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처음으로 희망을 가져다준 과목은 바로 ‘모바일 프로그래밍’이었다.
그동안 영어로 적어 내려 가는 글씨가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지 와닿지 않았는데 이 과목이 그 의미를 찾아주었다.
교수님께서 잘 가르쳐주셨냐 하면 그건 절대 아니다. 이 과목에서 수업시간에 배운 건 ‘모바일 개발을 안드로이드 스튜디오라는 툴에서 자바라는 언어로 개발할 수 있다.’ 딱 그 정도만 배운 것 같다.
그 과목 교수님은 정말이지 당신 입맛대로 평가하셨는데, 가장 힘들었던 건 입버릇처럼 내시는 과제였다.
이거 만드는 거 과제로 해봐라, 선착순.
이런 식이었다. 선착순도 미리 얘기해 주신 게 아니라서 나중에 과제해서 갔더니, 이거 이미 검사 많이 받았어. 하고 점수를 안 주셨다. 과제도 딱 이게 과제다 하고 올려주신 게 아니라 그냥 ‘이 개념 활용해서 알아서 내 눈에 신기하고 창의적인 거 만들어라’가 매 수업의 과제였다. 나참.
근데 재밌었다. 다른 과목도 함께 여러 개 들었지만 제일 재밌었다. 내가 평소 사용하는 어플처럼 원하는 대로 화면이 움직일 때, 왜 이렇게 동작하지?를 몇 시간 동안 못 풀다가 원인을 찾았을 때, 밤새서 과제하고 교수님께 검사받는데 잘했다며 칭찬받았을 때. 내가 짠 코드가 눈앞에 바로 보이고, 그게 누군가에게 신기하고 재밌는 일로 보일 수 있다는 게 참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과목을 얼마나 좋아하고 열심히 했는지 꼭 증명해내고 싶었다. 중간 기말 공부도 열심히 했다. 노란색 노트에 스스로 예상문제들을 뽑아 쭉 적어두고 중요한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모두 답변을 적었고 도서관을 누비며 한참을 외웠다. 교수님이 스치듯 얘기한 개념도 모두 포함했다. 그땐 정말 딴생각 안 하고 오롯이 집중했어서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다. 그래서 결과는 두구두구두구.
A+을 받았다! 내 첫 번째 A+이었다. 진짜 저 때 뛸 듯이 기뻤다. 나도 이제 개발이라는 걸 하네! 그리고 잘할 수도 있네! 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안도감과 인정받았을 때의 짜릿함. 흐으 다시 생각해도 기분 좋다.
그 후로도 모든 과목을 잘하진 않았지만 그때 이후로 개발자라는 직업에 흥미가 생겼고 어쩌면 개발을 직업으로 삼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지, 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같은 활동을 만나게 된다.
겨울방학 때 대외활동을 하고 온 동기가 여름방학을 앞둔 시점, 나에게 활동 하나를 추천해 주었다. 바로 카이스트에서 진행하는 몰입캠프였다.
한 달간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 살면서 하루종일 개발하는 캠프이자, 계절학기로 학점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수업이었다. 개발 실력도 늘었을뿐더러 네트워킹이 너무 좋았다는 후기였다.
이제 막 개발에 빠진 학생이 타학교 학생들과 함께 개발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고, 사실 카이스트는 그때 만나고 있던 남자친구가 다니던 학교여서 자주 볼 수 있는 기회 같아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의도가 어느 정도 불순했다. 반성하겠습니다.
지원 마지막 날 항목들에 채워 넣을 답변을 정리하고 부랴부랴 핸드폰 고정시키고 1분 자기소개 영상도 찍었다.
안녕하세요! 몰입캠프의 ~가 되고 싶은 ~
차마 내용은 부끄러워서 말 못 하겠다. 그리곤 기대하는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또 찾아온 두구두구두구.
그때 거실에서 확인하고 왁! 하고 기뻐서 발을 동동 굴렀다. 가족들한테도 허겁지겁 알리고 남자친구에게도 전화해서 신나게 얘기했던 기억도 난다.
솔직히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도 많았을 텐데 가서 느낀 거지만 다양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뽑은 것 같았다.
대외활동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맞닥뜨린 문제를 능동적으로 헤쳐나갔던 과정 그리고 전 학기 내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개발에 임했는지 등과 함께 이 경험들이 캠프에서 팀원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를 열심히 녹여냈고 그 덕에 붙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역시 배움 없는 경험은 없어.
그렇게 기분 좋은 봄학기를 마친 후 여름방학이 되어 캐리어를 싣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전 가는 차에 올라탔다.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