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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Jul 26. 2016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

첼로의 신약성서



1. 베토벤 이전에는 첼로 소나타라는 장르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아니, 애초에 첼로라는 악기 자체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바로 전 세대인 모차르트만 봐도 첼로 곡의 비중이 꽤 낮다.


2. 베토벤이 어쩌다가 첼로라는 악기에 주목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제일 유력한 건 베토벤이랑 같은 악단에서 첼로를 연주하던 롬베르크의 연주를 듣고서부터라는 것. (베토벤은 그 악단에서 비올라를 연주했다.) 첼로의 ‘폭넓은 음역대에서 나오는 짙은 호소력’을 좋아했다고 한다.


3. 문제는 당시의 메인 악기였던 피아노의 소리가 지금보다 매우 짧고 작았다는 사실이다. 함부로 첼로같이 웅웅거리는 악기랑 소리를 섞었다가는 자칫 민망해지기 쉬운 상황. 베토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첼로의 숨을 죽이기보다는 피아노를 최대한 화려하게 사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베토벤 첼로 소나타의 매력은 페달을 밟지 않고 연주할 때 더 잘 드러난다고 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잘만 밟으면 페달 밟고 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꼭 원본 버전 그대로!를 외칠 필요는 없쟈납~?


4. 베토벤이 처음으로 첼로 소나타를 작곡한 건 프로이센 왕의 의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 프로이센 왕이 의뢰한 건 현악 4중주였다. 의뢰는 현악 4중주로 받아놓고, 곡은 생소한 첼로 소나타로 갖다준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여간에 깡 좋은 양반이다.


5. 어쨌든 프로이센 왕은 베토벤이 준 첼로 소나타를 군말없이(?) 받았고, 초연은 당시 왕실 전속 첼리스트인 뒤포르가 맡게 된다(피아노는 베토벤이 직접 연주했다). 결과는 대성공.


6. 뒤포르는 현대적인 첼로 연주법의 기초를 다진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베토벤이 첼로라는 악기의 위상을 한 단계 올리는 곡들을 작곡하지 않았더라면 뒤포르의 이름이 오늘날처럼 우아하게 회자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스스로가 위대한 연주자이기도 했지만.


7. 베토벤은 총 다섯 곡의 첼로 소나타를 남겼는데, 제일 유명한 건 이 3번 곡이다. 무려 ‘첼로의 신약성서’라고 불린다(구약성서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베토벤이 한창 왕성하게 작곡을 하던 시기에 나온 곡이기도 하다. 1년에 교향곡을 두 곡씩이나 만들던 시절.


8. 자필 악보에는 ‘눈물과 슬픔 사이에서’라는 말이 적혀 있다고 한다. 이 표현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들으면 슬픈 감정이 눈물로 표현될 때까지의 과정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는데,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그런 느낌까지는 잘 안 든다. 나한테 첼로 소나타 3번은 외로움, 고독함, 허무함과 강인함, 여유로움, 우아함 등이 역설적으로 맞붙는 곡이다. ‘병신같지만 멋있어’의 상징 같은ㅋㅋ


9.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버전은 마이스키와 아르헤리치의 연주. 재즈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즉흥적인 느낌이 좋다. 근데 유튜브엔 이 버전이 없어서 로스트로포비치와 리히터의 연주 링크를 건다. 겁나 우아해서 커피 마시고 싶어지는 버전이다. 멋진 어른이 되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 이번달 트레바리 예술아에서는 제러미 시프먼의 <베토벤, 그 삶과 음악>이라는 책을 함께 읽었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베토벤의 음악을 즐겨 듣는 중이다. 발제해주신 정경미님께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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