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이래도 되는 걸까?>
<나는 너를 품었고, 너는 나를 살렸다>
잊을 수 없는 날들을 기록합니다.
사랑이 남긴 상처와 다시 살아가게 한 온기에 대하여.
※ 이 브런치북에는 반려동물의 죽음, 이별, 강한 감정 묘사가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토토를 떠나보낸 뒤, 좀비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때 처음 유기견에 대해 알게 됐다.
부끄럽지만 그전까지는 유기견 문제를 잘 몰랐다.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TV에서 나올 때면 내 곁에는 토토가 있으니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 일쑤였으니까.
하지만 토토가 떠나고 몇 달 후. 나도 모르게 유기견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자꾸 눈길이 갔다. 17년을 함께한 토토가 떠난 나도 이렇게 힘든데, 주인에게 버려진 아이들은 오죽할까.
저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를 텐데.
그 당시의 나에겐 유기견에 관한 정확한 수치나 통계 같은 정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블로그와 게시물들을 하나하나 찾아보면서 현실을 알게 됐다.
유기견들의 환경은 상상 그 이상으로 열악했다.
안락사가 있는 시보호소는 보호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 대상이 된다는 것.
사설보호소는 누군가의 후원이 없으면 운영이 힘들다는 것.
그리고 보호소인 척하며 어리고 예쁜 강아지를 유기견인 척 파는 신종 펫샵과 품종견을 비싼 돈에 파는 펫샵이 있다는 것.
세상에는 인간의 이기심으로 버려지는 동물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동물을 물건 취급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 또한 충격적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껏 내 세상에 강아지라고는 토토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런데 토토가 없는 그때의 내 눈에는 자꾸만 시보호소와 사설보호소, 포인핸드 같은 곳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죽을 것 같아서.
사실 처음에는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 같아서 유기견 입양보다는 토토의 흔적을 찾기 바빴던 것 같기도 하다.
이때부터 유기견 입양에 대해 알아봤다. 블로그와 카페 후기, 입양 과정, 어느 보호소가 좋은지.
토토의 빈자리는 가슴 한구석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컸기에 누군가가 집에 있어야 우리 집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았다.
수많은 유기견을 봤고, 토토와 닮은 아이들만 눈에 들어왔다.
가장 많이 찾았던 건 시보호소였다. 토토의 마지막에 안락사라는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가 선택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망하게 죽지 않기를 바랐다.
한 생명에게 선택이란 표현도 웃기긴 하지만, 공고를 보면 보호 중과 안락사, 간혹 자연사가 떠 있었다.
안락사라는 말이 뇌리에 박혀 ‘선택’이란 단어가 나온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살고, 너도 살 수 있지 않을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걸 여실히 깨닫게 해 준 첫 존재가 토토였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도 멀게만 느껴지던 죽음이 토토로 인해 확 와닿았으니까.
결국 입양을 결심했고, 시보호소 사이트와 포인핸드를 매일 들어갔다.
그 와중에도 우린 토토와 닮은 아이들만 눈에 들어와 ‘아직 보내지 못했구나’ 싶었고. ‘이런 마음으로 입양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러다가 눈에 들어온 아이가 있었다.
생일은 2019년 8월 31일 추정. 은색 빛이 예쁜 실키테리어. 어쩌면 토토가 보내준 아이가 아닐까 싶었고, 곧장 시보호소에 연락했다.
“혹시 아이 입양 가능할까요?”
“네-! 어떤 아이 보셨어요?”
입양이라는 말과 함께 직원의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하지만 공고 번호를 불러주니 돌아온 말은.
“아… 여기 새끼 강아지들이 전염성 강한 병으로 아파서 입양이 어려울 것 같아요.”
아이를 물건 취급하는 것 같아서 데리고 오고 싶었다. 하지만 직원은 아픈 아이들은 여러 이유로 입양을 보낼 수 없다고 했다.
우리가 치료하겠다고,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말에도 어려울 것 같다며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시보호소였기에 에둘러 말한 안 된다는 거절에 우린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그 아이는 ‘보호 중’에서 ‘자연사’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사설보호소에 있던 7살, 토토를 닮은 듯 닮지 않은 실키테리어 한 마리. 우리 가족은 고민에 빠졌다.
7살이면 적지 않은 나이인데 과연 우리가 이 아이를 떠나보내고 멀쩡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어쨌든, 부모님의 반대로 그 아이는 입양할 수 없었다.
또 같은 아픔을 빨리 느끼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이것저것 재고 따지던 게 후회스럽다. 그러지 않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조금이라도 빨리 데리고 와서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그 아이는 결국 그 사설보호소에서 입양을 가지 못한 채 죽었고, 죽은 뒤에야 그 보호소의 사람에게 입양이 됐다.
입양, 고민의 끝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또 흘러만 갔다. 이러는 시간에도 아이들은 마지막 순간을 보호자 없이 보내고 있을 텐데. 그 생각만 하면 뭔가 촉박하게 느껴졌다. 빨리 누구라도 데리고 와야 아이도 살리고 나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뜻밖의 한 장의 사진이 나와 가족들을 멈춰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