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화된 좋은 문장이 나를 찾아오는 경우가 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뭐."
관대하고 융통성 있는 기준을 갖게 된 후부터 나는
할 수 있는 말이 적어졌다.
물에 오래 불린 중국 당면처럼
흐느적거리는 경계선 앞에서 나는,
나에게는,
판단이나 심지가 곧은 말은
불가능보다 더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내가 감히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어.
좋다면 좋은 거고 아니라면 아닌 거겠지.
남한테 피해만 안 주면 되잖아.”
그 모든 흐느적거리는 경계선 사이에서
칼처럼 솟은 수정들을 본다.
"이래야지,
저래야 하잖아,
왜 그렇게 안 하니?" 하는 말들 앞에서
나는 속수무책으로 눈알을 굴린다.
갈기갈기 찢어지는 용수당면.
물에 불어 떡이 되어버린 내가
기분 나쁜 투명한 색을 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