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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씨 Feb 03. 2023

#7 사회생활이 원래 이런 거라지만

첫 회사에 출근했다. 공유 오피스였다.


공동 창업자 세 분과 사수님 한 분, 2주 먼저 들어온 몰입캠프 출신 인턴 한 명까지 총 5명이 있었고 나는 3주 차 언리얼 개발을 함께 했던 친구와 같이 입사하여 총 7명의 구성원이 되었다.


처음 들어가서 인사를 한 후 사수님과 CTO님께서 장비 세팅을 도와주셨고 입사 첫날 바로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인터뷰 때 기술 스택은 프론트를 하게 될 거라고 하셨는데 그때 나는 프론트가 무슨 언어를 쓰는지 무슨 프레임워크를 쓰는지 사실 프레임워크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로 들어갔다. 그냥 나도 이제 직장인이다! 야호! 하며 해맑게 들어간 것이다.


숨은 개발자 찾기


그렇다 나는 개발자가 아니었다.


한창 방황하던 시절 들었던 웹 프로그래밍 기초 수업에서 HTML과 CSS 그리고 JS를 조금 배웠었는데 그 조금 배운 JS가 개발 언어가 될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이었다.






첫 째날,


내가 있던 스타트업의 도메인은 화상 상담 플랫폼이었는데 이에 따라 나의 첫 태스크는 ’ 상담 시간 수정하기‘였다. 리액트는커녕 뭐 JS를 제대로 공부해 본 적도 없었으니 태스크를 받아 들곤 멍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아웃풋을 내야 하니 빨리 기존에 돌아가던 코드를 파악해야 했다. useState가 뭐지 검색해 보고 대충 변수 초기화할 때 쓰는구나 오케이 다음. 훅이고 뭐고 그냥 빨리 기능을 구현해내야 했다. ‘정확히 알아야지’ 했던 캠프 때의 나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기능구현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대충 짜놓은 코드가 나중에 얼마나 나를 고통스럽게 할지 알기 때문에 제대로 공부하고 쓰라고 하겠지만 그때는 일단 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제대로 공부하고 쓰란 말이야


그렇게 허둥지둥 대다 오늘은 코드 파악하는 날이었다고 스스로 둘러대며 첫날을 마무리했다.




둘 째날,


다음 날 대표님은 회사 사람들을 모두 불러 한 명씩 소개를 시키시고 당부의 말씀을 하셨다.



실력을 키우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회사는 아웃풋을 내야 하는 곳이니 성과가 안 나오면 수습기간을 늘리겠다.



한 달이었던 수습기간을 늘리겠다는 것이었다. 사실 처음 얘기했을 때와 달라진 말에 억울한 감정이 들 만도 한데 그때의 나는 억울함보단 수습기간이 늘어날까 불안감이 앞섰고 오늘부터 야근을 하겠노라 다짐하게 되었다.




2주 후,


그렇게 야근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2주쯤 지났을 때였나. 대표님이 잘하고 있냐며 인턴들에게 다가오셨다.


나는 개발하던 기능에 대해 말했고

대표님께서는 그걸 아직도 하고 있냐며 나무라셨다.


답답해하는 눈치였다.


날 한심하게 바라보는 표정을 애써 외면하며 나름 개발에 차질이 생겼던 이유를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어쨌든 내 역량부족으로 비치는 건 변함이 없었다.


입사 후 나도 내가 답답하지 않았던 적이 없는데 다른 사람까지 나를 답답해하니 마음이 그렇게나 무거울 수가 없었다. 집 가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그 후 마음만 급해진 나는 머리를 쥐어뜯다 멍하니 있다를 반복했다. 지금 돌아보면 요란한 빈 수레처럼 확실하게 아는 지식이 아닌 아는 것 같은 지식을 싣고 계속 수레를 끌었다. 그땐 그게 지름길인 줄 알았다.




한 달이 지나고,


사수님께서는 날 회의실로 부르셨다. 한 달간 어땠는지 힘들진 않았는지 등을 물어봐주셨다. 그리곤 본론을 얘기하셨다.


대표님이 처음 입사하셨을 때 하셨던 얘기를 언급하시며, 수습기간이 늘어나게 되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불안한 예감은 틀리질 않네.


내가 내 실력을 알기에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결과였지만 막상 귀로 직접 들으니 생각보다 더 아팠다.


이때 사수님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얘기하셨는지 혹여나 내가 시무룩해하면 사수님이 미안해하실 것 같아 눈물이 나는 것을 꾹 참고 그럴 것 같았다며 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턱끝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자리로 돌아온 나는 10분 정도를 스스로 다독이다 화장실에 가서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운 게 티 나지 않게 감정이 북받치는 것을 억누르며 내 실력에 대한 원망과 자책의 시간을 가졌다.


그날은 조금 빨리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돌아와 엄마아빠와 식탁에 둘러앉아 수습기간에 대한 얘기를 시작했는데 사실 시작도 전에 눈물이 터졌다.


”너무 속상해.
나도 잘 못하고 있는 거 알았는데,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너무 슬퍼. “


엄마 아빠는 정신없이 우느라 말도 띄엄띄엄하는 나를 보며 조금의 미소와 위로를 건네주셨다. 그리곤 마지막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근데 사회가 원래 그래.



당시에는 이 말이 참 그렇게 서운했다. 알지. 나도 사회가 이런 곳이라는 거, 자비로운 곳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거. 실력이 곧 내 가치라는 거. 몰랐음 차라리 낫지 알아서 더 슬펐던 건데.


그때는 나도 안다며 짜증을 냈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 부모님도 숱하게 느껴오셨을 말이었겠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게도 이해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과는 상반되게 그때 남자친구는 나를 대신해 엄청나게 분노해 주었는데 그 덕에 남탓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


남친: 수습기간이 왜 늘었다고 생각해?

나: 내가 못 했으니까.

남친: 그냥 돈 주기 싫어서 그런 거야.
아직 학교 졸업도 안 한 사람 뽑아놓고 바로 아웃풋 내길 기대하는 게 잘못된 거지. 어려운 게 당연한 건데. 나라면 그만뒀을 거야. 고생했어.


사실 못 해서가 맞긴 한데 의식적으로라도 남 탓을 하려고 하니까 울음이 조금 그쳐졌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남자친구에게 위로를 받고 다시 회사로 나설 때 내 마음가짐은 전과는 달라졌다.


이미 한 번 받은 상처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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