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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씨 Jan 13. 2023

#4 성적도 실패 건강도 실패했던, 나의 우울 극복기

나의 성적부터 말하자면 1학년 땐 2점대였고 2학년 성적도 3점 초반 언저리였던 것 같다. 과 등수론 아마 하위권이었을 것이다. 학고 정도는 맞아줘야 쓸 때 좀 더 드라마틱한데 아쉽게 그 정도의 깡은 없어서 못 맞았다.


1학년 1학기, 나는 컴퓨터에 재능이 아예 없다고 생각했다.


처음 프로그래밍 입문이라는 파이썬 수업 때 윤년을 어떻게 저떻게 출력하는 과제가 나온 적이 있었다. 맞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틀려있었다. 답을 알고났을 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답이 너무 단순했고 쉬웠다. 근데 틀렸다. 문제는 이건 실수가 아니라 그냥 내가 생각하지 못한 거였다.


이거 하나 생각하지 못하다니, 빨리 다른 진로를 찾아야겠다.


이 생각으로 빡세게 대외활동을 시작했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대외활동만 하며 방황 아닌 방황을 하던 와중 건강이 악화됐었다. 스스로 열심히 채찍질하던 탓에 일이 터진 것이다.




이명이 왔다.


어느 날 침대에 엎드려서 핸드폰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귀에서 희미한 삐 소리와 함께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나면서 귀가 먹먹해졌다. 물 들어간 것 같이 말이다. 당황한 나는 귀를 파보고 막아도 보고 풀어도 보고 했는데 상태의 변화가 없었다. 낫겠지 하며 지내다 일주일이 지나니 진동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귀에 마사지기를 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명과 같이 편두통, 기립성 저혈압, 어지럼증이 동반되어 왔는데 원인은 다름 아닌 스트레스였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게 공주처럼 쉬는 게 답이라고 하셨다. 지금까지 나에게 방학은 계절학기나 학원, 동아리 등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는데 대뜸 쉬라니,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했다. 쉬는데 쉬는 게 아니었다.


내 상태를 밝히면 주위에 걱정을 끼칠까 봐 혹은 이 안 좋은 감정이 누군가에게 전이될까 봐, 속 시원히 말하진 못했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우울감에 파묻혀 살았다. 이것저것 해봤지만 뭘 할지 길이 안 보였고 해커톤 나가서 상도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턱턱 받는 동기들이 너무나 멋있고 부러웠다. 뭐 하나 잘하는 것도 없는데 아프기까지 한 내가 너무 싫어 엉엉 울던 밤이 있었다.


결국 이명은 한 달을 따라다니다 방학이 끝날 때쯤 돼서야 그쳤고, 한 학기를 더 다니다 휴학을 했다.




휴학을 하게 된 데에는 언니의 적극적인 권유가 있었다. 컴공을 먼저 경험했던 언니는 3학년이 되면 올라갈 공부 난이도와 양을 걱정했고 동시에 내 건강을 걱정해 주었다. 그 덕에 나는 휴학을 하게 되었다.


휴학하면서 가족들 그리고 나와 약속했던 것 한 가지가 있었는데, 바로 운동이었다. 이 휴학의 목표는 ‘건강의 회복’이었기 때문에 다른 건 다 제쳐두고 건강을 회복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또 운동과 함께 시작한 건 알바였다. 그럼 휴(休)가 아니지 않냐 할 수 있는데 알바는 내게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보상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때 하루 루틴을 정리해 보면, 아침 10시 반부터 2시 반까지 4시간 동안 알바를 하고 알바하던 일식집에서 주시는 점심을 먹고 집 와서 쉬다가 저녁 먹기 전에 운동을 다녀오고 저녁을 먹고 놀다가 잤다.


이렇게 매일 다니면서 수입이 생기니 삶의 의욕이 생겼다. 침대에서 겨우 나와 한 끼를 겨우 먹고 한숨과 함께 침대로 회기 하던 내가, 내가 번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고 내가 번 돈으로 옷을 사는 게 그렇게 뿌듯하고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시간들은 나에게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주었고 덕분에 나는 사소한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우울하다고 하면 해결책으로 ‘운동을 해봐라, 뭘 해봐라’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아니 그럴 의지가 있으면 내가 안 우울했지’ 하고 원망만 했는데 겪어보니 왜 그런 조언들을 하는지 이해가 갔다. 우울할 땐 움직이는 게 맞다.


만약 우울감에 빠져있는 사람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다면 남들과 똑같은 말한다고 실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너무 이해되는 게 나는 우울했던 기간 동안 부모님으로부터 침대에서 일단 나오라는 얘기를 매일 들었고 그 말을 극도로 싫어했다.


움직일 힘이 없는데, 일어날 용기도 없는데, 운동은 무슨.


그럴 때 나는 주위에 이해해 줄 사람이 있다면 손을 뻗길 권해본다. 내가 너무 우울해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지금 움직일 힘이 없으니 운동이라도 대신 끊어주면 안 되겠냐고. 알바자리 하나라도 알아봐 주면 안 되겠냐고. 그렇게 도움을 청하길 바란다. 그리고 주위에 그런 사람이 보인다면 일어나라고 얘기하는 건 스스로를 자책하게 만들 뿐이니 그런 말 대신 가만히 운동을 끊어주든 산책을 함께 나가든 움직이도록 도와주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적으로 휴학동안 알바와 운동을 병행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은 회복을 했고 새로운 학기를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복학한 첫 학기 드디어 나에게 길을 보여준 과목을 만나게 된다. 자 이제부터 나의 본격적인 개발 스토리를 시작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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