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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Aug 29. 2017

동화 같은 스타트업 트레바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법

우리는 현실에서 생존해 나가고 있다


트레바리를 보는 시선은 크게 둘로 나뉜다. 나름 선의를 가지고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독서모임 커뮤니티'가 하나고, 특이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성장해나가고 있는 '스타트업'이 다른 하나다. 둘 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다른 하나를 외면한 채 어느 하나만 보면 반드시 맞다고 할 수는 없어진다. 가치를 놓친 채로 돈만 벌기엔 이 사업은 그렇게까지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 못 되고, 먹고 살지도 못하면서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 만큼 우리가 강인한 사람들도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작은 회사다'. 가치도 중요하고 성장도 중요하지만, 사실 말이 좋아 스타트업이지 그냥 중소기업이다. 한국에서 중소기업으로 생존해 나간다는 게 얼마나 빡센 일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지 않나. 가끔은 스타트업이라는 말이 중소기업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처절함을 가리기 위해 쓰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곤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의 8할은 가치를 위한 것도 아니고 성장을 위한 것도 아니다. 그냥 생존, 생존, 생존이다.  


감사하게도 박찬용 기자님이 이 미묘한 균형(때로는 역설)에 관심을 가져주셨다. 때로는 가치 때문에 수익을 포기한 적도 있고, 돈 때문에 비전에 대한 고민을 잠시 놓은 적도 있다. 크루들의 안녕 때문에 멤버들의 만족을 포기한 적도 있고, 이른바 '고객 만족'을 위해 동료들의 고생을 외면한 적도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가 모두 트레바리지만, 특정 에피소드가 트레바리를 대변할 수 있느냐고 하면 아니다.


그래서 이 기사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든다. '동화 같은 스타트업 트레바리가 현실을 살아가는 법'. 우리는 분명 동화 같은 꿈을 꾸고 있고, 스타트업이라는 나름 팬시한 꼬리표를 달고 있지만,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월세 내고 월급 받고 휴일을 기다리면서. 동시에 이런 하루들이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지도에 없는 길이 만들어질 거라고 기대하면서.


오늘은 워크샵이 있는 날이다. 휴일에 워크샵 하는 게 좋은 건지 잘 모르겠으면서도, 워낙 일이 많아 도무지 팀끼리 수다 한번 속시원히 못 떠는 것도 역시 좋은 게 아닌 것 같아 고민 끝에 ㅇㅇ님 집에 모여서 술이나 먹기로 했다. 돈 없어서 근사한 곳으로 워크샵 못 가고 크루 자취방이나 쳐들어가는 게 딱 지금 우리 회사가 서 있는 지점이다. 아마 가서도 틈틈이 일 하겠지.


트레바리에는 동화적인 선의와 열린 분위기만큼이나 엄격한 룰과 매뉴얼이 있다.


회사는 선의로만 되지 않는 일이 가득하다. 사실 선의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 훨씬 많다.


선의와 균형 감각, 그 뒤에 있는 엄청난 노동이 트레바리 성장의 재료다.


보통 친구들끼리 만나면 옛날 이야기를 해요. 일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일 이야기만 해요.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은 없어요.


다른 데서 하면 ‘진지충’ 소리 듣는 이야기도 트레바리에 오면 할 수 있어요.


‘의미 있는 여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잠재 수요가 트레바리가 찾아낸 시장이다.


존경만 받으면 오래 못가고 생존만 하면 건강하지 못하다. 트레바리에게는 뜨거운 이상과 냉정한 현실 인식이 있다. 철없는 꿈이 있는 동시에 노회한 조직 운영의 노하우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4개월에 19만원만 내면 대화가 통하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요즘에 이것처럼 귀한 게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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