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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겸 Mar 12. 2023

금리, 시간의 대가

스물여섯 번째 책 / 금리의 역습 / 에드워드 챈슬러

1.

미국 실리콘 밸리 은행은 자산규모 기준으로 미국에서 16위를 하는 지역은행이다. 미국 내 은행 수가 약 5천 개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면 이 은행을 단순한 지역은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은행은 실리콘 밸리 일대의 IT 기업 및 스타트업 회사들을 상대로 기업예금, 기업대출, 지분참여 및 직원의 급여통장 서비스를 제공하며 IT 기업에 특화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했었다. 하지만 지난 3월 10일에 파산해 버렸다. 그것도 단 이틀 만에. 파산 소식을 들은 예금자들은 돈을 인출하기 위해 본점 및 지점으로 달려갔지만 미국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재빠르게 수습에 들어가면서 돈을 못 찾고 허망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들을 위해 미국 예금보호제도가 보호하는 예금의 한도는 25만 불(3억 3천만 원)이다. 문제는 그 이상을 초과하는 계좌가 전체 계좌의 93%나 된다고 한다. 파산 관재인이 된 예금공사가 특정하지 않았지만 쏟아진 기사를 종합해서 보면 약 200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아마도 이 금액에는 기업의 운영자금, 연구개발자금 및 직원 급여 등이 포함되어 있을 건데 적지 않은 악영향이 예상된다. 이와 반대로 은행이 파산 수 시간 전에 은행직원들에게 거액의 보너스가 지급했다는데, 우연의 일치일지는 모르겠으나 비판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2.

그렇다면 왜 파산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미국 정부와 연준이 기업과 가계에 뿌린 엄청난 양의 달러 신용(유동성) 때문이다.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금융과 실물로 이어지는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양적완화를 도입했다. 연준이 단기 금리를 공개조작하는 방법으로 시장의 사이클의 속도를 조절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미국채 10년물을  무제한으로 매입하는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물론 연준은 정책금리도 제로금리에 가깝게 내렸다. 이렇게 되면 돈을 빌리는 비용(이자)이 상대적으로 크게 낮아진다. 이렇게 낮아진 차입비용은 사람들에게 부채를 일으켜 뭔가 돈을 벌려는 시도를 부채질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투자라고 한다. 투자가 이뤄지면 사람을 고용하고, 고용된 사람은 현재 급여와 미래 소득을 생각해 소비에 나선다. 미국 GDP의 70%에 달하는 소비가 증가하면 미국 경제는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순환을 만드는데 저금리 상황을 10년 넘게 유지했다. 이렇게 되면 일부 기업들은 기술을 혁신하고 생산성을 향상해서 이익을 남겨 부채를 빨리 갚으려 하지 않는다. 느슨한 금융제도에 맞게 느슨한 비용을 부담하며 보다 위험한 사업선택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해 계속 돈을 빌리면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저금리로 인한 차입비용은 10년 간 내내 낮았으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앞으로도 저금리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생각한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들도 아마 그렇게 관성에 물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런 생각은 지속가능할 수 없다.


3.

2021년에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조기에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여러 경제교수 및 전문가 등이 인플레이션 상승에 따른 우려를 보였으나 연준은 팬데믹에 따른 공급망 병목현상으로 발생한 일시적인 현상으로 국한해 버렸다. 하지만 2022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는 9.1%를 찍었고 연준은 75bp 기준금리 인상을 연속 네 번 했었다. 인상의 폭도 가팔랐지만 속도도 너무 빨랐던 셈이다. 게다가 기준금리 정책의 효과는 12~16개월 정도 지나서 발현되며, 인상에 따른 인플레이션 억제 효과가 나는지 정확히 알기 어렵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금리인상으로 무언가가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무엇이 부러지는지, 언제 부러지는지, 얼마나 부러지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미국 시장의 참여자들은 걱정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은행이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과 같은 금융 위기의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걱정 말이다. 실리콘밸리 은행이 파산한 표면적 이유에 따르면 은행이 고객들의 예금 인출 요구에 대응하려고 매도가능증권(만기 전에 파는 채권과 주식)을 팔았는데 18억 달러 손실이 났다. 이를 메우려고 증자계획을 발표했는데 이 소식을 들은 기업고객들의 예금인출사태(뱅크런)가 일어났다. 매도 손실은 상당하고, 증자는 실패하고, 예금은 빠져나갔으니 파산을 한 것이다. 제삼자가 볼 때 은행이 애초에 증권 매도를 유심히 관리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냐고 되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저금리 시절에나 그러한 조절이 가능했다. 낮은 기대수익률에도 채권과 주식을 사줄 사람은 많았다. 저금리니까. 그러나 고금리 상황은 다르다. 지난 1년간 가파르고 빠르게 오른 미국 기준금리는 은행이 보유한 채권의 가격은 계속 떨어뜨렸다. 은행은 매도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손실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4.

국내 일부 부동산 전문가 등이 저금리에 따른 금융여건에 취해 부동산 투자에 금리는 전혀 무관하다는 주장을 하곤 했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주장일 뿐이다. 금리는 시간의 값이다. 당장의 돈으로 실현할 수 있는 현재의 즐거움을 미래로 미루기에 받는 시간의 대가이다. 이러한 논리는 인간의 경제역사에서 항상해왔다. 피부, 언어, 지역, 문화, 종교에 상관없이 다양한 형태와 방법으로 늘 인간의 곁에 있었다. 그것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점토판에서 스마트폰 어플 속 은행 계좌로 증명이 가능하다. 금리는 인간의 경제흥망에 기준점 역할을 한다. 금리의 변동에 따라 다른 자산의 가치가 변한다. 실질금리에 따라 변동하는 금가격만 봐도 그렇다. 또한 금리는 시간과 위험을 평가하면서 투자 여부를 결정한다. 이는 적절한 산업에 적절한 자원이 배분되는 역할을 한다. (물론 인간의 욕심에 자주 벗어나지만) 그리고 금리는( 양극화와는 상관없이) 소득과 부를 분배하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내용을 담은 책이 있다.

다만, 케인즈 보다는 슘페터와 하이에크에 가까운 의견을 담은 책이란 점을 생각하고 읽자. 그럼에도 좋은 책이다. 적어도 금리의 역사와 함께 앞으로 무엇을 투자해야 할지, 금리가 무엇을 결정하게 될지에 대해 화두를 던지기 때문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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