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침 묵상

당신은 남의 동기를 헤아릴 때 예단하는가?

잠언 16장 2절

by 제쏘
잠언 16장 2절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갈등 - 동기를 예단하지 말라

앞서 살펴본 잠언이지만 미처 다루지 못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심령을 참으로 평가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므로 우리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동기를 완전히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7장 1절은 남을 "비판"하는 일을 단죄한다. 그러나 남을 평가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비판이란 (단지 사람의 일면을 비평하는 게 아니라) 사람 자체를 최종적으로 정죄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심령의 동기를 완전히 알아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이다.

고린도전서 13장 7절에 사랑은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란다고 했다. 어수룩해지라는 말은 아니지만 늘 습관적으로 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뜻임은 분명하다. 심중을 제대로 들여다볼 줄도 모르면서 섣불리 남의 행동의 동기를 시기나 교만이나 적의나 탐욕으로 돌려서도 안 된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거야 옳지만 거기서 선을 넘어 남의 속뜻까지 훤히 아는 양 행세한다면, 단순한 이견이 위험한 분쟁으로 비화된다. 하나님만이 심령을 감찰하실 수 있다(롬 2:16).


Q. 남의 동기를 헤아릴 때 적절히 자제하는가? 당신이 다른 사람의 동기를 심히 오해했던 적을 떠올려 보라.


이전에는 사람을 오해하는 것을 극히 경계하여 무조건 선해하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했다. 그런 마음이 어수룩하고 순진한 마음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런 것을 의도했던 이유를 생각해 보다가 어쩌면 내 본성이 매우 시니컬하기 때문에 반대방향으로 노력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나쁘게 보고자 하면 얼마든지 나쁘게 볼 수 있다. 정말 자신 있다(?). 그러나 좋은 눈으로 사람을 보는 태도, 즉 사람의 의도를 선해하고 사람의 좋은 면을 바라보는 태도가 결국 그 사람이 좋은 방향으로 가도록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일조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태도는 내 삶에서 굉장히 지배적인 태도였다. 내가 속는 것과 상대를 의심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항상 전자를 선택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전의 나의 태도가 어쩌면 너무 극단적인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본문에 나와있듯 늘 습관적으로 남을 의심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믿어버리는 태도도 좋지 않다. 남의 속뜻까지 훤히 아는 양 행세한다는 것은, 남의 속뜻이 나쁘다는 것을 의심하는 것만 말하는 게 아니다. 남의 속뜻이 선하다고 맹신하는 것도 어찌 보면 교만인 것이다.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이시므로, 어떤 방향으로든 내가 다른 사람의 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사람을 꿰뚫어 보려는, 도를 지나치는 행위를 경계하기를 원한다.


하나님, 무조건 다른 사람을 의심하는 것도, 또한 무조건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심령을 꿰뚫어 볼 수 있다는 교만에서 비롯된 마음임을 알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심령을 감찰하시는 분은 오직 여호와이십니다. 특정 일면을 보고 사람 자체를 최종적으로 정죄하거나 선해하는 교만을 저지르지 않기를, 사람이 다면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관계 맺기를 원합니다. 주님, 나를 인도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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