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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Jun 07. 2017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독후감

룰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한 번 정한 룰은 설령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해도 어지간하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기도 하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게 되면, 반드시 다양한 니즈와 취향과 성향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룰이다. 룰은 갈등을 최소화하고, 산발적으로 흩어진 힘을 모으며, 함께 모인 '이유'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한다.


그렇지만 룰이 중요하다 해서 룰을 너무 신중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룰은 조직 내부의 행동양식을 적절한 정도로 통일해, 외부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요즘은 이 외부 환경이란 것이 점점 빨리 변해간다. 신중하면 느리고, 느리면 틀린다. 우리는 한 때 맞았던 많은 것들이 틀리게 되어버리는 시대에서 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룰은 신중하게 만드는 것보다 빠르게 개선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점점 더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세상에선, 민첩하게 대응하는 역량이 갈수록 중요해진다. 치열하게 고민하되, 어느 정도 타임 리밋을 두고, 결정해 보고, 일단 해 보고, 반응 봐서 보강하거나 개선하거나 철회하거나 하면 된다. 예측보단 대응이다.


이미 세계적인 역량을 가진 조직들은 이를 자신들의 DNA에 효과적으로, 그리고 어느 정도 명시적으로 박아넣은지 오래다. 도요타의 ‘린’도 그렇고, 아마존의 ‘disagree and commitment’도, 구글의 스프린트도 다 크게 보면 위의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들은 일찌감치 조직의 역량을 집중시키는 것과 빠르게 외부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챘고, 이를 프로세스 차원에서 구현해서 시스템에 내재화했다.


그러나 언제나 말은 쉽고, 실제로 해내는 건 너무너무 어렵다. ‘빠르게 개선되고, 정확히 지켜지는 룰’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공유하지 않으면 구현해나가기 어렵다. 디테일 하나하나에 확신을 가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거시적인 신뢰를 쌓아나가려면 필요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심지어 이 필요한 것들은 서로 상충되곤 한다. 어느 부분에서는 도전적이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안정적이어야 하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품계획(무인양품)의 회장인 마쓰이 타다미쓰가 직접 쓴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는 꼭 한번 읽어볼 만하다. 시스템과 리더십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얻을 게 한두 가지가 아닌 책이다. 일본의 많은 단행본들이 그렇듯 콤팩트하게 구성돼 있으면서도, 중요한 내용은 사례와 함께 여러 번 강조돼서 핵심 메시지가 머리에 잘 박힌다. 물론 이걸 실천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긴 하겠지만…선물해준 강민구형에게 고맙다.


"저는 회사가 침체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시기에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 그때 제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임금을 깎는 것도, 사람을 자르는 것도, 사업을 축소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는 구조’, ‘경험과 감을 축적하는 구조’, ‘낭비를 철저히 줄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죠.”


책의 도입부에 있는 괴물같은 말이다. 말이 쉽지, 힘든 시기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걷겠다고 나선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견뎌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다. 타다미쓰는 실제로 이 길을 걸어 냈고, 그의 말처럼 구조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무인양품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으로 모자라 무시무시한 성장을 이룩해냈다.


이 책 가지고 독서모임 해보고 싶은데, 발제를 어떻게 해야 두어시간동안 즐겁고 치열하게 떠들 수 있을지 아직 감을 못 잡고 있다. ‘읽기 좋은 책’이 반드시 ‘독서모임하기 좋은 책’이 아니라는 게 요즘 우리들의 고민 중 하나. 아래 문장 등을 베이스로 하면 그럭저럭 괜찮은 떡밥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하는데…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 조언 구합니당…


"열심히 설명하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서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데, 충분히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는 일단 과감하게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사원이나 현장 스태프의 낯빛만 살피고 있다가는 개혁은 흐지부지되고 맙니다. 리더에게는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 개혁에는 속도감이 중요합니다. 실행력이 있으면 전략이 틀리더라도 궤도를 수정하면 되니까요."


민구형은 이 책 말고도 브랜드 컨설턴트 에가미 다카오가 쓴 <무인양품은 왜 싸지도 않은데 잘 팔리는가>도 선물해 줬는데, 이 책은 별로였다…


아래는 좋아서 메모한 구절 열두 개.


전략 일류 기업과 실행력 일류 기업. 이 두 기업이 맞붙었을 때 승리하는 쪽은 틀림없이 후자입니다. (…) 사내에 IT 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70퍼센트만 완성되면 일단 사용하면서 나중에 기능을 변경하거나 추가하면 됩니다. 특히 IT 기술들은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개발하는 데 몇 개월씩 걸리다 보면 그사이 새로운 기능들이 생깁니다. 달리면서 생각하지 않으면 제때를 맞출 수 없습니다.


우선 실행해보고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다시 개선하는 방식을 되풀이하다 보면 조직의 기반은 단단해집니다. 안이한 성공 법칙 같은 것은 없습니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개혁도 없습니다.


무인양품의 목표는 오히려 매뉴얼을 만드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죠. (…) 매뉴얼은 사원이나 스태프의 행동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의 중요성을 알리고 모든 사원과 스태프가 문제점을 발견해 개선하는 자세를 갖게 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 매뉴얼은 모든 사원이 함께 만들어야 하고 항상 ‘업무의 최종 도달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연간 2만 건 정도의 개선 요구가 현장에서 올라오고 그 중 443건이 채택되어 <무지그램>에 실립니다.


리더의 역할은 현장의 아이디어를 검증하고 모으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예와 나쁜 예를 소개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단순한 작업이나 간단한 업무의 경우, ‘왜 그것이 필요한지’를 파악하지 못해 잠깐 게을리 하면 엉망이 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가령 복사를 하거나 차 심부름을 싫어하는 신입사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업무가 전체 업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설명하면 일을 할 때의 의식이 바뀌겠죠. (…)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면, 당신도 타성에 젖어 있다는 증거입니다.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실현하는가가 중요합니다. (…) 일을 대하는 자세 중의 최악은 마치 소년 야구팀의 아이들처럼 막연히 ‘나는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식의 자세입니다. 아마추어 세계에서는 성과 없는 노력도 인정을 받을 수 있지만, 프로의 세계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내지 못하면 역부족이었다고 판단될 뿐입니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노력하느냐가 중요합니다. (…) ‘얼핏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노력’에 눈을 빼앗겨 무작정 열심히 해버리기 전에, ‘정말 이 방법이 괜찮을까?’를 자문해봐야 합니다.


지금의 작업 방식이 다음 달에도 최고의 방식일 수는 없습니다. (…) 매뉴얼을 만드는 데 완성이란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만들었다고 해도 만든 시점부터 내용은 진부해지기 시작합니다. 그 때문에 중요한 내용은 수시로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다시 살펴보아야 하죠. (…) 저는 무인양품 워크숍 등에서 이 책에서 얘기했던 것을 사원들에게도 되풀이해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나 물어보면 98퍼센트 정도의 사람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그들 사원에게 의욕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존재가 원래 그런 것입니다. (…) 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초심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실행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집요하다 싶을 정도로 구조를 만들어 왔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 좋은 매뉴얼은 그렇게 계속 달리기 위한 원동력입니다.


구조가 잡히면 각자가 작업 방식을 늘 돌아보고 문제를 매달 체크해 능동적으로 개선점을 찾아내게 됩니다. 매뉴얼은 사용하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의식이 생기면 각 사원의 업무 태도도 바뀌게 됩니다.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 변화에 맞춰 반걸음 앞선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너무 앞서 나가거나 변화에 뒤떨어지면 물건은 팔리지 않습니다.


‘먼 길이야말로 진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제 신념 중 하나이기도 한데, 헤매고 있을 때는 가장 어려운 길을 선택하면 결과적으로 바른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 저는 쉬운 길과 어려운 길 사이에서 어려운 선택을 하려고 늘 다짐합니다. 어려운 선택이야말로 그 안에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숨기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 더이상 도전하지 않는 리더는 리더로서의 자격이 없습니다.


‘너무 사소한 것까지 정해져 있으니까 조금 귀찮다’, ‘너무 판에 박힌 업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릅니다.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매뉴얼은 오히려 작업에 활기를 불어넣어줍니다. 무인양품의 매뉴얼은 현장에서 일하는 스태프들이 ‘이렇게 하는 편이 더 나은데’라고 느낀 점을 한데 쌓고 쌓아서 만든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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