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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Dec 29. 2020

너른 마당의 든든한 울타리처럼

여덟 번째 책 -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이규천 지음

1. 아빠도 양육 공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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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에서 청년기까지 이어진 굴곡진 인생 덕분에 나는 자녀의 육아와 정서 발달에 관심이 많았다. 내가 그렇지 못했으므로. 아이가 중요한 성장 시기에 일관된 양육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정서 및 사회성 발달에 부침을 겪을 수 있으며, 이는 자존감과 자아 통제감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주며, 이후에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아이의 출생부터 만 3세까지 안정애착 형성에 신경을 썼고, 3세부터 지금까지는 아이의 기질을 관찰하면서 아이가 안전하게 탐험을 즐기며 정체성을 올바르게 성립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 점에서 피아제의 인지발달, 에릭슨의 전생 발달 과정, 아들러의 개인 심리학과 인간 이해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아이가 이따금 잘못된 행동으로 훈육할 때는 이렇게 말을 한다.  


"아빠 엄마가 너를 사랑하지만, 너의 잘못된 행동까지 사랑하는 거 아냐"

이렇게 혼을 내어도, 아이는 속은 상하지만 부모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교정당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사실, 이 훈육은 누다심으로 알려진 '강현식'님의 대학원 입시 강의를 수강했을 때 들은 말이었다. 이 만큼 아이를 사랑하면서 훈육할 수 있는 말을 아직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참 좋은 선생님이셨다.




2. 아빠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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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본격적으로 말을 시작하면서 양육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나의 양육은 반복적인 한 방향 양육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자신의 주장과 요구를 말하기 시작하면서 어려움이 닥쳤다. 그것은 부모의 권위를 잃고 싶지 않으면서, 권위를 함부로 남용하는 부모가 되고 싶지 않은 탓이다. 점점 아이를 내 무릎에 앉히고 하는 눈높이 대화의 횟수와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결국, 아이를 어리석은 존재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 두고 양방향 소통을 해야 했다. 그러면서 한때 방송을 통해 부모들 사이에 유행했던 "그랬구나~" 식의 소통이 만능키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앞으로 다가올 초등학교 입학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가 입학하면 본격적인 사회생활의 장에 한 발을 들이게 된다. 수년간 함께 뛰어놀던 유치원 친구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25명 안팎의 친구들과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많이 다르다. 유치원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생기면 보육교사 분들의 집중 관리와 피드백을 바로 받을 수 있지만, 초등학교는 그런 것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단순히 매뉴얼에 정해진 시나리오를 따라 대응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어려움에 처한 경우,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까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득해진다. 부모가 처음이기에, 아빠가 처음이기에 그렇다. 




3. 든든한 울타리 같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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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가 어릴 때부터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니, 네가 알아서 해야 한다.' 

아버지가 당신의 자식이 책임감과 독립성을 가지기를 바라며 말씀하셨다는 것을 지금은 부모의 마음으로 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만 하셨을 뿐이지 자식을 위한 울타리 또는 이정표 역할에 별 관심이 없으셨다. 또한 자식의 성공에 크게 기뻐하고, 실패를 위로하거나 격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버지는 나의 학업 우수 상장을 허공을 날리면서 '지금 잘하면 뭐해? 앞으로도 쭉 잘해야지'라고 말씀하신 분이었다. 언젠가 우연한 기회를 빌어 이 에피소드를 한번 여쭤봤는데 아버지는 전혀 기억을 못 하셨다. 다만, 본인도 당신의 부모에게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모르고 말씀하신 거라고 에둘러 말씀하셨다. 게다가 '너의 인생은 너의 것이나 알아서 하라'는 말도 애초에 아버지의 것이 아니었다. 당신도 그렇게 듣고 자라셨던 것이다. 즉, 아버지에게도 울타리나 이정표는 없었다. 잘못된 양육이 악습처럼 대물림되고 있었다. 그 이후, 내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내 아이를 위한 새로운 양육 철학을 만드는 것이었다. 




4. '잊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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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 철학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한계는 있었다. 나는 양육의 큰 한 바퀴를 완주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양육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를 검증할 수 없었다. 또한, '나의 양육이 부모의 욕심인지 아이를 위한 것인지' 자문해야 했다. 그리고 아이가 시련에 빠져 방황할 때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상황에 따른 부모의 역할과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고민되었다. 그래서 항상 이 길을 먼저 가본 사람이 남긴 훌륭한 기록(책)이 나오기를 갈망했다. 내가 아직 가보지 않은 그 길을 알려준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갈망하던 2018년 12월 말에 그런 책이 출간되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소연)와 가수이자 미국 변호사(이소은)인 두 딸을 두고 있는 '이규천'님이 쓴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라는 책이었다. 책은 작가의 절절한 경험과 에피소드를 통해 두 딸을 어떻게 양육했는지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자유롭지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자기 분야에 성공을 이뤄낸 두 딸을 키워낸 작가의 양육 분투를 통해 나의 양육 철학과 아이에 대한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할 수 있었다. 책은 그렇게 내게 지침서 역할을 했지만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를 계속 생각하게 했다. 아마도 이 책을 대표하는 책 속의 문구는 이게 아닐까 싶다.


잊어버려! 



5. 나의 사랑도 천천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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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아내와 딸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질투가 날 때가 있다. 딸이 울거나 잠을 깨면 아내(엄마)만 찾는다. 나(아빠)는 안중에 없다. 딸의 울음에 이불을 박차고 한달음에 달려가도 엄마만 찾는 것이다. 이럴 때면 은근히 속상하다. 이 아빠의 사랑도 엄마 못지않은데 말이다. 하긴 똑같은 처지의 내 사촌 형도 속상해서 애꿎은 조카를 야단쳤단다. 물론, 나도 아니 그랬다고 말은 못 하겠다. 하지만 아이가 엄마만 찾는 것은 당연하다.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생명을 키우며 엄마와 애착(Attachment)을 형성하고,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공유하며 엄마와 유대(Maternal-Infant Bonding)를 맺는다. 실로 그 관계의 시작이 위대하기에, 아빠가 당장 어찌할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빠의 사랑이 엄마의 그것에 비해 절대 작은 것은 아니다. 엄마의 사랑이 위대한 사건(임신과 출산)에 방점이 있다면, 아빠의 사랑은 아이를 키우며 켜켜이 쌓여간 에피소드에 있다. 그래서 아빠의 사랑은 천천히 시작히 은근히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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