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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수영 Apr 07. 2019

구글엔 래리와 세르게이도 있었지만, 에릭 슈밋도 있었다

<구글 스토리>를 읽고


구글엔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도 있었지만, 에릭 슈미트가 있었다. 슈미트는 한 기업이 운영되는 데 필요한 많은 운영성 업무들을 노련하게 처리해왔다. 덕분에 두 창업자들은 마음껏 본질과 핵심과 혁신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페이지와 브린이 끝내 좋은 CEO를 구하지 못한 채 일반적인 경영 오퍼레이션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했다면,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오늘날의 구글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창의성을 폭발시키느라 회사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많은 것들을 놓쳤을수도 있고, 남들 으레 하는 거 하느라 충분히 창의적이지 못한, 애매한 제품이 나왔을 수도 있다.


페이지와 브린이 CEO로서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슈미트가 필요했던 건 아니다. 페이지는 2011년부터는 계속 CEO로서 구글 또는 알파벳에서 일하고 있다. 뭘 해도 잘 할수는 있지만, 동시에 모든 걸 잘하기는 어려울 뿐이다. 모드 전환에는 큰 인지적/감정적 에너지가 든다. 괜히 사회가 분업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해온 게 아니다. 하루종일 남다르게 생각하는 데에만 몰두해도 충분히 남달라지기 어려운데, 업무 시간의 상당 부분을 '상식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해 쏟는다면 이도 저도 아니게 되기 쉬운 것 같다.


슈미트는 창업자가 경영자로 성장하는 시간 동안 회사가 휘청이지 않도록 좋은 조력자이자 스승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들이라지만 그래봤자 20대다. 젊어서 낼 수 있는 에너지와 자유로움도 있었겠지만, 부족한 경험과 네트워크로 인한 약점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CEO는 단순히 회사의 철학적, 전략적, 문화적 방향성만 결정하면 되는 자리가 아니다. 돈도 벌어야 하고, 법도 지켜야 하고, 각종 사건사고와 갈등도 조정해야 한다. 전자만이라면 모르겠지만 후자를 잘 해내기 위해서는 경험이 큰 역할을 한다.


거의 모든 전설적인 기업에는 전설적인 2인자들이 있었다. 페이스북의 셰릴 샌드버그,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티브 발머, 소프트뱅크의 미야우치 겐, 애플의 팀 쿡.. 이들에게는 앞으로 내달리는 창업자들이 놓치기 쉬운 여러가지 '현실'과 '루틴'을 챙겨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혹은 창업자들이 놓치는 것들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마음껏 앞으로 내달릴 수 있도록 든든한 조력자였거나. 아래의 인용은 다소 소설처럼 멋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2인자들이 보통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잘 드러나 있는 듯하다.


"두 사람의 역할 분담은 절묘했다. 손정의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한다. 그러면 영업에서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각 부서에 관여해 돈이 되는 사업으로 바꾸는 것은 미야우치의 몫이었다. (...) 손정의가 새로운 일을 벌이며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에도 미야우치는 후방을 든든하게 다져놓았다. (...) 미야우치는 '손 사장님이 새로운 사업에 홀려서 가출한 뒤 소프트뱅크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것이 내 몫'이라고 말한다." - <손정의, 300년 왕국의 야망> 중


크고 중요한 문제를 독창적으로 풀어보고 싶은 창업자라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 생각과 실천의 괴리, 머리와 손발의 괴리 때문에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생각은 저 너머로 치닫고 있지만, 두 눈 앞에 펼쳐진 회사의 상황은 보통 (본인의 관점에서는) 비루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업적 성취를 꿈꾸는 모든 기업은 저마다의 에릭 슈미트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서 실리콘밸리라는 생태계는 단순히 쉽게 돈을 대 주는 것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 같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경영진을 소개해주는 VC가 있고, 각 스테이지에 특화돼서 여러 기업을 좋은 의미에서 전전하는 인재가 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에릭 슈미트를 소개해준 사람 역시 구글에게 1,250만 달러를 투자한 클라이너퍼킨스의 존 도어가 아니었던가.


"몇 년 동안 기업 경영 문제는 동료이자 최고 경영자인 에릭 슈밋이 돌봐왔기 때문에 두 공동 창업자는 사용자에게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가에 집중할 시간이 있었다."


"구글의 지속적인 성장과 혁신을 위해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에릭 슈미트는 직함에 연연하거나 권력을 기계적으로 삼등분하는 방식을 피했다. 그들은 서로 끊임없이 대화했을 뿐 아니라, 일련의 작업 과정과 일상 업무의 기초를 세우고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분야를 담당했다. (...) 각자 기능이 다른 분야를 담당했고 서로 책임을 공유했다."


"최고경영자로서 슈미트는 기업의 전반적 운영을 감독했다. 이는 매우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에서 막중한 업무로, 그는 회사의 성장을 위해 적절한 내부 회계, 재무 구조 및 여타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적 팽창을 위해 특별한 내부 구조를 정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한 그는 재무 상황에 주의를 기울였다. 다양한 운영 계획을 수립하고 마감 시간을 준수하며 이사회 위원들이 필요할 때 적절한 조언을 구하는 업무도 그의 담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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