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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Jun 19. 2017

'거대한 허무'를 허무는 공동체

저커버그의 하버드 졸업식 연설과 시대정신

“오늘날 가장 큰 재앙은 나병이나 결핵이 아니라 소속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 마더 테레사


최근 들어 가장 감명깊게 본 콘텐츠를 꼽으라면 단연 마크 저커버그의 하버드 졸업식 연설이다. 개인적으로 시대정신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풍요와 함께 허무를 가지고 왔다. 너무 많은 신비가 벗겨졌고, 우리는 우리 삶의 이유를 결정하기 힘들어졌다. 사르트르 같은 아저씨들은 실존주의다 뭐다 해서 각자가 알아서 지성과 의지에 힘입어 스스로가 살아가는 이유를 결정해 나가자고 했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우리들은 그렇게까지 강인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허무함과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 수는 없으니, 우리는 뭔가에 강렬하게 몰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다행히 즐길거리는 풍부하다. SNS도, 맛집도, 여행도 날이 갈수록 정교하게 우리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아니꼽게 보자면 얼마든지 ‘망각을 위한 몰입’ 따위의 표현으로 볼 수 있겠지만, 거대한 허무의 시대에서 이 정도면 꽤 훌륭한 대응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저커버그 하버드 졸업식 연설 영상 with 자막

저커버그 하버드 졸업식 연설 전문


현 시점에서, 이 거대한 허무의 시대에 맞서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향수다. 이들은 이전 세대의 가치를 놓치고 싶지 않아한다. 꽤 최근에 유행했던 민주주의나 부국강병 같은 가치를 부여잡기도 하고, 전통적인 종교를 믿기도 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크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저커버그로 대변되는 밀레니엄 세대 입장에서는 쉽게 공감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다. 민주주의나 부국강병에 대한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지만, 절박하게 다가올 정도는 아니다. 종교 역시 과학적 발견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지 않는 이상 쉽게 몰입하기 어렵다. 자연주의야 말할 것도 없고.


둘은 기술이다. 구글과 테슬라, 아마존 등의 회사들은 우주, 영생 등 어마어마한 키워드들을 기술의 발전으로 성취해내고 싶어한다. 이 정도면 근 몇십 년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이른바 ‘NEXT BIG THING’으로 삼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오늘날의 기술은 지나치게 엘리트적이다. 이 비전에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기술회사를 꼽으라면 삼성전자나 네이버 등이 될 텐데, 이들 기업조차 ‘거대한 허무’에 맞서는 기술을 다루고 있다고 보기엔 어렵다.


셋은 공동체다. 공동체는 위에서 말한 ‘전통적인 가치’에 해당하지만, 아직도 가치적으로 현대성과 공존하는 데 아무런 무리가 없다. 그러니까, 공동체는 ‘검증된 현재’인 셈이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개인 중 한 명인 저커버그가 공동체라는 가치에 주목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진심이 아닐 수도 있고, 페이스북이라는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강조할 수밖에 없는 가치라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뭐가 중요한가 싶다. 어쨌든 페이스북이라는 회사는 ‘연결’을 넘어 ‘공동체’를 외치기 시작했고, 이 공동체는 현 시점에서 인류가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거대한 허무’를 허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에 틀림이 없다.


페이스북은 전세계를 아우르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있다. 규모가 규모다 보니 일단은 느슨하게나마 ‘연결’을 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 듯하다. 워낙 느슨하다 보니, 페이스북보다 조금 더 긴밀한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는 도전들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회사가 위워크다. 단순히 함께 일하는 공간을 넘어서서, ‘좀 더 좋은 방식으로 함께 부대낀다는 것’을 고민하고 있는 위워크는 최근에 ‘위리브’라는 두 번째 비즈니스를 통해 주거 시장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p.s.1. <매거진B-위워크편>은 현대적인 의미의 공동체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번쯤 슥 읽어볼만한 좋은 책이다.)


(p.s.2. 우리나라에서는 카카오가 페이스북과 비슷한 비전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해나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 치열한 고민 끝에 ‘연결’이라는 키워드를 회사의 핵심 가치로 삼았을 카카오를 응원한다.)


(p.s.3. 공동체 건설은 명분일 뿐이고 사실은 돈을 벌고 싶을 뿐일 거라는 비판은 일단 접어두자. 명백하게 잘못한 게 있을 때 비판해도 늦지 않을 테니.)


그리고 트레바리도 최선을 다해 나름의 비전과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페이스북과 위워크보단 규모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작지만, 작은 만큼 더 높은 밀도의 공동체를 추구하고 있다. 페이스북이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으로 사람들을 엮고, 위워크가 ‘일’이라는 키워드로 사람들을 엮는다면, 트레바리가 사람들을 엮는 방식은 독서모임이다. 그렇지만 독서모임은 어떻게 보면 핑계일 뿐이다. 독서모임은 결국 좋은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독서모임보다 더 효과적으로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방식이 있다면, 우리는 기꺼이 그 방식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진 독서모임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슬로건은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다.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사람들과 모여서 책을 매개로 자신의 생각을 나누는 공동체보다 더 세상을 지적으로, 그리고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모든 공동체는 공동체라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적 공동체’는 조금은 더 특별하게 여겨져도 좋지 않을까 한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게 바로 지성 아니던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지성을 함께 쌓아나가는 공동체라니. 대부분의 성취가 지적 활동에 기반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을 고려하면, 점점 더 가치있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생각만 해도 설레는 일이고, 우리는 감사하게도 이 설레는 일을 실제로 소소하게나마 해나가고 있다. 더 잘 하고 싶다. 진짜 잘 하고 싶다. 제발 잘 하고 싶다. 꼭 잘 하고 싶다.


홍은택님이 클럽장으로 계신 '트레바리 마인드풀니스' 6월 모임에 놀러가기 위해 타라 브랙의 <받아들임>을 읽고 쓴 글. 중심 주제에서 한참 벗어난 얘기에 꽂혀서 공동체를 주제로 한 엉뚱한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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