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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씨 Jan 26. 2023

#6 꿈같던 대전에서의 한 달 기록

화창한 날씨와 함께 대전에 도착했다.


부모님께서는 짐을 내려주시곤 응원의 말과 걱정 어린 눈빛을 남기고 떠나셨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약속시간에 다다라서 잘못된 장소에 있음을 깨닫고 캐리어를 들고 마구 뛰었다. 첫날부터 왜 이러냐 싶었는데 다행히 먼저 와있던 동기 친구가 나를 발견해 주어 무사히 출석체크를 할 수 있었다.


기숙사를 배정받아 받아 짐을 풀고 다 같이 학생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다른 학교 학식이라니 신기했다. 점심을 다 먹고는 IT융합빌딩이라는 N1 건물로 가서 강연도 듣고 비로소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캠프는 20명씩 3분 반으로 이루어졌는데 나는 룸메와 같이 2분 반으로 배정받았다. 한 분반에 반은 카이스트생 그리고 반은 타학교정도의 비율이었고, 1주 차는 카이생과 타학교생 각각 한 명씩 짝이 되어 정해진 자리에 정해진 플메(프로젝트 메이트)와 앱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1주 차


1주 차는 총 세 개의 탭이 있는 어플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첫 번째 탭은 연락처를 연동하고 두 번째 탭은 갤러리를 연동하고 마지막 탭은 자유였다. 연락처는 플메가, 갤러리는 내가 맡아 진행했다. 마지막 탭은 간단한 메모장으로 구성했다.


내 첫 번째 플메 친구는 조용하고 은근하게 웃겼다. 뭐랄까 공대생의 정석 같은 느낌. 과제 막 열심히 해서 냈는데 A+을 못 맞았을 때, 그 A+을 조용히 차지했을 것 같은 친구였다.


그래서 첫 주차 이 친구에게 참 배운 게 많았다.


일기장이라 블러처리 살짝


매거진 첫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일기장을 보면 그간 개발을 어떻게 해왔고 실력이 어느 정돈지 딱 각이 보인다. 무작정 복붙 해놓고 왜 안되지 시전. 플메는 그 과정을 세세하게 확인해 보는 과정이 있었다.


잘하는데 열심히 했고, 열심히만 하는 게 아니라 똑똑하게 개발하려는 게 보여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열심히 하는지 옆에서 관찰하며 배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날은 내가 도움을 준 날도 있었다.



사실 개발만 힘든 건 아니었다. 첫 주차 나에게 가장 난도가 높게 느껴졌던 것은 Git이었던 것 같다. 앱 개발은 Java에서 Kotlin으로 바꿔 개발해 조금의 난관은 있었지만 전 글처럼 과제도 하고 공부도 해서 어느 정도 개념이 잡혀있었기 때문에 할 만했는데 깃은 처음이었다.


간단하게, 프로젝트 협업을 도와주는 저장소 역할


기존에 학교에서 팀 프로젝트를 할 때는 zip파일로 압축해서 카톡으로 보내고 풀어서 추가하고 그랬었는데 여기에선 그래도 명색이 프로그래밍 캠프인데 코드를 카톡으로 주고받을 순 없었다.


깃 계정을 만들고 Repository를 만들고 권한을 부여하고 명령어를 검색해 외우고 다시 보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없는 명령어임에도 그때는 add / commit / push의 개념도 잘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겨우겨우 깃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면 분반끼리 발표를 하고 금주의 픽을 정해 한 팀씩 3분 반 모두의 앞에서 발표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열심히 했으니까 또 이왕 한 거 잘하고 싶어서 발표를 열심히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확신의 내향인인데 이상한 타이밍에 철판을 까는 경향이 있어서 발표는 또 능청맞게 했었다. 다시 생각하니 부끄럽다. 왜 그랬지.


비록 금주의 픽은 못 했지만 가장 집중하고 많이 배운 한 주였던 것 같다.



2주 차


2주 차 땐 1주 차와 동일하게 만들되 서버와 DB를 연동해서 저장하는 것이 목표였다.


내 두 번째 프로젝트는 머리 긴 오빠와 함께 하게 됐었다. 이 오빠의 스타일과 존재감은 가히 압도적이었는데 친화력이 또 엄청 좋아서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2주 차는 전 주와 달리 플메끼리의 협업도 많았지만 다른 팀과 생각을 주고받을 일도 많았다. 에러를 더 많이 다양하게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너네 됐어? 어떻게 했어?



이렇게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으며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풀어나갔다. 이때 mysql 테이블을 만들면서 데이터베이스에서 배웠던 내용들을 비로소 이해하게 됐고 로컬 디바이스에선 삭제했는데 서버에서 다시 내려받을 때 짜릿함을 경험할 수 있었다. 서버 최고.


그 와중에 플메 오빠는 세상 다재다능 했는데 그 재능 중 하나가 그림을 잘 그리는 거였다. 덕분에 어플 디자인이 아주 예뻐서 흐뭇했던 기억이 난다. 중간에 날 그려주기도 했다.


본명은 귤로 대체함


그렇게 서버에 데이터들을 올려보고 또 갑자기 연결이 안 되고 데이터 업데이트가 안 되는 문제들을 차근차근 풀어가며 2주 차를 마무리했다.



3주 차


3주 차부터는 자유 주제였다. 그래서 RN을 사용해 앱을 만드는 팀도 있었고 React를 사용해 웹 사이트를 만드는 팀도 있었고 Unity를 이용해 게임을 만드는 팀도 있었다. 나는 Unreal 엔진을 이용한 TPS 게임을 만들었다.



게임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번 기회에 게임 개발을 해보고 싶어 뛰어들게 되었는데 Unity과 Unreal 둘 다 만져보다 퀄리티가 더 좋게 다가왔던 Unreal을 사용하게 되었다.


언리얼은 사실 너무 무거워서 맵 하나를 여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맵을 우리가 하려는 게임에 맞게 구성하는 것도 또 오래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발이 난해했다. 블루프린트와 C++ 두 가지로 개발할 수 있었는데 C++은 배웠다고 해도 적용하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 한 세월이 걸릴 것 같았고 블루프린트는 처음 보는 방식에, 결국 시각화만 했지 C++처럼 어려운 건 매 한 가지였다.


https://docs.unrealengine.com/


그때만 해도 언리얼이 주목받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자료도 거의 없어 일주일 동안 완성시켜 발표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엔진 때문에 느려진 컴퓨터의 속도에도 적응해 갔고 저 알 수 없는 노드 덩어리들을 잇는데도 익숙해졌다. 다행히 나보다 더 게임을 좋아하는 플메를 만나 이 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그렇게 힘겹던 3주 차가 막을 내렸다.



4주 차


마지막이다!


나는 내가 안 해본 것, 혼자의 의지로 못 해 본 것들을 해보고 싶었고 크로스 플랫폼 또는 iOS 개발을 위해 맥북을 가진 플메를 찾아다녔다.


결국 뜻이 맞는 친구를 만나 RN으로 며칠 개발을 하다 들이닥치는 에러와 조금 성의 없는 에러 로그에 항복하고 Swift로 넘어왔다.


우리는 OCR API를 이용한 글귀 저장 어플을 만들었다. 그때 Swift를 처음 써보았는데 개발한 지 오래되어 가물가물하지만, 안드로이드는 로직은 Java/Kotlin 화면은 xml로 개발하여 번거로운 느낌을 받았다면 Swift는 더 깔끔한 느낌이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오히려 분리된 게 더 좋은가 싶기도 하고 깔끔한 느낌이 아마 아이폰 자체에서 오는 깔끔함이었을까 싶기도 한데 느낌은 그랬다. 조만간 다시 봐야겠다.


사실 마지막 주차쯤 되니 전보다 힘이 많이 빠져서 엄청 열심히 못 했기도 했고 집중력도 좀 떨어져서 쉬엄쉬엄 했던 것 같은데 난 항상 능력자 플메들을 잘 만나서 이번에도 많은 도움을 받았다. 마지막 플메야 미안해. 하지만 너무 재밌었어!






이 활동을 추천해 준 언니의 말대로 코딩 실력은 물론이거니와 네트워킹이 정말 좋았다.


매주 스타트업들의 강연을 들으며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주었고, 열정 넘치는 사람들과 12시간씩 몰입하고 개발하는 경험을 하게 해 주어 매일 성장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비슷한 고민을 가진 다양한 학교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던 시간들, 그 밖에 새벽 3시에 짜파구리를 만들어먹고 저녁에 영화 틀어놓고 개발하던 기억들도 너무 뜻깊게 남았다.


그렇게 꿈같던 한 달이 끝나고 나는 휴학을 했다.


캠프가 끝난 후 강연을 왔던 스타트업들 그때 당시 버킷플레이스, 펍지 등에서 견학 신청과 더불어 인턴 모집을 예정하고 있었고 인턴에 지원할 생각으로 돌연 휴학을 해버렸다.


그렇게 회사 탐방을 다니던 와중 한 스타트업에서 인턴 모집 중이라며 연락이 왔다. 그때 당시 포트폴리오도 제대로 준비가 안된 상태여서 당황했는데 인사 담당자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대표님께서 개발 스택보다는



앞으로 더 배우고 성장해야 하는 단계이니
열정과 성실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며 직접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겠다고 하셨다는 말을 전달받았다. 나는 그 말에 열정과 성실함을 불태울 생각만 가지고 그 말이 얼만큼의 책임감을 요하는지,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 알지 못했다.


인터뷰 날짜를 잡고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캠프에서 뭘 했었는지 질문을 주셨고 나는 차례로 대답했다. 주로 기술에 대한 질문보다는 얼마나 집중해서 프로젝트에 임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출근 가능 날짜를 잡고 머지않아 첫 사회생활의 문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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