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귤씨 Jan 11. 2023

#3 이렇게 된 이상 다 경험해 본다

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해방감에 놀기 바빴다. 미팅도 나가보고 수업도 빠져보고 술을 왕창 마셔도 봤다. 대학 축제도 거의 다 가봤다.


GRAY~


그렇다고 마냥 놀기만 했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나는 불확실함에 취약했던 사람이라 놀 때도 온전히 즐기기를 어려워했다. 막연한 미래가 불안했고 내가 나아갈 방향이 빨리 정해지길 원했다.


그래서 20살 1학기가 끝날 무렵부터 해보고 싶은 활동을 다 지원해 봤다.




1. 창업동아리


1학년 땐 처음으로 상품을 기획하고 홍보 멘트를 작성하고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내는 경험을 했었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참 재밌는 경험인데, 우리 팀의 아이템은 ‘비타민 소개팅’이었다. 우리 학교와 타 학교 사람들에게 구글 폼으로 성별과 번호를 받고 번호를 출력해서 과자, 비타민 음료와 함께 포장해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처음 구글 폼을 열었을 때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고 네 명이서 준비하기에 벅차 조기마감을 했었다.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었는데 폼으로 받은 백 몇십 명 중 백명만 잘라서 백개만 판매를 했었다. 애초에 그냥 백개만 하자고 했을 때 이러면 안 되지 않냐는 얘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그때 당시 나는 말 잘 듣는 새내기였을 뿐이었다.


1차 판매 후 뿌듯함에 찍어둔 수익금


예상대로 판매가 끝난 후 게시판에는 연락이 안 온다는 게시글이 여러 개 올라왔고 그런 사람들이 점점 모여 피드백을 요구했다. ‘본인의 번호를 누군가 샀는데 연락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아예 판매가 안된 건지’ 답변을 달라는 거였다.


결국 나는 부랴부랴 상황 설명과 더불어 사과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사과문을 게시했을 때 사람들은 댓글로 개인정보 물어내라부터 시작해서 이게 무슨 사과문이냐 등 많은 비판 및 비난들을 남겼다. 그때 처음 느껴봤다.


사이버불링이 이런 건가!


그때 사과문은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피드백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일처리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구나도 깨닫고, 따뜻하게 공감해 주며 조언해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운 감정도 느꼈다.


뭐 덕분에 재판매 결정을 하고 돈도 더 벌어서 15만 원인가로 팀원들이랑 방탈출하러 갔다.


언니 결혼식 이후 처음 정장입은 날


동아리 활동이 끝나고는 동아리 선배 중에 기자분이 계셔서 스타트업 포럼에 초청받아 여러 스타트업 관련 명사분들의 얘기를 듣는 경험도 했었다. 이때 강연에서 봤던 분 중에 나중에 사석에서 실제로 만나 뵀던 분도 계셔서 신기했다.



2. 가치투자 동아리


2학년 때는 ‘돈’이라는 것이 궁금해졌다. 부모님께서는 종종 당신들처럼 은행원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는 워낙 경제/사회 그니까 돈에 대해 무지했던 상태라 은행원이 나에게 흥미로운 직업일지 알기 위해선 뭐라도 시작해야 했다.


그렇게 가치투자 동아리를 하면서, 재무제표가 뭔지 처음 배웠고 기업을 분석하는 방법도, 모의투자 대회도 해봤다. 공부하면서 느낀 거지만 진짜 좀 재미가 없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는 불확실함에 취약한 사람인데 얘는 다 불확실해 보였다. 기업분석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른 정치적 이슈나 상황들로 인해 확 오르고 확 떨어지고, 그 안에 내 돈이 좌우되는 게 뭐랄까 되게 불편했다.


지금도 주식을 간간히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재밌진 않은 것 같다.


그 밖에도 학과 웹운영팀, 교내 사업 서포터즈 등 해보고 싶고 궁금한 것들은 거의 다 해봤다.




이쯤 되면 전 글에선 영상편집이라는 꿈을 갖게 됐다면서 왜 관련 활동을 하지 않았나 궁금할 것 같은데, 영상편집 동아리는 떨어졌었다.


지원 시 기획 파트, 편집 파트 등 파트가 나눠져 있었는데 나는 기획으로 지원했고 서류는 통과, 면접에서 탈락했다. 다른 언니 오빠들은 뼈를 묻겠다며 당찬 포부를 밝힌 데 반해 나는 ‘맡기면 잘할 텐데’하는 해맑은 생각을 가지고 면접에 들어갔고 역시나 떨어졌다.


편집 파트로 지원하지 않았던 이유도 있었다. 입학 전 리더십 캠프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거기서 조별 영상 만들기 과제가 있었다. 우리 조보다 못한 조도 많았지만 훨씬 잘한 조도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또래가 이렇게 잘 만든다고?
얼마나 괴물들이 있는 거야.


그동안 잘한다고 믿어왔던 내 실력을 감추고 싶었다. 그렇게 영상 편집자라는 꿈에 대한 불씨는 차츰 꺼져갔고 다시 새로운 불씨를 지피기 위해, 진짜 뭐 하고 살 지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렇게 대외활동을 주구장창 하는 와중 성적은 어땠을까. 기대하시라 엄청난 성적이 기다리고 있다 :)

매거진의 이전글 #2 하고 싶은 게 생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