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빈자리 옆, 새로운 자리

2-2 <20.01.14 반가워, 젤리야>

by 별의기록

<나는 너를 품었고, 너는 나를 살렸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다시 살아가게 한 온기에 대하여.


※ 이 브런치북에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강한 감정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기견 입양에 몇 번 도전했다가 실패한 이후, 우리 자매는 포인핸드를 놓지 못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락날락하며 새로 올라온 아이가 없는지 확인하고 또 했다.


 범위를 조금 넓혀 집 근처가 아닌 조금 더 먼 곳까지도 보호 중인 아이들을 봤다. 그래봤자 차로 이동했을 때 1시간을 넘지 않는 거리였지만 말이다.


 차로 30분도 안 걸리는 거리에 있는 시보호소에 올라온 공고 사진 하나.


 누군가의 손에 안겨 해맑게 웃고 있는 강아지.


 토토처럼 분홍색 혀가 매력적인, 공고번호 2020-00007인 ‘말티즈’였다.



 14일의 기다림


 찾아보니, 유기견은 발견 즉시 지역보호소로 들어가며 현재는 공고 포함 유기견은 10일간 보호된다고 한다. 공고 기간 내에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지자체 소유로 바뀌어 입양이 가능해진다고.


 사실 이건 이번에 알았다. 입양하던 2020년 당시만 해도 보호 기간은 14일이었으니까.


 웃고 있는 말티즈(후에 입양 순서로는 첫째지만, 나이 순서로는 둘째가 된 젤리)를 보자마자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아직 보호 기간이었다.


 일단 문의 전화부터 걸었다. 몇 번의 입양 실패로 이번에도 안 될 거라 단념하고 있는 상태이기도 했다.


 “말티즈는 입양 문의가 많아 선착순입니다.”


 전화한 곳에서는 그렇게 말했다.


 선착순. 역시 말티즈처럼 품종견은 인기가 많아 선착순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난 포기하지 않았다.


 ‘문을 열기 전, 아침 일찍이라도 기다려 무조건 데려와야겠다.’


 오직 그 생각 하나만 있었을 뿐. 젤리는 이미 우리 가족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반가워, 젤리야


 사실 공고 사진 속 젤리의 미소에 반한 것도 있지만, 웃는 게 토토랑 비슷했다. 게다가 가장 가까운 보호소에서 빨리 데리고 올 수 있는 아이가 젤리 하나였다.


 동물병원이 보호소라고 해놓고 아이를 데리러 간 곳은 그 옆에 있는 반려동물 호텔링을 하는 곳이었다.


 포인핸드 공고를 보여주니 아저씨가 안쪽에서 강아지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왔다.


 솔직히 놀랐다. 내가 아는 작고 귀여운 말티즈가 아니었으니까.


 “대왕…… 강아지?”

 “대왕…… 말티즈!”


 당황한 우리 자매가 젤리를 보자마자 생각한 거였다.


 생각보다 컸고, 복슬복슬했다. 한 마리의 양처럼 복슬복슬한 털에서는 묘한 냄새가 났다. 알고 보니 젤리는 유기된 염소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이게 염소 냄새라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짖는 법도 모르는 강아지. 헥헥거리며 웃기만 하는 강아지.


 그런데도 우리 품에 안겨 사진 속처럼 웃고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집까지 오는 차 안, 젤리는 우리 품에서 내려갈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꼭 안겨 있었다.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이다.


 후에 알게 된 거지만 그건 웃는 게 아니라 긴장할 때 나오는 표정이었다. 그걸 뒤늦게 알고 낯선 곳에서 혼자 무서웠을 젤리가 안쓰러웠다.



 우리 젤리는요


 젤리라는 이름은 내가 직접 지어준 거였다. 이름 후보는 정말 많았다.


 우동, 짜장, 백설기, 그밖에 이상한 이름도 후보에 올랐다.


 다 마음에 안 들던 찰나에 불현듯 떠오른 단어 하나.


 젤리!


 그래, 얘 이름은 젤리다. ‘쌍둥이 자매’의 엄마가 지었던 토토의 이름처럼 훗날 ‘삼남매’의 엄마가 될 내가 지어준 이름으로 말티즈라 불리던 강아지는 젤리가 되었다.


 젤리는 염소랑 같이 있어서 염소 냄새가 짙게 밴 털을 박박 다 밀어버리고, 포인핸드를 통해 건강검진을 했다. 동그랗게 말려있는 꼬리와 부러진 뒷다리, 그리고 슬개골 탈구까지.


 이 작은 강아지가 살아온 세상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집으로 돌아온 뒤에야 보였다.



 분리가 무서워요


 유기견을 입양하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일인 건가?


 젤리는 미용을 하고 오자마자 며칠 내내 잠만 잤다. 추울까 봐 토토가 입었던 옷을 입히니 딱 맞아서 토토를 떠올리게 했었다.


 그런데 쌍둥이와 내가 화장실이라도 가면 쫓아와 하울링을 했고, 그 앞을 떠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가 옆에 같이 누워있으면 계속 잠만 잤으면서. 잠깐만 안 보여도 난리가 나는 그런 강아지. 나는 이게 유기견들의 특징 중 하나라는 걸 아주 나중에 알았다.


 포인핸드를 통해 입양했으므로 연계된 병원에서 건강검진 비용을 50% 할인받을 수 있었다. 그곳 말고도 원래 다니던 병원에 가서 확인해 보니 슬개골탈구가 심한 수준이었다.


 수술하지 않으면 점점 걷기가 힘들어지고, 무리가 갈 거라는 말.


 그 말에 우리 자매는 슬개골탈구 수술 잘하는 병원을 찾았다. 먼 곳도 괜찮으니 잘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24시 동안 케어해 주는 병원은 잘 없었고, 직원들이 전부 퇴근하면 강아지 혼자 있어야 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곳에 어떻게 막 입양한 아이를 맡길 수 있을까.


 토토가 다니던 24시 병원과 연계된 병원을 안내받아 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토토로 인해 친절하고 실력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이 하나하나 잘 대해준다는 걸 봤으니까.


 얼떨결에 이모님이 된 쌍둥이는 한 달 월급이 넘는 돈으로 젤리의 슬개골 수술을 해줬다. 말티즈라 그런지 양쪽 다 심각했다. 병원에서는 양쪽 수술이니 일주일은 입원해야 한다고 안내해 줬다.


 외롭지 말라고 우리 가족은 젤리가 좋아하는 인형과 원숭이 장난감도 가지고 갔다.


 잘 지내는지 보러 갔을 때, 사료라도 먹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먹는다는 말을 들었다. 할머니가 된 엄마는 유일하게 알레르기 반응이 없는 닭고기까지도 정성스레 삶아서 먹여달라 부탁했다.


 그런데 면회라도 갔다가 올 때면 젤리는 하울링하고 짖고 아주 난리가 난다고 했다.


 다른 강아지, 고양이 울음소리 사이에서 명확하게 들리던 젤리의 하울링 소리.


 토토를 병원에 맡기고 나오며 들었던 때처럼 우린 단번에 젤리 목소리임을 알아봤다.


 “이거 젤리 목소리지?”

 “젤리 목소리 맞지?”

 “집에서는 짖지도 않더니 목소리 엄청 크네.”


 다 젤리를 위해서 한 결정인데,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다.


 한편으로는 토토가 생각나기도 했고 말이다.


 혹시 또 버려진 거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걱정됐고, 결국엔 이른 퇴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병원에 있을 때보다 더 회복력이 빨라서 신기했다.



 이짝 손! 저짝 손!


 할머니가 키우기라도 한 건지 젤리는 산책만 나가면 보이는 할머니마다 인사를 하고는 했다.


 사실 산책도 몰라서 벌벌 떠는 젤리를 보며 우리 자매는 산책부터 알려줬다. 뛰는 게 재미있는지 밖에만 나가면 신나게 달리고 보는 ‘미친개’가 되었다.


 외할머니가 집에서 5분 거리에 살고 계실 때였다. 매번 큰 개만 보던 할머니는 작은 젤리를 귀여워하셨다.


 사투리를 쓰시던 분이라 이쪽, 저쪽보다는 이짝, 저짝이 더 익숙한 분이셨다. 그리고 젤리는 손을 아주 잘 주는 강아지였다.


 “이짝 손!” 하면 이쪽 손을 할머니 손 위로 떡하니 올렸고, “저짝 손!” 하면 저쪽 손을 할머니 손 위로 떡하니 올렸다.


 오랫동안 일을 하셔서 자글자글 주름진 손 위로 새하얗고 복슬복슬한 발이 올라갈 때면, 왠지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렸다.


 작은 강아지를 다룰 줄 몰라 벅벅 긁어주던 할머니의 손길이 좋았던 걸까. 젤리는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투리라 못 알아들을 법도 한데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쓰다듬다가도 “이짝 손!”이라는 말에 곧잘 손을 주는 젤리는 할머니의 예쁨을 받았다.


 그게 좋았던 걸까. 아직도 산책할 때면 할머니가 안 계신 그 집으로 자연스럽게 향하고는 한다.



 친구? 친구!


 젤리는 내가 아무리 놀아줘도 밖에서 강아지를 보면 신나게 달려가 인사했다. 집에서도 안 흔드는 꼬리를 밖에서 만난 친구에게는 반갑게 흔들어 서운하기도 했다.


 친구가 필요한 걸까?


 내 인생에, 우리 집에 다견은 절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젤리로 인해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었다.

 “둘째를…… 입양해 볼까? 사람이 넷인데 다견 가정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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