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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Sep 02. 2017

트레바리 3년차에 들어서는 소회

2015년 9월 1일에 사업자등록을 했으니, 오늘은 정확히 트레바리를 시작한지 3년째가 되는 날이다.


지난 2년 동안 나는 꽤 내향적인 사람이 됐다. 몸무게가 7키로 줄었다. 말이 좀 어눌해졌다. 트레바리가 무조건 모든 면에서 좋기만 한 회사는 아니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하루도 안 빼놓고 일을 했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멀어졌다. 어쩌다 코인노래방에 가도 늘 부르던 노래만 부르게 됐다. 사람들을 만나도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게 됐다. 그야말로 일만 아는 애가 됐다.


그렇다고 일을 더 잘 하게 됐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혼자서 어떻게든 치고 박고 하는 데에 익숙해질 즈음 동료가 생겼다. 한두 명과 함께하는 법을 배울 때쯤 회사는 다섯 명이 됐고, 또 일곱 명이 됐다. 이제 좀 해볼만 하니까 우리는 열 명짜리 회사가 되어 버렸다. 이제 나는 다시 뭘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는 채로 출근을 한다. 늘 새롭기 때문에 늘 초짜다.  


그동안 트레바리는 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커뮤니티가 됐다. 그중 열 명은 이 커뮤니티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고 있다. 아마 적어도 백 명은 이 커뮤니티를 통해 작지 않은 꿈을 함께 꾸고 있을 거다. 어쩌면 우리가 정말로 이 커뮤니티를 통해 세상을 조금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조금 덜 외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 말이다. 실제로 누군가의 독후감은 한 달 한 달이 지날수록 날카로워지고, 깊어지고, 따뜻해져 왔을 거다. 집과 일터만 왔다갔다 하던 누군가의 일상은 ‘지금의 나’를 공유할 수 있는 친구들과의 시간으로 활기차졌을 거다.


트레바리를 하는 모두가 지적으로 의미있는 성장을 일궈나가고 있는 것은 아닐 거다.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소중한 인연으로 발전하는 것도 아닐 거다. 누군가는 여기서 의미 없는 시간을 보냈을 거다. 돈까지 냈는데 재미 없어한 사람도 있을 거다. 오히려 상처를 받은 사람도, 그래서 기대감을 품고 들어온 트레바리를 싫어하게 된 채로 떠난 사람도 있을 거다. 하기로 했으니까, 돈도 받으니까 하긴 하지만 보람보다 짜증이 더 크게 다가오는 시간을 보낸 동료도 있을 거다.


순도 100%짜리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믿음은 이제 가지기 힘들게 됐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누군가에겐 분명 아주 많이 가치 있는 일을 해내고 있다는 정도의 확신은 아직 가져도 괜찮을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는 아직 아무도 가본 적 없는 길을 가고 있다. 트레바리 같은 회사는 트레바리밖에 없다. 우리가 지도에 그려나가고 있는 길은 현미경으로 봐야 겨우 보일 법한 샛길 수준이지만, 우리가 보는 풍경은 우리가 처음 보는 풍경이다. 더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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