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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May 23. 2017

<인포메이션> 독후감

잡소리 모음;;

<인포메이션> 읽으면서 정리한 단상(혹은 잡소리;;) 모음.


1.


어떤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그 명제의 ‘역’이나 ‘이’가 참이 되는 건 아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수학시간 때 배우는 내용이다. 그땐 이걸 왜 배우나 싶었다. 아마 이걸 헷갈리는 바람에 잘못된 믿음을 가지게 되는 사람이 많아서 그러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가 별 생각 없이 배운 ‘역’과 ‘이’는 기존의 지식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보는 좋은 방법으로 활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 하지 않나. 인식의 도약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현재 딛고 서 있는 지점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을 다른 시선으로 비트는 것은 생각보다 참신한 무언가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


2.


당시 모회사인 AT&T는 연구 부서에 즉각적인 실적을 요구하지 않았다. 덕분에 벨 연구소는 직접적인 상업성이 없는 수학이나 천체물리학을 연구할 수 있었다. 어쨌든 광범위하고, 독점적이며, 거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는 AT&T의 사업과 현대 과학은 직간접적으로 관련될 수밖에 없었다. 모회사의 사업 분야가 폭넓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벨연구소의 핵심 사업은 초점에서 어긋나 있었다.


AT&T는 돈이 많았고, 그래서 잉여를 품을 수 있었다. 그것도 꽤나 무신경하게. 피터 틸 말마따나, 생존 걱정을 해야 하는 한 그 어떤 조직(개인이라면 얘기는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도 스케일 있는 가치에 몰입할 수 없다. 그러니까 시작부터 풍요로울 수 있는 소수를 제외하면, 큰 꿈을 꾼다는 것의 시작은 어떻게든 잉여를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나이브한 선의로 할 수 있는 건 자기만족밖에 없다.


그나저나 오늘날에는 구글이 저 시절의 AT&T같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 같다. 반 세기 후의 우리들은 분명 구글로부터 시작된 많은 기술적, 학문적, 인지적 도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거다. 이미 그러고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3.


“새로운 과학적 분석 방법이 나오고 인기를 끌면서 이에 매료된 수많은 다른 분야의 동료 과학자들이 정보 이론의 개념들을 자신의 분야에 적용하고 있다. (…) 정보이론 분야에서 연구하는 우리로서는 이런 인기의 물결이 분명 기쁘고 흥분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와 함께 위험 요소도 따라온다.” 섀넌은 정보이론의 핵심은 수학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개인적으로 정보이론의 개념이 다른 분야에서도 유용하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곳에 쉽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었다. “정보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단어들을 새로운 영역으로 옮기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가설과 실험을 통한 검증을 거치는 느리고 지루한 과정이다.” 그뿐만 아니라 섀넌은 “우리(정보이론) 분야”에서도 이런 힘든 과정이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연구나 더 하라는 얘기였다.


뭔갈 하다 보면, 어느 정도 뭔갈 이루게 된다. 뭔갈 이루다 보면, 이를 지렛대 삼아 다른 것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품게 된다. 가뜩이나 같은 일상이 반복되기만 해서 지겨웠던 차에, 이 새로운 가능성은 생각만 해도 설렌다. 그러나 이 설렘은 어지간하면 위험하다.


거의 모든 경우에 기존 분야는 아직 충분히 탄탄해지지 않았다. 어설프게 다각화랍시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하다 보면, 기존 분야에서의 경쟁력을 상실하게 될 수 있다. 새로운 영역에서 대박이 나는 것보다 기존 영역이 무너지는 게 훨씬 쉽다는 걸 감안하면, 새로운 분야로의 어설픈 진출은 지루함을 참지 못한 나머지 절벽으로 뛰어가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새로운 분야는 어느 정도 연결된 분야라고는 하지만 기존 분야와 완전히 같진 않다. 기존 분야에서 쌓인 무언가는 분명 처음에 맨땅에 헤딩할 때보다야 새로운 분야에서의 시작을 용이하게 해주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분야에서 안착하는 게 마냥 쉬운 건 아니다. 그러니까 지루해도 집중하자. AT&T나 구글처럼 잉여를 즐길 수 있을 때까진.


4.


‘Think Big, Start Small’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포부가 크면 클수록, 그 포부는 북극성같을 확률이 높다. 세계 평화, 빈곤 퇴치, 이런 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죽을 때까지 절대로 못 닿는 꿈이다. 그러니 큰 포부는 보통 ‘지점’이 아니라 ‘방향’으로 존재한다. 그게 더 좋기도 하다. 그래야 평생 지루할 틈이 없다.


가만히 북극성을 바라보기만 하면서 ‘아, 저기로 가야 하는데’라고 생각만 하면, 그것처럼 불행한 게 없다. 꿈과 ‘지금 여기’를 잇는 구체적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보통 그 구체적인 무언가는 북극성이랑 비교하면 참 별볼일 없다. 나이키 뺨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하는 수많은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보통 하루종일 고객에게 보낼 환불 안내 문자에 ^^를 넣을지 말지 등을 가지고 고민한다. ‘예술을 즐기는 인공두뇌’를 만들기 위해 섀넌이 집중한 건 눈 앞의 암호였다.



5.


정보가 정의되는 데에는 백 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정보물리학이 태동하고 커가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은 수십 년이었다. 갈수록 세상이 빠르게 변해가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히 문제를 푸는 것보다는 풀 문제를 정의하는 게 훨씬 어렵다. 문제가 일단 정의되면,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그 문제를 풀어낸다. 정보물리학같이 일반인의 직관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개척되는 걸 보라.


함께 풀어야 할 문제를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 그래서 구성원들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것. 조직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요건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회사를 세우는 이유는 혼자서는 해낼 수 없는 걸 바라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6.


사전은 단어들의 의미가 다른 단어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또한 모든 단어가 총체적으로 서로 맞물린 구조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모든 단어가 다른 단어를 통해 정의되기 때문이다.


‘나’라는 개념이 존재하기 위해선, 반드시 ‘나’와 대비되는 ‘너’가 존재해야만 한다. 인간은 아직 ‘너’ 없이도 존재하는 ‘나’를 만드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까 오롯이 나로 존재하고 싶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너’를 규명해내야만 한다. 필사적으로 ‘너’를 배제한 채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건, 오히려 ‘나’를 희미하게 만들기만 할 수도 있다. 존재는 관계를 통해 정의된다.


7.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신조어가 등재되려면 최소한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인류와 함께 유의미한 비중으로 존재했다고 여겨지려면, 적어도 5년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5년이나 살아남은 단어들이라니, 신조어들은 정말 대단한 분들인 것이었다!


이 트렌드라는 건 참 무서운 것이어서, 사업 아이템이 트렌디하다는 이유만으로 순식간에 몇십 억짜리 기업 가치를 인정받는 스타트업들이 나오기도 하고, 트렌드를 놓친 옷을 입고 화장을 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쉽게 매력없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엉덩이 가벼운 자들의 값싼 눈치게임이라고 폄하하기엔, 좀 익숙해졌다 싶으면 금새 바뀌는 이 트렌드들을 쫓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며, 트렌드를 무시하고 살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게 너무 많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진중한 이들은 보통 ‘클래식’을 대안으로 삼는다. 어느 정도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것들은 기본은 하기 떄문이다. 트렌디한 것들에 비해, 클래식한 영역은 상대적으로 무게감도 있고, 뭘 해야 하고 뭘 하면 안 되는지 등에 대한 규범도 다져져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선 이 클래식이 문제일 수 있다. 보통 클래식의 사이클은 5년보다 훨씬 길다. 즉, 클래식한 방식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내기 위해선, 적잖은 인내와 내구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대기업들을 우습게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은 클래식하게 가도 된다. 덜 트렌디해 보여도, 그들은 클래식의 힘이 발휘될 때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의 자원을 확보하고 있다.


작은 회사들이나 아직 강대국이라고 할 수 없는 나라들은, 방망이를 짧게 잡아야 한다. 자산가들이나 가치투자 한답시고 저평가된 주식 사놓고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수 있지, 개미들이 그렇게 넋놓고 있으면 은퇴하기 전에 모아야 할 만큼 못 모은다. 준엄한 현실에서 찡찡거리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바람이 어떻게 불고 있고 그래서 파도가 어떻게 치고 있는지 면밀히 관찰하는 건 작고 약한 모든 조직들의 의무다.


8.


케임브리지에서 수학은 정체되어 있었다. 1세기 전 뉴턴은 케임브리지대학의 역대 두 번째 수학교수가 됐고, 수학의 모든 힘과 위신은 그가 남긴 유산에서 나온 것이었다. 19세기 한 수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영국 학계가 “혁신하려는 모든 시도를 뉴턴의 명성에 누를 끼치는 것으로 여겼다.”


이듬해인 1838년, 미국인 새뮤얼 모스는 프랑스 당국을 방문해 전선을 이용한 ‘전신’을 제안했다. 프랑스 당국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공중으로 전달되는 전신 신호를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전선이라는 것은 폭도들에게 절단될 수 있었다. 기술 심사를 맡은 의사이자 과학자인 쥘 기요는 “몇 가닥 초라한 전선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라고 빈정거렸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보다 먼저 전화를 발명할 뻔했던 전신맨 엘리샤 그레이는 1875년 특허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화를 거의 연구할 가치가 없다며 이렇게 썼다. “말하는 전신에 벨이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 기술은 과학적으로 대단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현재로서는 아무런 상업적 가치가 없습니다. 기존 방식으로도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공은 종종 그 다음의 성공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된다. 위대한 성공일수록 그렇다.


9.


1881년까지 사살상 거의 모든 교환수는 여성이었다. W. H. 에커트는 이렇게 말했다. “여성들이 더 진득하고, 맥주도 마시지 않으며, 언제나 자리를 지켰다.” 회사에서 여자 교환수들에게 소년 교환수들만큼 적은 혹은 그보다 더 적은 급여를 준다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전화 교환기는 다른 신기술인 타자기와 함께 여성의 화이트칼라 노동시장 진출을 촉진했다.


1979년 워싱턴에 있는 아메리칸대학에서 외래 시간강사(하버드 박사학위를 가진 여성으로서 얻을 수 있었던 최고의 직업)로 역사를 가르치던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의 저서가 출간되기 전까지, 인쇄가 중세에서 근대로의 전환에 필수적인 통신 혁명이었음을 포괄적으로 연구한 사람은 없었다. (…) 아이젠슈타인은 독자들에게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그리고 과학의 탄생이라는 근대 초기 유럽의 변화에서 인쇄가 필수적인 역할을 했음을 각인시켰다.


느리지만, 정말 느려 터졌지만, 세상은 분명 좋아진다. 친해지기 위해선 꼭 어색한 시간을 거쳐야 하고, 잘해지기 위해선 꼭 서투른 경험을 반복해야 한다. 좋아지기 위해선, 충분히 좋지 않은 스테이지를 지날 수밖에 없다. 아직 충분히 좋지 않다는 걸 인지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해 나간다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과정이겠지만, 과거를 돌아보자. 역사는 작은 시도들이 쌓이고 쌓이면 결국은 위대한 변화가 만들어진다는 것을 지금까지 수도 없이 보여줘 왔다. 지치지 말고, 분통 터뜨리지 말고, 한 뼘의 진보만으로도 어느 정도 스스로를 뿌듯해하면서 계속 전진해갈 수 있길.


10.


인간은 끊임없이 패턴을 만들어냄으로써 정보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킨다. 외부로부터 엔트로피를 수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닫힌 세계에 사는 한, 우리의 삶은 갈수록 안정되고, 갈수록 예측가능해진다. 반대로 외부 세계와 교류하면,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불안하고 또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많은 제국의 시작이 어딘가의 변방이었던 건 절대 우연이 아니다. 변방성, 그러니까 끊임없이 외부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는 맥락은 언제나 부침이 잦지만, 그만큼 강한 생명력을 길러준다. 닫히면 끝이고, 고이면 썩는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도약을 원하는데 맘처럼 쉽게 안 돼서 답답한 상황이라면 뭘 해야 하는지는 꽤나 명확한 것 같다. 지금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거나 지금 가장 풍요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외부와 접촉하는 것. 수학, 전기공학, 컴퓨터, 생물학, 금융.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이 다섯 분야의 공통점은 정보이론이라는 신생 학문의 영향을 받아 크게 발전했다는 것이다. 벨연구소의 초대 수학자문부장이었던 손턴 프라이가 수학자와 엔지니어 사이의 충돌을 권장했던 건 그런 점에서 매우 현명한 처사였다.


11.


하나의 물질이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때는 언제일까요?” 슈뢰딩거는 이렇게 질문하고는 (성장, 섭식, 번식 같은) 통상적인 의견들을 건너뛰고 가능한 한 단순하게 대답했다. “비슷한 환경에서 무생물이 ‘계속할 것’으로 기대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움직이거나 환경과 물질을 교환하는 등 ‘어떤 일’을 계속할 때 우리는 살아 있다고 합니다.” 대개 물질은 멈추게 된다. 기체 상자는 균일한 온도에 이른다. 화학적 시스템은 이런저런 방식으로 “활기 없는 불활성의 물질 덩어리로 쇠퇴하고” 최대 엔트로피에 이르면서 제2법칙을 따른다. 반면 생물은 어떻게든 불안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 유기체의 안정적 상태는 죽은 것이다.


슈뢰딩거의 정의를 따르면, 살아있다는 건 불안정함을 견뎌내면서 특정한 변화를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떠한 불안정함도 감당하지 않으려 하는 건 그러니까 삶을 감당하기 싫다는 뜻이며, 딱히 만들어내고 싶은 변화가 없다는 건 살아있다고 여겨질 의사가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삶의 생기는 불확실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피하지 말고, 무언가를 해내려는 욕구를 잃지 않는 것에서 온다.


12.


피험자가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면 그 글자는 잉여성이 높으며, 새로운 정보가 아니다. 말하자면 정보는 뜻밖의 것이다.


무언가를 기획할 때, 그 기획의 내용이 ‘익숙한 근사함’이라면 그것처럼 피해야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무언가를 근사하게 만드는 데에는 적지 않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구태여 기억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맛있는 것보다 특이한 게 더 좋다. 맛은 따라오더라. 아무리 맛있어도 흔하면 메뉴에 올리지 않는다. 거꾸로 맛은 조금 떨어져도 위트 있는 요리라면 메뉴에 올린다.”


13.


“유기체가 아니라 유전자가 자연선택의 진정한 단위”라는 도킨스의 주장은 정말 그럴듯하지만, 아직까지는 확실히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주장으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나 그럴듯하기 때문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은 수많은 사람들은 이걸 ‘굉장히 매력적인 가설 중 하나’가 아닌 순수한 팩트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럴듯한 썰 - 그러니까 내부적으로는 완결성이 있긴 하지만 아직 확실하게 참인지는 알 수 없는 - 은 위험하다. 워낙에 말이 돼서 이대로 믿어도 될 것 같고, 이대로 하면 될 것 같지만,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지간히 합리적인 사람 또는 조직이라고 해도 워낙에 그럴듯한 내적 완결성을 갖춘 아이디어를 진행하다 보면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계속 가지고 있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내적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어느 정도 어수선함을 떨쳐버리지 못한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게 나을 수도 있다. 1)아이디어의 내적 완결성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아낄 수 있으며, 2)그 아낀 역량으로 좀 더 빨리 실행해서 외부로부터 피드백을 받을 수 있으며, 3)실행하는 주체도 아이디어의 어수선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좀 더 겸허한 태도로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적으로 완결된 매력적인 콘텐츠는 사랑보단 경계의 대상이어야 한다.


14.


어떤 특정한 순간 프랑스의 인구가 홀수인지 짝수인지는 무작위적이지만, 프랑스의 인구 자체는 확실히 무작위적이지 ‘않다’.


스케일이 커질수록 예측하기 쉽다. 그러니까 디테일들을 구성할 때 우리가 신경써야 할 건 각 디테일이 얼마나 잘 들어맞느냐가 아닐 수도 있다. 그보다는 이 디테일들이 좋은 방향성을 갖추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야 각 디테일의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디테일들이 쌓여 거시적인 성공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판단은 예측 가능한 스케일을 베이스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수많은 작은 실패들을 용인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15.


망각은 기억만큼 중요할지도 모른다. (…) 정보 과잉은 혼란과 좌절뿐만 아니라 관점을 흐리게 하고 부정직함을 야기할 수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정보 처리 역량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갈수록 정보들이 많아지고 또 쉬워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기억하는 것보다 잊는 게 더 중요하다. 최소한으로 기억하지 않으면 정보는 상황을 개선시키기보단 개선을 방해하는 잡음이 된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이러이러한 정보들에는 귀를 막을 것’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16.


말에 대한 지식은 주지만, 침묵에 대한 지식은 주지 않으며,
글에 대한 지식은 주어도, 말씀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만드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우리를 더 무지하게 만들고,
우리의 모든 무지는 우리를 죽음으로 이끌어가지만,
죽음에 가까워진다고 해서 하느님께 더 가까워지는 것은 아니네.
- T. S. 엘리엇이 1934년에 쓴 시


유발 하라리가 새 책을 내는 모양이다. 그에 맞춰서 유발 하라리 인터뷰 기사도 피드에 곧잘 등장하고 있다. 요즘 가장 많이 떠돌아다니는 건 "AI에 수학·과학 맡기고, 우린 감정지능 과목 만들자”라는 제목의 조선일보 기사다.

메시지의 코어에는 동의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엘리엇의 시에 나오는 것처럼 지식이 아니라 지혜일 것이다. 그렇지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수학과 과학은 꼭 배워야 한다. 수학과 과학은 인류를 여기까지 진보시킨 사고방식에 대한 과목이다. 우리는 수학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을, 과학을 통해 겸손한 합리성을 배울 수 있다.


물론 유발 하라리가 실제로 이렇게 말했는지는 확실하진 않다. 인터뷰어가 유발 하라리의 콘텐츠를 제대로 이해 못한 채 자극적으로 풀었을 수도 있고, 번역 과정에서 왜곡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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