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22.10.27 막내딸, 설탕이>
<나는 너를 품었고, 너는 나를 살렸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다시 살아가게 한 온기에 대하여.
※ 이 브런치북에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강한 감정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 자매는 유튜브와 SNS를 보면서 임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기, 장기 임시 보호도 있지만, 계절에 따른 임시 보호도 있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사설보호소는 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아 더울 때나 추울 때는 아이들이 편하게 계절을 날 수 있도록 임시 보호 홍보를 많이 한다.
‘추워지기 전이라서 한 마리라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임시 보호를 생각했다. 그리고 곧장 부모님께 이야기를 드렸다.
부모님의 반응은 역시나 예상대로 좋지 않았지만, 우리 자매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우린 이미 젤리랑 카노가 있는데 한 마리를 더 임시 보호하는 건 힘들 거란 반응을 예상했다. 그런데 부모님은 며칠만 같이 있어도 정드는데 임시 보호 기간이 끝나면 보낼 수 있겠냐고 걱정하셨다. 우리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오히려 정 들어서 못 보낼 것 같은 건 부모님이었다.
솔직하게 이야기를 털어놓고 보니, 우리의 짐작대로 정들면 어떻게 보내냐고 반대하면서도 차라리 입양이 낫다고 하셨다.
부모님이 어떤 마음으로 말씀하신 거든, 우리 자매의 생각은 이랬다.
‘두 마리도 키우는데, 세 마리는 못 키우겠어?’
점점 입양으로 이야기가 기울어갈 때쯤, 엄마는 새끼 때부터 키웠던 토토가 생각난 건지 어린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하셨다. 우리는 엄마의 마음이 바뀌기 전에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강아지를 찾았고, 그렇게 카노보다 더 까만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여자아이가.
딸은 처음이라서
이제는 포인핸드가 아닌 SNS와 네이버 카페까지 가입하면서 점점 입양에 진심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보호소에 들어와 새끼들을 낳았다는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그 두 아이가 같이 육아한다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새끼들.
그중에 입양을 빨리 간 아이들도 있었지만, 입양을 가지 못해 임시 보호처에서 입양을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있었다.
우리 자매 눈에 들어온 건 아직 입양을 가지 못한, 태어난 지 4개월쯤 된 여자아이였다.
임보처에 있는 아이는 임보처로 직접 데리러 가기도 한다. 우리가 그런 경우였다. 솔직히 토토도 그렇고 젤리, 카노 다 남자애들이라서 여자아이를 데려와도 괜찮을까 조심스러웠다. 뭔가 특별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이상한 생각까지도 할 정도로.
임보해 주시는 분들과 약속 시간을 정하고, 그분들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사진으로만 봤던 아이를 만났다. 보호소에서 ‘영이’라고 이름을 붙여준 아이를 말이다.
‘영이’라고 불리던 아이는 입양한 날짜가 생일이 된 젤리, 카노와 달리 유일하게 생일을 알고 있고, 엄마가 어떤 견종인지, 그리고 전부는 아니지만 SNS를 하는 입양 간 남매들까지도 알 수 있었다.
막내딸, 설탕이
실제로 보자마자 첫눈에 홀려버린 새까맣고 커다란 귀와 뚠뚠한 주둥이, 귀여운 부정교합, 그리고 품 안에 쏙 안기던 작은 아이.
우리 집 공식 막내딸이 되어버린 ‘영이’의 이름은 ‘설탕’이가 되었다. 새까만 게 꼭 흑설탕이라서 그렇게 지은 건 아니었는데, 보자마자 떠오른 이름이 설탕이었다.
젤리랑 카노는 절대 들어가지 않는 이동 가방을 준비해 갔는데, 설탕이는 어린데도 의젓하게 앉아 있거나 엎드려서 잠을 잤다. 차만 타면 난리가 나는 오빠들과는 그때부터 달랐던 것 같다.
어쩜 이렇게 작고, 소중하고, 얌전할 수가 있지? 그게 설탕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던 내가 느낀 감정이었다.
설탕이가 집으로 들어선 순간, 젤리와 카노는 역시나 탐색부터 들어갔다. 오빠들이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얌전히 있던 설탕이는 그새 적응한 건지 집안 곳곳을 돌아다녔다.
임시 보호해 주시던 분들이 주셨던 장난감과 옷, 하네스, 간식까지. 전부 여기저기 놔주니 어려서 그런지 적응은 금방 끝난 것 같았다.
근데 얘, 세상 얌전하게 차 잘 타고 왔던 애 맞나?
설탕이는 적응이 끝난 건가 싶을 즈음 본색을 드러냈다. 저보다 살짝 크지만, 털이 쪄서 구름처럼 빵실빵실한 젤리에게 깐족거렸다.
제일 잘 놀아주는 오빠라는 걸 안 걸까? 안 놀아주던 카노와 달리 젤리와 설탕이는 잘 놀았다. 놀아주는 게 젤리인지 설탕이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이 방 저 방 우다다하며 노는 게 정신은 없지만, 그래도 잘 노는 걸 보니 안심되고 귀여웠다.
처음 키워보는 딸,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은데?
우리 애가 너무 빨리 크는데요
분명 집에 올 때는 젤리보다 작았던 설탕이.
임보처에서 받아온 옷이랑 하네스는 분명 젤리랑 카노 것보다 한참 작아서 귀엽다고 가족들이 난리였는데. 과장 조금 보태서 설탕이는 눈 깜빡할 사이에, 순식간에 커졌다. 토토는 너무 어릴 때 왔고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았기에 원래 아기는 이렇게 빨리 크는 건가 싶었다.
얼굴 크기에 팔랑거리던 귀는 작게 느껴질 정도였고, 몸은 점점 커서 키가 카노랑 비슷해졌다. 하지만 여자아이랑 남자아이의 차이인 건지 더 늘씬하고 다리가 길쭉했다.
작아서 귀여웠던, 매번 오빠들이랑 산책 나갈 때마다 했던 하네스는 순식간에 작아졌다. 결국 오빠들이 쓰는 게 맞기 시작해서 설탕이 하네스를 따로 사야만 했다.
까만 설탕이랑 잘 어울리는 연분홍색은 졸지에 할머니가 된 (토토)엄마의 취향을 저격했고, 설탕이 전용 색이 되어버렸다.
아, 이래서 딸을 키우는구나
토토, 젤리, 카노 전부 남자아이들이라 놀 때는 격했다. 사실 딸은 조금 다를 줄 알았는데, 딸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 방안을 신나게 뛰어다니는 건 물론이고, 장난감만 보면 사족을 못 썼다.
그런데 다른 점 단 한 가지, 그냥 보고만 있어도 웃음이 났다. 제일 늦게 입양한 데다가 어릴 때 와서 그런지 뭘 하든 귀엽고 가만히 있어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임보처에 코카스파니엘 언니랑 있어서 그런 걸까. 오빠들이 하지 말라고 으르렁거려도 설탕이는 무시하고 마이웨이, 제가 하고 싶은 거라면 다 했다. 항상 오빠들이 하는 걸 관찰하고 싫다는데도 가까이 다가가 입과 귀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고는 한다.
게다가 가족들한테도 관심이 많아서 누가 어딜 가든 졸졸 따라다닌다.
귀차니즘이 심한 젤리와 무던한 카노와는 달라서 ‘아, 이래서 딸을 키우는 거구나’ 싶었다.
내가 생각한 딸과는 조금 달랐지만, 집안에는 역시 딸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걸 설탕이를 통해 알게 됐다. 왜 이렇게 여자아이를 데려오는 것에 겁을 냈는지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이런 겁쟁이는 또 처음이라
설탕이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엄청난 겁쟁이다. 작은 소리가 나고, 여름철 비와 함께 천둥이 칠 때면 싸우는 듯이 짖어대는 오빠들과 다르게 안아줘도 진정이 안 된다.
우리 집 공식 겁쟁이가 된 이유는 참 많았다.
바람 소리가 조금이라도 세거나, 봉투가 날아간다거나, 누가 크게 기침한다거나, 산책할 때 빗소리가 크다거나. 아주 작은 소리에도 예민해 놀라서 도망가거나 덜덜 떨고는 했다.
한 번은 집 근처를 산책할 때 꺾어져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자꾸만 다른 쪽으로 끌고 가고는 했다. 산책이 부족한 건가 싶어 “아니야, 집에 가야 해.”라고 해봤지만, 자꾸만 다른 곳으로 갔다. 설탕이가 가자는 대로 따라가니 난 그제야 줄을 당겼던 이유를 알게 됐다.
산책이 부족했던 게 아니라 꺾어져야 하는 방향에 있는 검은색 커다란 물체 때문이었다. 휠체어를 감싸둔 그 검은색 덮개가 무서워서 빙 돌아가는, 설탕이는 엄청난 겁쟁이다.
엄마랑 이모가 마스크팩만 해도 겁에 질려 왈왈 짖는 걸 보면 말 다한 거지, 뭐.
맹한 표정의 암살자
앞서 말한 것처럼 겁쟁이인 설탕이지만, 우리 집에서는 공식 겁쟁이 말고 또 다른 별명이 있다.
맹한 표정의 암살자.
아주 조용하고 은밀하게 온갖 장난감을 여기저기 뿌려두는 걸 좋아한다. 사실 뿌려두는 걸 좋아하는 것보다는 장난감을 좋아해서 이것도 가지고 놀고 싶고, 저것도 가지고 놀고 싶어 다양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거다.
그런데 그걸 치워두지 않고 널브러트려 놓는 게 문제일 뿐.
공을 좋아하는 설탕이는 아주 단단한 공과 고양이 장난감으로 나온 양모로 된 공을 하루 종일 물고 다니다가 아무렇게나 휙 두고는 한다. 게다가 강아지 치석 제거용으로 나온 뿔이나 나무 스틱을 좋아해 씹고 물어뜯다가 아무 데나 휙 둔다.
보이는 데다가 두면 다행이지만, 꼭 이불이나 어딘가에 숨기듯 둬서 누구든 밟아 휘청이며 한두 번은 다칠 뻔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의심 없이 범인은 설탕이였다.
그것뿐이었다면 맹한 표정의 암살자라고 부르지 않았을 거다.
그냥 장난감을 좋아하고, 엄마랑 이모를 닮아 정리정돈을 싫어하는 딸이라고만 생각했을 텐데.
설탕이는 저 멀리서부터 달려와서 위에 눕거나 올라타는 걸 좋아한다. 7kg 정도 나가는 아이가 추진력을 받아서 몸 위로 확 뛰었을 때, 긴 꼬리를 흔들며 얼굴을 때릴 때, 그리고 갈비뼈와 명치를 아는 것처럼 정확한 곳을 누르며 누울 때, 얼마나 아픈지 안 당해 본 사람은 모를 거다.
심지어 산책 나가기 전, 오빠들 옷을 입히려 가족 중 누군가 몸을 숙일 때도 등과 어깨 위로 올라타는 애다.
맹한 얼굴로 경계심을 풀어놓고 후다닥 달려와 공격하는 설탕이는 우리 집의 공식적인 암살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