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21.09.23 어서 와, 카노야>
<나는 너를 품었고, 너는 나를 살렸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다시 살아가게 한 온기에 대하여.
※ 이 브런치북에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강한 감정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오랜 대화와 고민 끝에 다견 가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사진 속 까만색 털과 빨간색 혀가 매력적이었던 아이는 우리가 본 공고 속 젤리와 많이 닮아있었다.
19년도 구조 당시 추정 나이 7살. 어느 펜션에서 피서객에 의해 구조됐는데, 순하고 잘 안겨있다는 설명을 보니 젤리랑 잘 놀겠다 싶었다.
게다가 시보호소의 뜬 장에 2년이나 있었다는 것. 피부병이 있는데 시보호에서는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피부병이 있던 다른 아이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심하여 안락사를 당했다는 이야기까지. 그걸 보니 해맑은 아이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또, 보호소가 바뀌면서 그해의 3월까지 전 개체를 정리한다는 문구에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말이 좋아 전 개체 정리지, 안락사를 시행해도 사람들이 항의할 수도 없다는 문구마저 눈에 밟혔다.
그렇게 우리는 입양을 문의했다.
공고 번호 [충남-천안-2019-01058]이라고 적혀있던 아이. 사설보호소에 들어가 ‘깜돌이’가 된 아이의 이름은, 우리 집에 온 이후 ‘카노’가 되었다. 토토의 큰 누나가 아메리‘카노’에서 딴 이름이었다.
포인핸드 그리고 사설보호소
사설보호소는 시보호소와 입양 과정이 달랐다. 시보호소는 예산이 있는 경우, 건강검진 비용을 어느 정도 지원해 주는 경우가 있다. 영수증을 모아 청구하면 일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데, 젤리가 이 상황에 해당했다.
사설보호소는 일반인들이 운영하기 때문에 입양 책임비가 있는 경우가 있다. 사실 입양하고 입에 담을 수도 없게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입양 책임비’가 없는 곳을 본 적이 없다.
그 밖에도 사설보호소를 운영하려면 아이들 약값, 병원비, 운영비 등등 이곳저곳 돈 드는 일이 많다고 한다. 사설, 그러니까 좋은 마음으로 운영하는 것이기에 입양 책임비를 내는 건 아깝지 않다고 많이들 말하는데, 나도 그렇기는 했다.
다만 주의할 점은 요즘 사설보호소라고 속이는 펫샵이 많이 보인다는 것. 그런 곳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지인도 속을 뻔했다가 간신히 보호소가 아닌 펫샵이라는 것을 알고 입양하지 않았으니까.
이점은 꼭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 밖에도 입양 책임비는 물론이고 계약서, 그리고 간혹 아이가 입양 가서 지내는 집안 환경 같은 사진도 보내야 한다. 가족 구성원을 물어보는 곳도 많다. 1인 가구, 아이 계획이 있는 신혼부부는 입양이 안 된다는 등 조건이 꽤 까다롭다. 아무래도 입양 간 아이가 어떠한 이유로든 다시 파양되는 일은 없는 게 가장 좋으니까.
어서 와, 카노야!
카노를 만나기 전, 포인핸드를 보며 사설보호소는 인스타로 홍보를 많이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포인핸드만 보고 있었는데, 젤리와 토토 덕분에 시작한 인스타는 사설보호소의 공고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쩐지 익숙한 아이가 보였다.
까만색 털과 빨간색 혀를 내보이며 웃고 있는 아이의 사진과 영상들. 철창에 갇혀있는 사진보다 훨씬 좋아진 모습이었지만, 누가 봐도 포인핸드에서 본 아이였다.
입양 문의를 보내며 같은 아이가 맞냐고 공고 사진도 첨부했다. 그랬더니 카노가 맞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하지만 카노의 입양 문의는 없다고 했다.
지금껏 마음에 걸리던 아이였으니, 우리 자매는 고민할 것도 없이 곧장 입양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입양 과정이 모두 끝나고 우리는 카노를 데리러 갔다. 엄마, 아빠, 그리고 나. 우리 셋은 천안까지 갔고, 카노는 크고 많은 대형견 사이에서 분리된 채 입양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큰 아이들 사이에 제일 작았던 아이, 복슬복슬한 털이 매력적이었던 아이. 그게 카노의 첫인상이었다.
아뿔싸. 이럴 수가!
젤리보다 클 것으로 예상해서 가지고 간 하네스는 너무 커서 맞지 않았다. 내가 입양 계약서를 쓰는 동안, 카노는 젤리에게도 크던 하네스와 리드줄을 한 채 아빠와 공터를 신나게 뛰어다녔다. 순하고 귀엽고 발랄한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집에 가는 1시간이 넘는 길. 조수석에 타고 있던 엄마가 카노를 안고 왔다. 얌전히 잘 안겨있던 카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훤하다.
하지만 그건 카노가 본색을 드러내기 전,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카노를 안아본 시간이었다.
첫째지만 둘째인데요
카노는 천안 사설보호소에 있었고, 이미 반려동물 등록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내 밑으로 옮기는 과정도 필요했다.
그 때문에 나는 극도로 싫어하는 전화까지 몇 번이고 돌려가며 카노를 내 밑으로 옮겼다. 카노의 등록 정보를 수정하려고 [국가 동물보호 정보시스템]에 들어가 확인하고 정확한 이름까지 수정하는 전화를 몇 번이나 한 건지.
어쨌든, 나이로는 첫째지만 두 번째로 입양된(?) 젤리와 이상한 관계의 형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졸지에 두 아들을 둔 엄마가 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신나게 카노를 반기는 젤리와 이곳저곳 탐색에 들어간 카노. 카노의 반응은 젤리가 처음 왔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분리불안으로 사람만 찾던 젤리와 달리 구석만 찾았고, 마음에 드는 구석진 자리를 발견하면 그 안에서 계속 잠만 잤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서서히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떴다! 카노 주의보
다 이런 강아지만 있겠지? 젤리가 너무 착하고 순해서 우리 가족이 안일했던 건지도 모른다. 순화해서 말하자면 토토는 미친 말썽꾸러기였지만, 유기견들은 젤리 같은 아이만 있을 거란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카노는 우리가 겪어본 토토, 젤리와는 다른 성격을 가진 아이였다.
분명 보호소에 있을 때는 사람 손도 잘 타고 해맑게 웃던 아이였는데. 집에 와서 며칠이 지난 후에도 곁을 주지 않았다. 매번 구석, 그것도 책상 밑처럼 막혀있는 곳만 찾아서 들어갔다.
이리 나오라고 손을 뻗으면 이빨을 드러내다가 입질했다. 사실 입질은 심했다고 할 수 있다. 손에 상처가 없는 날이 없었으니까.
우리 자매는 온갖 영상을 찾아보며 입질이 심한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공부하고 또 공부했다. 오로지 카노와 친해지기 위해서. 그런데도 카노는 여전히 입질이 있고, 곁을 주지 않았다.
기본적인 케어가 되어야 하는데 집에서는 전혀 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발톱 하나 자르는 것도 병원에 가야만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집에서는 엄마인 나와 이모인 쌍둥이의 손을 사정없이 물어버리던 카노였건만. 밖에만 나가면 세상 착한 강아지가 됐다. 우리 손에는 멍 자국과 핏자국이 마를 날이 없었는데. 병원에 가면 카노만큼 순한 애가 없다는 말을 듣고는 했다.
억울했다. 노력한 건 우리인데, 물리는 것도 우리인데, 아무도 카노가 입질 있다는 걸 믿어주지를 않으니 말이다.
“기본적인 케어도 힘든데 미용은 또 어떻게 해야 하지?”
카노와 함께하는 시간이 하루하루 늘어날수록 우리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입질이 심한 걸 알기에 미용은 건강검진과 함께 항상 마취 미용을 했다. 그런데 나이가 부정확한 유기견 특성상 지속적인 마취 미용은 카노에게 부담이었고, 우린 큰마음 먹고 방법을 바꿨다.
미용 담당은 카노를 가장 아끼는 이모가, 집이 아닌 옥상에서 간식을 주면서 재빠르게 쓱쓱. 토토와 젤리의 미용 담당이었던 나였지만, 카노의 전담은 나의 쌍둥이 자매가 되었다.
들쑥날쑥 예전의 토토 모습을 보는 것 같은데도 그게 최선이었다. 서로 다치지 않는 선에서 끝내야 하는 미용이었으니까.
이상한 건 카노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데도 카노의 최애는 이모님, 즉 나의 쌍둥이 자매였다.
‘우리’의 집과 ‘가족’
우리 가족은 카노가 보호소에 오랜 시간 있어 집과 가족이란 것 자체를 몰라서 구석만 찾아가는 거라고 예상했다. 그런 카노가 우리 ‘가족’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집이라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항상 입질로 제 마음을 표현하고는 했는데, 이제는 다른 방법으로 표현한다. 으르렁 소리만 내며 표현한다거나, 휙휙 빙글빙글 돌리던 꼬리가 훅 내려간다거나, 이빨만 드러내며 위협한다거나. 그런 표현들 말이다.
“우리 카노한테 언제 물렸지?”
“안 물린 지 좀 된 것 같은데.”
“카노가 안 물어주니까 좀 심심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러게. 지금쯤이면 몇 번이고 물리고도 남았을 텐데.”
카노가 우리를 받아들인 이후, 쌍둥이와 내가 우스갯소리로 하던 대화였다.
물론, 여전히 심기가 불편하거나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종종 입질이 있기는 하다.
엄마는 아직도 카노가 보지 않을 때 슬쩍슬쩍 만지는 게 끝이고 안는 건 상상도 못 한다. 산책을 자주 해주는 아빠는 가끔 산책하고 돌아와서 옷을 벗기려다가 카노에게 물린다. 우리 자매는 표정이나 분위기만 봐도 카노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걸 알기에 잘 피하지만, 가끔 물려 감정이 상하고는 한다.
물리지 않으면 심심하다가도, 막상 물어버리면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자매가 되어버린 건 다 카노 때문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