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일>을 읽고
<스케일>을 읽었다.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님이나 카카오커머스의 홍은택 대표님을 포함해 제프 베조스나 나심 탈레브, 그리고 개인적으로 몹시 좋아라 하는 마크 베니오프 등의 세계적 인사들도 앞다퉈 추천한 책이다. 책에 따르면, 우리는 생각보다 다 거기서 거기다.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의 심장은 평생 15억 번 정도 뛴다. 이 횟수는 다른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은 물론이고 고래나 너구리, 그리고 고양이()와도 비슷하다.
누구나 힘들 때 의지할 수 있을 정도로 친밀한 사람은 5명 언저리를 왔다갔다 한다. 평소에 같이 어울려 노는 사람들은 15명 정도다.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50명 정도고, '지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략 150명 정도다. (이 '150명'은 '던바의 수'라는 이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 개개인 뿐만 아니라, 도시들도 마찬가지다.
도시가 커질수록 평균 임금과 특허 수, 그리고 식당 수는 동일한 비율(15%)로 증가한다. 놀랍게도 모든 도시들이 다. 이 15%는 범죄 건수, 에이즈와 독감 환자 수 등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도시가 커질수록 전선, 도로, 수도관, 가스관 등의 '망'들은 동일한 비율로 효율화된다. 그리고 이 비율 역시 15%다. (그래서 도시가 클수록 오히려 탄소 발자국도 줄어든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평균 통근 시간은 보통 편도 기준으로 30분이다.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상장기업의 반감기는 10.5년 정도다. 즉, 10.5년 후에는 현재 존재하는 기업의 절반이 사라져 있다. 이러한 경향성은 시기와 산업을 타지 않는다. (연구는 미국과 중국의 상장사들만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긴 했다.)
자산이 500억 달러에 이르거나 매출이 1000만 달러에 이르면 대부분의 기업의 성장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진다.
이렇게 큰 틀에서 세계를, 사회를, 역사를 관통하는 법칙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을 좋아한다. 한없이 크고 복잡하게만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이렇게나 질서정연하다는 사실이 지적으로 너무나 아름답기 때문이다. 책에도 이런 문장이 있다. "혼란스럽기 그지없어 보이는 우리 주변 세계의 어느 작은 구석조차도 그 경이로운 복잡성과 무의미해 보이는 것들을 초월하는 규칙성과 원리를 따른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 뭔가 숭고하면서 든든한 느낌을 받는다."
툭하면 비대해지곤 하는 자의식을 다잡고 다시금 겸손해질 수밖에 없게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압도적인 절경을 마주할 때 느끼게 되는 경외감과 비슷하달까. 다만 어마어마한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서는 돈도 시간도 많이 필요한 데 반해, 어마어마한 지적 성취는 책을 펼치거나 노트북만 열어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지 싶다.
'나라고 별수없다'는 현명하게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 꼭 되새기고 또 되새겨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다를거야'는 높은 확률로 틀린다. 우리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목이 좋지 않은 곳에서 식당을 열면 어지간하면 망한다. 샤오미의 레이 쥔이 말한 것처럼, '태풍이 불면 돼지도 난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 스스로한테 던져야 하는 질문이 '나는 무얼 해야 하는가'여야 할 때는 드문 것 같다. 그보단 '나는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때가 훨씬 더 좋은 선택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답은 언제나 조금 더 역동적인 곳에,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도전적인 곳에 있을 거고.
내가 원한다고 내가 생물이 아니게 될 수는 없으니 죽음이라는 문제는 구글의 영생 프로젝트인 캘리코의 성공을 바라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지만, 회사의 경우엔 그래도 내가 어떻게 해 볼수 있는 여지가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책을 읽는 내내 트레바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도시는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처럼 핵폭탄을 맞아도 쉽게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번영하는 데 비해, 기업은 왜 언젠가는 스러지고야 마는가. 왜 기업은 크기가 커지면서 점점 비효율적으로 변하는 것인가. 회사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잃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아..알려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