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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an 05. 2020

운동할 때 운동화를 신지 않지만

운동화는 있어야 한다


작년 말, 김난도 교수가 '2020 소비 트렌드'를 발표하는 자리에 갔다. 상황에 따라 모드 전환이 빠른 밀레니얼 세대를 가리키는 ‘멀티 페르소나’, 직업적 스펙을 쌓기보다는 스스로의 성장을 추구하는 ‘업글 인간’과 같은 개념이 흥미로웠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이보다 더 나에게 와 닿았던 개념은 ‘생애주기 효과’였다. 해당 연령층만이 가지는 생물학, 사회적 특성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 있단다. 교수님은 그 예시로 10대가 오프라인 쇼핑을 하는 이유(온라인 쇼핑 택배가 오면 부모님께 혼난다)와 60대는 아무리 젊어 보이도록 멋을 부려도 티가 나는 이유를 말했다.      


아무리 60대 여성이 동안 시술을 받고 트렌디한 차림을 해도 젊은 사람들 가운데에 있으면 구별해낼 수 있는 이유는 ‘운동화’란다. 신체 나이가 뾰족구두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다. ‘아!’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 이것은 어쩌면 연령대만의 문제가 아닌, 조금은 더 복잡한 사정이 숨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30대가 된 후로 하이힐을 신은 적이 거의 없다. 물론 신체나이가 60대는 아니겠지만(제발), 내 몸이 불편한 신발을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허리디스크 시술을 받았고, 큰 키에 비해 발이 작고 발목이 얇아 툭하면 발목을 접질린다. 20대까지는 예뻐 보이려고 참고 신었지만 30대가 된 후로는 고통이 욕망을 이겼다. 신발장에 자연스레 운동화만 쌓여갔다.      


위에서 말한 복잡한 사정은 경제적인 부분이다. 지하철로 왕복 1시간 반 거리의 회사를 다닐 때 여름엔 굽 없는 샌들, 겨울엔 굽 없는 부츠, 봄가을은 운동화를 신었다. 하이힐을 신고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는 과정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래의 회사 동료가 한 겨울에 미니스커트에 7cm 넘는 하이힐을 신고 출근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강추위에 미니스커트도 놀라웠지만, 그녀 역시 집이 가깝지 않은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발 안 아파요? 나는 힐 신고 싶어도 발 아프고 허리 아파서...”우는 소리를 했더니,

차 안에서는 운동화 신어서요.”하는 그녀.     


‘아, 차가 있었구나!’


나는 그날도 시리디 시린 무릎을 탁 쳤다!     


자동차도 없었거니와 장롱면허였던 나에게 차로 이동하는 건 선택지에 없었다(지금은 운전을 한다). 선택지가 없을 때, 즉 기본 세팅은 ‘운동화’다. 운동화에게 새삼 고맙다. 맨발 아닌 것이 어디냐.      


재밌는 건, 나는 웬만하면 운동할 때 운동화를 신지 않는다는 점이다. 클라이밍을 했던 지난 3년은 클라이밍 슈즈를 신었고, 요가에 빠진 지금은 맨발로 수련을 한다. 나에게 운동화는, 운동화라는 명칭보다 ‘일상화’나 ‘도보화’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나만 그럴까. 요즘은 운동화를 운동 목적으로 신는 사람이 별로 없는 듯 하다. 러닝을 제대로 하려면 보통 기능성 러닝화를 신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용 신발도 잘 나온다.


목적을 잃었지만 ‘운동화’는 서글프지 않을 것이다. 찾는 사람이 더 많아져 예뻐졌을 뿐만 아니라, 기력이 달리고 주머니가 가벼운 이들에게 부담없는 친구가 되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






* 아무리 바빠도 매일 글쓰기, <아바매글>의 전체 글은 제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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