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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겸 May 15. 2017

아픈 만큼 성숙해지더라

 묵희는 예전 직장 동료였다. 내가 경력직으로 입사하여 새로운 회사의 모든 것들이 생소했을 때 여러모로 나를 도와준 녀석이었다. 일반적으로 새로운 회사에 이직하게 되면 기존 부서 사람들의 가벼운 텃새나 경계심이 있는 눈길을 받기 마련인데 녀석은 그렇게 굴지 않았다. 업무용 컴퓨터와 사무용품 등의 준비에서부터 회사의 조직문화와 유의사항 등을 내게 자세히 알려준 정말 고마운 사람이었다. 서로 사는 것도 그리 멀지 않고 이야기도 잘 통해서 여러 번 같이 퇴근을 하기도 했었다. 나는묵희가 나와 오랫동안 일하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퇴사했다. 나로서는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의 선택을 존중하며 떠나보냈다. 나는 그와 소중한 인연을 계속 이어가고 싶어 간혹 연락도 하고 만나기도 했었다.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묵희에게서 요 며칠 전에 문자 연락이 왔다. 서울 명동 소재의 외국계 회사에서 면접(Job interview)이 곧 있을 예정인데 걱정 반 기대 반에 꽤 긴장된다는 문자였다. 일단 나는 녀석에게 진심으로 자신을 숨기지 말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고 말과 함께 회사 이름을 물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과거 수년 전에 면접을 봤던 회사였다. 지금은 시간도 많이 흘러서 이미 오래된 에피소드가 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나는 꽤 복잡한 심경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육칠 년 전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치열했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핸드폰에서 반갑게 인사하는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OOO 대리님 되시죠? 저는 OO펌의 OOO 컨설턴트예요. 대리님이 OOOO에 올려주신 이력서를 보고 연락드렸어요. 지금 대리님한테 딱 맞는 포지션이 나왔는데 한번 지원해보시겠어요?”


 그때 나는 국내 재계 10위 안에 드는 대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지만, 잦은 조직변경으로 어디 정 붙일 곳 없이 고달프게 일하고 있었다. 공채가 아닌 수시채용으로 채용된 나 같은 경력직자들은 조직변경이 있을 때마다 냉장고에 붙였다 떼기 쉬운 자석 취급을 받았다. 항상 이 부서 저 부서를 전전했다. 그나마 수도권 사업장을 벗어나지 않으면 다행인데, 지방 사업장으로 장기간 파견을 당하면 정말 어찌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나도 경북의 모 사업장에 가서 약 3개월 장기 파견 근무를 했었는데, 나는 당시 신혼이었다. 집에 혼자 덩그러니 혼자 긴긴밤을 지새울 아내를 걱정했던 기억이 난다.


 전화를 받고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그리고는 하루 정도 고민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지원했다. 그러나 막상 지원을 결심하니 지원 회사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막막했다. 물론 나만 겪는 문제는 아니라 경쟁자들의 문제이기도 했다. 내부 추천 지원자가 아니고서야 경쟁의 조건은 누구에게나 같았다. 요즘은 지원 회사의 급여/복지, 사내 문화, 승진기회, 업무와 삶의 균형, 경영진, 면접의 난이도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과 서비스가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정보를 오직 헤드헌터한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맞춤식으로 지원서를 작성 후 제출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서 1차 실무진 면접이 잡혔다는 소식을 헤드헌터로부터 전해 들었다. 그때부터 헤드헌터는 나의 상품 가치를 알아봐 주며 면접에 필요한 정보와 팁 등을 알려주었을 뿐만 아니라, 헤드헌터 사무실에서 별도의 미팅까지 했었다. 헤드헌터는 누가 면접관으로 나서는지 성별과 연령대 및 성향은 어떤지를 자세히 이야기해주었고, 예상 면접 질문을 반드시 숙지하라고 조언까지 해주었다. 나도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탓에 꽤 열심히 준비했었다. 면접에서 떨리는 긴장감이 일으키는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반복된 연습만이 합격하는 길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1차 면접을 했었다. 몇 가지 챌린지를 받기는 했지만, 연습 덕분에 무난히 넘길 수 있었다. 면접이 끝난 다음 주에 헤드헌터는 지난번보다 더 반가운 목소리로 최종 임원 면접만 남았다는 전화를 해주었다. 그녀는 실무진 면접 결과가 너무 좋아서 임원 면접이 큰 챌린지는 없을 것이며 거의 정해진 절차라 큰 실수 없으면 무난히 합격할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듣자 적잖이 흥분되었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부품 취급받지 않고 좋은 회사에서 사람답게 일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감이 생겨났고 이번만큼은 내 뜻대로 일이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면접 당일. 무릎 윗선까지 절묘하게 내려오는 베이지 단색 스커트에 상의는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를 검은색 재킷을 입은 여자가 혼자 면접장에 들어섰었다. 면접관이었다. 그녀의 굳게 닫힌 입과 턱으로 내려오는 주름에서 나에 대한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의자에 걸터앉아 몸을 내 쪽으로 보지 않고 비스듬히 몸을 기울였다. 나는 곧 다가올 그녀의 공세를 직감했고 어떻게든 버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실무진 면접은 꽤나 평가가 좋던데 나는 달라요. 나는 OOO깉은 부류의 사람을 잘 알아요. 본인이 약 2년마다 이직을 3번 한 건 알죠? 왜 이직을 했는지는 이미 실무 면접관들한테 들었어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당신이 회사의 로열티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네요. 이런 경력이면 그 어떠한 회사도 당신을 뽑지는 않을 거예요. 2년 있다가 나갈 게 분명하니까요. 그래서 난 당신을 채용하지 않을 겁니다.


 본래 어느 누구든지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개중에는 숨기고 싶은 것이 있기 마련이다. 만약 누군가가 당사자의 어떠한 동의 없이 그것을 드러내는 경우, 당사자는 심히 불쾌해하거나 몹시 당황스러워할 것이다. 전자는 자신의 약점을 이미 알고 있는 주변에서 폭로할 경우이고, 후자는 나를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약점을 간파당했을 경우이다. 나는 후자였다. 나는 경청의 표현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점점 아득해져만 갔다. 약 2년을 간격으로 나는 퇴직과 이직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것이 내가 숨기고 싶은 약점 중의 하나였다. 폐부를 찔린 것이었다. 그녀는 개인적인 감정은 없으며 조언을 해준 것이라는 말과 함께 면접실 문을 열고 먼저 나가버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나 자신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적어도 그런 말을 생면부지의 사람한테 들었을 때는 입에서 어버버 소리라도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자신을 자책했다.


 그 당시 그녀의 말은 분명 내게 상처를 주는 말이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경험 덕분에 나는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었다. 2년마다 찾아오는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 이직으로 피하려고만 했던 나의 부족한 모습에 대해 나는 자성과 숙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후, 다른 회사의 임원 면접이 있었다. 그곳에서도 그 약점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나는 약점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회사에서 약 5년 동안 근무했다. 약점을 극복한 셈이었다. 묵희에게 문자 연락을 받고 나서 문득 그녀가 잘 있는지 궁금했다. 다시 그녀를 만난다면 어버버 거리는 소리보다 더 나은 말을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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