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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07. 2020

비싼 학원 못 보내줘도 괜찮아요

흙수저의 고백


굳이 따지자면 ‘흙수저’에 가깝지만 살면서 단 한 번도 부모님을 원망한 적이 없었다. 어릴 적, 난 우리 집이 그럭저럭 사는 집인 줄 알았다. 비좁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몸을 붙이고 자고, 자장면은 특별한 날에만 먹을 수 있고, 아빠가 양복 대신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일이 자연스러웠다. 남들도 다 그런 줄 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한 친구가 “너희 아빠 공사장 다닌다며!”, “너희 집이 무슨 10평이냐?”하고 친구들 앞에서 핀잔 비슷한 것을 줬을 때, ‘아 남들은 다른가?’하고 처음 의문을 가졌던 것 같다.


그렇다고 빚이 있어 쫓겨 다니던 수준은 아니었다. 나와 동생이 초등학교를 입학했을 때부터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은 그야말로 '성실의 아이콘'이셨다. 한 푼 두 푼 모아 남매의 대학 등록금을 모두 내주셨다. 이 역시 당연한 줄 알았다. 등록금을 벌려고 한 학기 걸러 휴학하는 동기를 보며 내가 누리는 안락함이 모두 부모님의 희생에서 왔다는 사실을 통감했다. 나는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성실한 부모덕에 고생 없이 자란 것이다.


고생은 안 했지만 나도 내려놓은 건 있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화가를 꿈꿨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 미대를 진즉 포기했다. 그럼에도 한 번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걸 내 두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가끔 드라마 속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 장면을 본다.


엄마가 도대체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는데!



부모는 자식에게 뭘 꼭 해줘야 할까? 해줘야 한다면 그 적정선은 어디일까.


의도를 했든 안 했든 자식을 낳았다면 책임감을 안고 살아야 한다. 책임감의 유통기한은 언제일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그 기준점을 법적 성인의 나이, 만 19세로 본다. 성인은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나이고 정신이나 육체 역시 나약하지 않다. 그 이상 부모에게 책임지라고 한다면, 그것은 부모의 인생을 통째로 빼앗는 일이다. 물론, 스스로 유통기한을 늘리는 부모도 있다. '그래도 대학 졸업할 때까지는, 취업할 때까지, 장가갈 때까지, 손주 볼 때까지...' 이것은 부모의 역할(의무)이 아니다. (말리고 싶은) 희생이고 사랑이다.


부모의 역할은 자식이 성인이 되기 전까지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물적 정신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최소한이다. 부모가 아이의 교육을 위해 강남으로 못 가도, 더 비싼 과외를 못 끊어주고, 해외여행을 보내주지 못해도 전혀 부모로서의 역할을 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모라면 당연히 더 좋은 것을 자식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건 경제적인 이유, 혹은 그럴 필요성(가치관 차이, 교육의 부재 등으로)을 느끼지 못해서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고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 흔한 말로 운명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부모를 만난 것도, 흙수저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다. 그것을 원망해봤자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부모도 알아야 한다. 자식에게 욕심만큼 해주지 못하는 게 죄스러운 일이 아니며 스스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면 충분하다는 것을.




자식이 들판 위를 뛰노는 소라면, 부모는 끝이 보이지 않는 울타리다. 소 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사료를 챙겨주는 농장주가 아니란 말이다. 마음껏 풀을 뜯고 뛰어놀 수 있도록 해주면 족하다. 천적으로부터 보호해주면 그만이다. 울타리 안이 척박해서 뜯어먹을 풀이 좀 부족하더라도 그것은 부모의 탓이 아니다. 아프리카의 척박한 기후가 아프리카 사람들 탓이 아니듯 말이다. 수 세월 눈비와 태풍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울타리는 그 존재만으로도 경이롭다.


 



*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 <아바매글>의 전체 글은 제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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