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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May 23. 2017

분노보단 애정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분노와 미움보단, 옳은 것에 대한 애정과 갈망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분노와 미움은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대상이 없어진 다음에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미워한 사람은 미워한 사람대로 다음에 미워할 사람을 찾게 되고, 미움받은 사람은 미움받은 사람대로 마음에 응어리가 지게 된다. 그렇게 분노는 분노를 키우고, 미움은 미움을 낳아간다.


분노와 미움이 문제를 잘 해결해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무언가에 대한 반대급부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려다 보면, 역설적으로 그 무언가를 강하게 필요로 하게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분노와 미움이 키우고 지켜낸 자존은, 계속해서 편을 가르기 마련이다. 상대를 구리게 만들지 않으면서 내가 빛나는 법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행동의 원천은 부정적인 것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긍정적인 것에 대한 긍정적인 감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설득도 잘 된다. 우리는 이미 ‘너는 이게 잘못됐어’보다는 ‘너가 이렇게 되면 더 멋져질 텐데’가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분노와 미움은 쉽지만, 애정과 갈망은 어렵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기 때문에, 무언가를 좋아하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상을 긍정하겠다는 의지를 필요로 한다. 반대로 무언가를 싫어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아주 약간의 관찰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무언가를 좀 더 자주 미워하고, 좀 더 드물게 사랑하면서 사는 이유는 그냥 우리가 게을러서인지도 모른다. 사랑은 꾸준한 노력을 요구하지만, 미움은 쉬우니까. 요즘처럼 여유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선, 근면하지 않으면 사랑도 쉽지 않다.


애정은 ‘틀리기도’ 쉽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상한 사람인 경우는 참 흔하다. 반면 구린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좋은 사람인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니까 틀리는 걸 지나치게 두려워하다 보면, 지나치게 까다롭게 긍정하는 사람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대개의 경우 No는 Yes보다 참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틀리지 않고 싶다는 욕심보단, 틀리는 한이 있더라도 더 멋지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세상을 더 사랑스럽게 만들어줄 거라고 생각한다.


부지런히, 또 용기있게 긍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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