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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겸 Apr 23. 2023

전세사기, 기울어진 운동장

1.

미국 가계자산의 70%는 연금, 주식, 펀드, 국채 등의 금융자산이고 나머지 30%는 주택 및 기타 부채 등의 非금융자산이다. 반면 한국 가계자산의 70% 주택 부동산이다. 따라서 한국은 주식보다는 부동산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부동산 가격 안정화 여부는 현 정부의 흥망뿐만 아니라 다음 정권의 주인마저도 결정한다.

지난 3개 정부의 경제성장률

2010년 유럽에 재정위기가 터진다. 수출 국가인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세계의 그것보다 더 하락하고 2012년에는 2.3%로 떨어진다. 박근혜 정부는 내수 진작을 통한 경제성장률 상승과 주택 가격 하락을 막기 위해 출범 첫 해에 부동산, 세제, 금융 정책을 완화했다. 공급을 줄이고 세재와 금융을 완화하여 저금리로 집을 살 수 있도록 열어준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부동산 3 법(분양가상한제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적용 3년 유예,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재건축 3 주택)을 개정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온기가 돌더니 박근혜 정부 기간 내내 주택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했다.

2020년 10월 전세시장 모습 - 출처 : 뉴스원 기사

집값을 급여로 쫓아갈 수 없었던 대중은 주택 가격 안정화를 위해 문재인 정부를 선택했다. 문재인 정부는 실수요와 다주택자를 선별하면서 수요 억제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특히 다주택자를 정부의 부동산 관제 테두리 안에 넣기 위해 임대주택사업자 활성화 제도를 추진했다. 또한 이전 정부를 의식한 듯 내수 진작을 위해 주택/건설 섹터를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내세우며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공급을 하지 않았다. 결국 주택 가격이 계속해서 하늘에 맞닿을 정도로 치솟자 문재인 정부는 임기 말에 공급 확대 정책을 내놓는다. 그리고 당시 여당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임대차 3 법을 (계약갱신청구권제,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전세 매물이 점점 줄어들면서 전세가격이 폭등했고 세입자들은 제비 뽑기를 하고 면접을 보면서 전세를 구해야 하는 웃픈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2.

당시 부동산 전문가들은 해당 정책을 비판하면서 2022년 8월이 되면 전세 폭등으로 전세입자가 고통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이유로 고통받기 시작했다. 2021년 하반기부터 전세 사기 뉴스가 심심치 않게 올라왔다. 그 당시에도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있었고 미국 연준이 기준금리를 빠른 속도로 인상하기 전이라서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2022년 1월부터 상황은 나쁜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시공회사, 분양회사, 중개업자, 부동산 법인 또는 다주택자들이 높은 전세가격에 갈 곳 없는 2030 세입자들을 먹잇감으로 전세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양방의 약인으로 시작되는 계약에서 전세는 철저하게 세입자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정보 불균형과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세입자들이 자기 자산을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은 매우 적었다. 세입자가 집주인의 개인정보와 재산정보가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증금을 지킬 수 있는 정보를 현실적으로 제공받기 어려웠다. 예를 들어  신탁원부, 국세/지방세 완납 증명서, 전입세대 열람내역서 또는 임대계약 확정일자 현황 등은 집주인만 발급 가능하다. 세입자가 요구할 수 있지만 당시 불리한 위치 때문에 받을 리가 만무했다. 따라서, 2030 세입자들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집주인과 중개소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과 전세보증반환보험을 가입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도시주택보증공사의 대위변제 채권금액과 미회수 금액이 매년 증가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전세금 반환이 제때 이뤄지지 못해 발생한 문제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3.

그리고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사회 문제로 터지고 말았다. 서울, 인천, 대전, 동탄, 부산 등에서 수 십채 또는 수 백채의 전세사기 사고가 연일 발생하고 있고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2년 전 다주택자와 법인들이 위험헷지 없이 남의 돈(전세보증금)으로 무분별하게 갭투자와 무갭투자를 했지만 매매가격 하락에 따른 깡통전세를 만들었고 피해는 고스란히 세입자가 지게 되었다. 열심히 일하며 모은 돈을 한순간에 잃었다는 자책감과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세입자 몇몇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따라서, 내가 당해보지 않았다고 한들 이런 상황에 갇힌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왜 사기를 당했냐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전세사기의 판은 정부 및 관련기관의 잘못된 정책과 부실한 관리감독을 이용한 부정한 일부 시장참여자들이 덫을 깔고 있는 구조다. 나조차도 사기를 당할 수밖에 없다. 위조 서류를 걸러내지 못하는 형식적인 심사주의에 빠져버린 것이 요즘 세상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알고 있는 전세사기 대표적인 5가지 유형을 간단히 공유하고 글을 마친다. 개인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에서 세입자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기를 촉구한다.



첫째, 신탁 전세 사기 - 집주인이 자기 집을 신탁회사에 맡기고 대출을 받으면 집은 신탁회사의 명의가 된다. 그럼 전세입자는 신탁회사와 전세계약을 하는 게 맞지만 이를 아는 전세입자는 많지 않다. 집주인이 이를 이용하여 전세입자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거나 신탁회사의 위임장 없이 전세계약을 체결한다. 그 이후 신탁회사가 전세입자에게 명도소장을 송달하고 집에서 나가달라고 하면 전세입자는 그제야 사고를 파악한다. 신탁 대출 여부가 등기부등본 ‘을구’에 표시되지 않으니 전세입자는 이를 사전에 확인할 방법이 없다.


둘째, 대항력 전세 사기 - 전입신고와 확정일자에 따른 대항력이 다음날 자정에 적용된다는 틈새를 노리고 집주인이 당일 대출을 일으켰는데 원금과 이자를 갚지 않아서 경매에 넘어가는 사고. 마찬가지로 전세입자가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최근에는 집주인이 신용불량인에게 웃돈을 주고 집을 넘긴 다음에 대출까지 챙겨서 잠적한다고 한다. 전세입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경매통보를 받아쟈 사고발생을 알게 된다.


셋째, 이중 계약 사기 - 집주인의 위임을 받은 제삼자 또는 중개인이 집주인에게는 월세라고 하고 세입자에게는 전세라고 계약을 한 다음에 전세금을 착복하고 잠적하는 사건. 또는 소유주가 다가구 건물을 매입하고 은행에 대출을 받은 후 전세입자가 선순위 임차인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이용하여 전부 전세를 싸게 계약을 한 다음에 대출받고 잠적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당연히 경매에 넘어가면 그제야 전세입자가 알게 된다.


넷째, 신축 빌라 전세 사기 - 건설주가 빌라 건물을 지어놓고 분양이 되지 않으니까 전셋값 폭등이 오는 것을 이용하여 전세가격으로 투자자에게 판다. 그럼 투자자는 매매잔금과 전세잔금을 같은 날로 해서 계약을 한다. 전세입자 보증금으로 집을 사는 꼴. 여기에 중개인도 수수료를 받고 전세입자를 모집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를 무피 투자라고 하는데 문제는 투자자가 이런 식으로 여러 채 매수를 하다가 전세금 하락으로 깡통전세가 돼버리면 감당하지 못하고 잠적해 버린다.


다섯 번째, 가짜 임대인 전세 사기 - 신분증을 위조하여 집주인 행세를 하면서 저렴한 전세 광고로 사람을 유인하여 전세 계약을 맺고 전세금을 착복하고 잠적하는 사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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