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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Jan 09. 2021

일이 없는 세상에도 봄은 오는가?

아홉 번째 책 -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 대니얼 서스킨드

1. 코로나가 일자리를 빼앗았다.

지난 12월, 나의 미국인 영어 튜터가  조만간 해고(lay off)를 당할 것 같다고 말했다. 교육 서비스에 종사하는 그녀는 이미 지난 5월에 해고를 당한 이력이 있었다. 새 직장에 다니고 있음에도 그녀는 해고를 다시 걱정하고 있었다. 만약 다시 일자리를 잃게 된다면, 그녀의 인생은 그녀의 잔고만큼이나 불안해질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당장 필요한 것은 정부가 지원금을 자기 통장에 바로 입금하는 것이라고 푸념했으며, 공화당과 민주당이 정쟁에 몰두할 뿐 정작 미국 가계의 현실에는 관심이 없다고 불평도 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부정선거를 입증하기 위해 쏟아붓는 수백만 달러의 돈을 보고 화가 난다고 했다. 오른손으로 지끈거리는 이마를 누르면서 말하는 그녀의 수심이 화면 너머로 절절히 느껴졌다.

<미국 실업률>

 작년 4월의 미국 실업률은 지난 40년 중에 가장 높은 14.7% 였다. 이 수치는 2009년 6월 실업률 10.2%(미국 금융위기발) 보다 4.5% 높으며, 같은 해 3월의 실업률 3.5% 발표치보다 약 11% 이상 치솟았다. 가파르게 치솟은 기울기가 송곳처럼 매서웠다. 저소득층의 서비스직과 일용직에서 집중적으로 해고가 발생했다. 그리고 지금은 중산층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공중파 방송에서 미국 중산층의 회계사와 약사가 일자리를 잃어 푸드뱅크에 무료 배급을 받는 것이 봤다. 미국의 전 중산층의 모습이라 단정하면 안 되지만, 생각지 못한 생소한 모습은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작년 10월 WSJ에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영구 실업자(기존 직장에서 완전히 해고된 자)가 점점 확대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국 실업률>

 한국의 실업률 사정은 어떨까? 언뜻 보면 한국의 실업률은 미국보다 나아 보인다. 하지만 실업률에 잡히지 않는 숫자가 있다. 비경제활동인구수는 실업률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숫자는 지난 10년 넘게 늘어나는 추세다. 작년 11월 통계청의 고용동향 브리핑에 따르면 비경제활동인구는 11월 기준 16,675천 명이라고 밝혔다. 2019년 수치가 16,318천 명 보다 357천 명(2.18%) 증가했다. 비경제활동인구 대상 중에 취업준비, 진학 준비, 군입대 대기, 쉬었음 등을 고려하면 실업률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자영업의 숫자도 봐야 한다. 작년 9월, 중소기업 연구원과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전년 7월 대비 '고용원이 있는 자영업자'는 1년 새 17만 5천 명이 줄었고, '나 홀로 사장'은 4만 7천 명 늘었다고 통계를 발표했다. 이런 와중에 최근 2.5단계 방역 수준 격상 대응으로 자영업 영업을 셧다운 하자 점점 폐업 위기가 가속화되고 있다. 자영업 사업주는 직원을 줄이고 빚을 내어 홀로 버티면서 폐업을 저울질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자. 비경제활동인구수와 자영업자 통계를 보면 지난 10년간 점점 줄고 있다. 코로나 이전에도 감소 추세였으나 코로나가 더 가세한 셈이다)


<실업률에는 비경제활동인구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이에 중앙정부와 지방행정은 재난지원금 재원을 마련하고 필요한 대상과 계층을 분류하여 작년에 세 번 제공했다.(물론 이 재원도 따지고 보면 전부 빚이다) 그럴 때마다, 재난지원금 수령 자격조건과 대상 기준을 두고 정치권과 일반시민들 사이에 불평등과 양극화가 함축된 논쟁이 있었다. 단순히 두 가지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첫째, 모두에게 주는 거냐? 둘째, 얼마나 줄 거냐?

실물경제가 코로나 때문에 나빠진 것은 아니지만, 트리거와 촉매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다. 코로나가 일자리를 강탈한 셈이다. 



2. 인공지능(A.I.)이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다.

팬데믹 발생 후, 고용시장에 불어닥친 위기와 정부의 대응을 보고 있자니 '인공지능'이 떠올랐다. 인공지능이 팬데믹을 극복하여 인류를 구원하는 핵심기술이라고 떠오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점에서 팬데믹과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생각은 작년 3월에 한국에 번역 출간된 '대니얼 서스킨드'의 『노동의 시대는 끝났다(A World Without Work)』을 읽지 않았다면 미치지 못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어떻게, 왜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가?


팬데믹은 저소득층의 서비스직과 일용직을 빼앗아 갔지만, 인공지능은 중산층의 일자리부터 빼앗아간다. 중산층이 가진 일자리 대부분이 '틀에 박힌 업무'이기 때문이다. 기계는 '틀에 박힌 업무'에 충분한 데이터가 있다면 자기 학습과 무한반복으로 인간보다 적은 비용으로 더 나은 생산성을 가져다준다. 반면에 '틀에 박히지 않은 업무'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의 직업에 분포되어 있으나, 일자리의 내용(직업), 양(수)과 질(임금)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 물론, 고소득층도 안심할 수 없다. 2017년 골드만삭스는 600명의 주식 매매 트레이더를 해고(lay off)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컴퓨터 자동거래 소프트웨어'로 대신했다. 또한 외환 거래는 네 명의 딜러가 아닌 한 명의 컴퓨터 엔지니어로 대신했다. 기존 트레이더 및 딜러들이 거래하던 방식의 막대한 데이터를 통해 가장 그것에 근접한 알고리즘을 적용했다. 해당 엔지니어는 알고리즘 공식을 프로그래밍한다. 월가의 주식 트레이더들은 고소득을 올리는 직업이다. 하지만 이제 그 자리를 알고리즘 엔지니어들이 대신한다. 인공지능 기계가 600명을 갈아치운 셈이다. '틀에 박힌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소득층의 일자리는 어떨까? 지금과 가까운 미래에는 괜찮지만 먼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 물리적인 접속과 대면이 불가피한 서비스직(보건, 의료, 미용, 복지, 교육, 식당, 건설잡역 등)이기에 틀에 박힌 업무는 아니다. 하지만 인간이 일을 처리하는 방식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인공지능에게 언젠가는 잠식당할 것 같다. 즉, 인간은 직접 인간을 대면하여 직관과 경험으로 일을 처리하지만, 인공지능은 막대한 데이타와 좋은 SW가 있으면 적은 시간으로 일을 처리한다. 예를 들어, 최근에 기업이 면접에 인공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면접자의 얼굴 표정을 스캔하면, 이를 수 만장의 다른 얼굴 사진과 비교 처리하여 면접자의 감정을 읽어낸다. 오직 인간만이 감정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없게 된 셈이다.


하지만 당장에 인공지능이 코로나 팬데믹처럼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지는 않는다. 저자도 일자리가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줄어든다고 했다.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기보다 보완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 3월 마이크로소프트가 발표한 『인공지능(AI)과 일자리에 관련한 백서, 'AI를 위한 준비: AI가 아시아의 일자리와 역량에 갖는 의미(Preparing for AI: The implications of artificial intelligence for jobs and skills in Asian economies)』에 따르면 2028년까지 산업과 직종 전반에 걸쳐 미래 일거리가 증가한다고 한다. 또한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연구에 따르면, 2022년까지 인공지능이 7,500만 개 일자리를 대체하고 1억 3,30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한다. 산업별 차이가 있겠지만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는 산업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경우 생산성, 임금 및 노동환경이 개선된다고 한다. 또한 AI 관련 일자리의 비중은 전체의 1/5일뿐이다.

<출처 : "AI, 일자리 잠식보다 창출 효과가 더 크다" - ZDNet korea>


하지만 저자는 종국에는 기계가 인간을 대체할 것으로 본다. 물론 이전의 신기술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기존의 일자리는 사라졌지만 새로운 기술이 생산성을 증대시켜 경제가 성장하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리고 인류가 나눌 파이가 커졌다. 이렇게 '보완하는 힘'이 '대체하는 힘'을 압도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과거와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1) 기계가 인간의 일자리를 보완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고, 2) 인간은 비숙련에서 숙련으로 이동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요구하고, 3) 기계가 자기 학습과 무한반복을 통해 인간보다 빠르게 숙련되며, 4) 틀에 박히지 않은 일자리 공급에 비해 수요(구직자)가 많고, 5) 막강한 자금력과 시장력을 가진 대기업이 막대한 데이터, 뛰어난 소프트웨어, 충분한 장비/인프라를 확보하여 과실을 독식할 수 있기에 점점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로 대체할 것이라 주장한다. 책에 관점에 나의 생각을 투영하면, 미래에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경제성장의 파이는 더 커질 수 있지만 점점 중산층에서 저소득층으로 다시 고소득층으로 역설적으로 일자리는 줄어들 것 같다. 또한 고소득층이 가진 전통 소득과 노동소득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그것들을 한참 앞선 상황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분배의 문제가 생길 것이다. 결국,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가 현재 보다 심화될 것이다. 돈이 언제나 문제다.



3.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마윈과 머스크의 인공지능 대담>

2019년 8월 중국 상해에서 열린 '제2회 세계 인공지능 대회'의 부대행사로 중국 알리바바의 마윈과 미국 테슬라의 머스크가 인공지능에 대해 대담을 했다. 대담의 내용은 유튜브에 가면 볼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여러분이 책을 읽기 전에 먼저 이 영상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고백하자면,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마윈처럼 인공지능에 밝은 면만 생각했을 것이다. 마윈은 기계가 인간을 보완할 뿐이며, 기계를 만든 것은 인간이기에 인간이 더 똑똑하다는 논리로 기계가 가져 올 잠재적 위험을 모른 척했다. 인간은 항상 우월하기에 다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머스크는 기계는 인간보다 똑똑하다고 말했다. 현재는 어느 좁은 분야에 국한해서 인간이 기계를 앞서지만, 기계가 다른 기계를 설계하고 만드는 순간 기계는 인간을 초월할 것이다. 그때는 인간이 고래를 바라보듯이, 기계가 인간을 바라볼 것 같다. 머스크는 '인류 붕괴'라는 말을 써가며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말했는데, 이 책은 그런 미래를 막고자 해야 하는 여러 대안을 소개한다. 


책의 대안은 언급하지 않겠다. 직접 읽고 확인하는 것이 좋다. 대안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정치적이며 철학적이다. 또 한편으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에 말 그대로 대안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인해 고용시장에 닥친 한파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겪고 보니 저자의 대안을 숙고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 책의 목적이 이 점에 있다고 본다. 나날이 영리해지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지금부터 숙고해야 하는 것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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