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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돌이빵 Apr 10. 2021

고구마는 원래 감자였다

멀 듯 가까운 우리 사이


차디찬 겨울이 가고 봄을 알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해님의 유혹에 넘어가 일찍 피어버린 벚꽃은 질투 난 비구름 때문에 벚꽃 엔딩을 고했지만, 봄의 확산은 막지 못했는지 주변이 고운 빛깔로 물들어간다. 하지만 겨울이 끝나서 아쉬운 것도 있다. 바로 저 멀리서도 냄새 때문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갓 구워져 나온 군고구마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고구마를 호호 불어가며 껍질을 벗겨 입안에서 요리조리 굴려 먹다 보면 어느새 몸이 뜨끈뜨끈해진다.



고구마는 감자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길거리 음식에 군감자는 없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통감자는 있어도 통고구마는 또 없다. 감자를 갈아 녹말을 걸러내 구워낸 쫀득쫀득한 감자전과, 고구마를 통통 썰어 밀가루와 계란옷을 입혀 부쳐낸 고구마전은 우위를 비교할 수 없다. 한식에서 고구마는 맛탕, 고구마전, 고구마튀김 같이 독립적인 요리로 자리하지만 감자는 된장찌개, 고추장찌개, 닭볶음탕 등 여러 가지 국, 찌개에 들어가서 감초 역할을 한다.



과자 가판대의 감자칩은 양파 맛, 양념치킨 맛, 심지어 육개장 사발면 맛 까지 여러 가지 맛을 뽐내며 진열되어 있다. 그에 반해 고구마칩은 한 가지뿐이다. 고구마칩에서 육개장 사발면 맛이 난다면 끔찍하겠지만 매운 닭갈비를 먹을 때 고구마가 입에 들어오면 건빵 먹다 별사탕 찾은 기분이다. 매운 세계 사이의 한 줄기 빛이랄까.


그러나 프링글스는 감자칩이 아니다.


프링글스는 감자 모양으로 가공한 감자향 밀가루 칩이다. 심지어 영국에서는 프링글스가 감자칩이 아니라는 판결까지 나왔다. 영국에서는 감자칩에 17.5%의 판매세가 부과되지만 식품으로 분류될 경우 판매세가 면제되기 때문이다. 프링글스 제조사 P&G는 2008년 영국 국세청을 상대로 승소하여 엄청난 금액의 세금을 절약했다.



유럽에서는 종종 고구마튀김을 판매하는 것을 봤지만 국내 패스트푸드점에서는 감자튀김이 국룰이다. 햄버거를 먹다가 갓 튀겨내 뜨겁고 기다란 감자튀김을 케첩에 쏙 찍어 먹다가 콜라 한 입 마시면 입안이 새로고침 된다. 감자튀김을 흔히 '프렌치프라이'라고 부르는데, 프랑스 음식이라서 일까? 1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들이 벨기에 사람들이 만드는 감자튀김을 먹게 되었는데, 벨기에 남부는 프랑스어권 문화권이었기에 프랑스 음식으로 오해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리나라가 단일 언어 국가라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포테이토, 스위트 포테이토라는 이름처럼 둘은 제법 가까운 사이다. 김동인의 소설 '감자'는 사실 고구마였다는 걸 아시는가? 아직도 시골에 가면 고구마밭을 감자라고 부르는 분들이 계신다.


옛날에는 고구마를 달콤한 저, 감저(甘藷)라고 불렀고 북쪽에서 온 감자를 북감저(北甘藷)라고 불렀다. 감저는 둘에 모두 쓰이다가, 감자로 변해 결국 감자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나에게 둘 중 어느 하나에 손을 들어야 한다면 여름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시원한 맥주엔 역시 감자튀김이요, 차디찬 겨울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군고구마라 하겠다.


(참고 자료)

음식이 상식이다 - 윤덕노

음식에 담아낸 인문학 -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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