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밥 Apr 12. 2021

꼰대 짓 vs 갑질

나는 꼰대가 슬프다


살면서 꼰대 짓과 갑질을 당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피하기가 쉽지 않다. 직장생활 3년 이상했다면 꼰대 상사 한 번쯤은 만나보지 않았을까. 밀레니얼 세대 끝자락에 드는 나는, 나이로 따지자면 꼰대에 가깝다. 물론 내 위로 왕꼰대도 수두룩하지만. 그래서일까, 나는 꼰대가 처량하다. 그들은 보통 곁에 사람이 없다. 자처한 면이 크지만 말이다.


꼰대 상사는 정시퇴근을 하려는 후임을 째려보다가 결국 한 소리하고 만다.


"아니, 벌써 퇴근해?"

"일 다 끝내서..."


"본인 일만 끝내면 가는 거야? 옆에 김대리 일하는 거 안 보여? 팀워크가 이렇게 없어서야... 나 때는 말이야, 아휴 됐다. 이러면 라떼니 꼰대니 욕이나 하겠지. 오늘은 다들 여기까지 하자고! 팀워크도 다질 겸 내가 삼겹살 쏠게, 어때?(훗, 나란 리더십)"


불쌍하지 않은가. 꼰대 짓을 하는 심리 저변에는 억울함과 외로움이 깔려있다. 옳다고 믿었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고 싶다. 나보다 일이 먼저, 회사가 먼저라고 충성을 다했던 과거, 혹은 합리화해왔던 자신의 신조가 무가치해져서는 안 되니까. 그러면 지난 세월이 너무 하고 스스로가 가여울 테니까. 


겉으로는 상위 포식자처럼 보이지만 꼰대 역시 을인 경우가 많다. 위에서 쪼아대는 스트레스를 내리사랑 하듯 아래로 흘려보낸다. 당연한 듯 자신의 전철을 밟으라 강요한다. 을이 병정을 괴롭히며 자위하는 식이다. 보통 그 사실은 본인만 모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꼰대가 우스운 한편 처량하다.


갑질은 어떠한가. 꼰대 짓이 얄미운 정도라면 갑질은 혐오스럽다. 둘 다 상하 권력관계에서 발생하지만, 땅콩 회항으로 대표되는 갑질은 누가 봐도 '인간의 탈을 쓰고 어떻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갑질은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동이다. 그렇다고 갑질이 사회적으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사람만 하는 행동은 아니다. 재벌이 부하나 거래처에 자행하기도 하지만, 일부 학부모가 교사를 상대로, 아파트 입주민이 경비원을 상대로도 하는 게 갑질이다.


이처럼 갑질은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태어날 때부터 갑으로 살아와서 그게 갑질인지 모르는 A, 약자를 깔아뭉개면서 상대적인 우월감을 통해 바닥 친 자존감을 회복하려는 B. 둘 다 악질이다. 상황이야 어쨌건 더불어 사는 세상에 살면서 인격 수양을 하지 않은, 자신의 인생에 무책임한 죄가 크다.


꼰대 짓은 개인적이지만 갑질은 보다 구조적인 문제다. 보통 업무관계에서 발생하는 갑질은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때문에 이뤄진다. '너 아니어도 일할 사람 많아'의 상황에 놓이면 우린 언제든 갑질을 당하기 쉽다. 갑은 자신의 지위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을병정들의 뼛골을 쪽쪽 빨아먹은 뒤 껍데기만 퉷! 뱉어버린다.


개그맨 김대희가 '꼰대희'라는 캐릭터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꼰대는 어쩌면, 한 때 잘 나가던 우리 아버지 모습 같다. 별꼴 다 보는 세상, 시대착오적인 행동은 분노를 일으키기보다는 오히려 웃음거리가 된다.


반면, 갑질은 여전히 웃음 소재로 삼기 힘들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비난이 쏟아질 게 분명하다. 가장 깊숙한 곳에 감춰져 있던 인간의 폭력성, 그 누구도 판도라 상자를 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그것이 표면에 드러나는 순간을 목격할 때가 있다. 울컥, 하고 목울대를 타고 올라오는 용암 같은 분노를 느껴보았을 것이다. 아주 작은 양심, 아무리 삭막해도 그것만은 지켜갔으면.



글을 쓰고 나니 내가 무슨 꼰대 옹호자처럼 느껴지는데, 절대 아님을 밝힌다. (보통 꼰대는 자기가 꼰대인지 모른다고)






내일, 캐리브래드슈 작가님은 '신입 첫 출근'과 '경력 첫 출근'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마는 원래 감자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