름만 부르고 사는, 겉껍데기 신앙인들처럼 살지도 말고, ”자유와 율법, 은혜와 말씀“, 이 균형을 잘 잡고 살아서, 하나님 앞에 칭찬받고 인정받는 우리 날기새 가족들 다 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야고보서를 통하여 믿음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고 자유를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은 자유케 하는 율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율법을 적당히 대충대충, 하나님 앞에서는 말씀대로 사는 것처럼 세상에 나가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그들이 치우쳐서 율법주의자가 되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잘못을 지적하느라고 종교 개혁자들이 나와서, ”구원을 얻는 것은 행함에 있지 않고 율법에 있지 않고 믿음에 있다.“ 사도 바울이 고백했던 것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또 치우쳐서, 율법주의를 버리다가 율법까지 버려서 행함이 없는 믿음이 되어 죽은 믿음에 이르게 되자, 야고보서를 통하여 또 우리에게 중요한 믿음의 균형을 잡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 사랑하는 날기새 식구들,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인데, 듣기만 하지 말고 실천하고, 행함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복 받고, 칭찬받고, 인정받는 하나님의 사람들 다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진리는 예리한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아요. 까딱 잘못하면 오른쪽으로 넘어지고, 까딱 조금만 잘못하면 왼쪽으로 넘어지고, 이 균형을 잡는 게 참 중요한데 로마서와 야고보서가 그 균형을 잡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하는 것들이, 설교가, 참 어려워요. 잘못하면 쏠리기 때문에.

그런데 여러분들이 잘 이해하시고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행함으로 구원 얻는다는 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행함 속에 믿음이 있고, 행함 속에 율법 속에 자유가 있다’라는 말씀, 우리에게 신앙에 큰 도움이 되는 오늘 말씀이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내일 또 뵙겠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기도 Oratio


하나님, 오늘은 두가지 중요한 극단을 보았습니다. 바로 율법주의자와, 값싼 은혜주의자입니다.


율법주의자가 되어, 종교적 우월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 교만함을 가진다면, 그 교만은 패망의 선봉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값싼 은혜주의자처럼 아예 율법을 버린 채 살아간다면, 그것 역시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하나님, 당신은 결코 우리의 행함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값 없이,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가 세상의 기복신앙에서처럼, 또는 바리새인들처럼, 율법을 지켜야지만 구원을 얻는다는 잘못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겠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자유는, 율법 안에서의 자유임을 기억하고 행함 없는 가짜 믿음이 아닌, 행함 있는 진짜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성령님, 우리를 인도 해 주세요.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인한, 값없이 은혜로 받은 선물이다.

2) 즉, 우리의 구원은 율법대로 행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3)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 역시 죽은 믿음이다.

4) 따라서,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누리는 것과, 그 참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지침이 되는 율법을 행하는 것, 그 둘의 균형을 잘 맞춰 나가야 한다.


하나님 나라 살기 Contemplatio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행함 속에 믿음이 있고, 행함 속에, 율법 속에 자유가 있다.


1.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읽고(성경 말씀 읽기)

2. 주님과 대화하고(묵상, 기도, 중보기도)

3. 어떻게 행해야 할지 구체적으로 적어보고(적용점을 작성하기, 나누기)

4. 그것을 실천하기에 힘쓰는(작성한 적용점을 가지고, 정기적으로 하나님과의 회고 시간 갖기)


행함 있는 진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자.




 오늘의 찬양: 믿음이 없이는 - 유승아 전도사

https://youtu.be/hqhIwI2VRpA



주님 제 마음이 너무 둔해서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속하여 이 땅만 보다가
주님 손을 놓쳤습니다

나는 나그네로 왔는데
왜 주저앉게 되었나
나는 청지기인데
언제부터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버렸나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고된 수고도 다 헛될 뿐이라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삶의 모든 자리에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주님 제 마음이 너무 둔해서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속하여 이 땅만 보다가
주님 손을 놓쳤습니다

나는 나그네로 왔는데
왜 주저앉게 되었나
나는 청지기인데
언제부터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버렸나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고된 수고도 다 헛될 뿐이라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삶의 모든자리에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주를 찾는 자 반드시 만나리
믿음이 없어서 무너진 삶의 모든 자리에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다시 주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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