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부단한 나도 리더가 될 수 있을까?
"저는 어떤 프로그램을 할 때 '자신 있다. 이건 해낼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한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나 늘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 혼자 되뇌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결과가 됐든 받아들이고, 내가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라는 생각입니다."
2020년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 연말 시상식을 돌려가며 보다가 '이분'의 수상소감에서 채널을 멈췄다. 우연히 듣게 된 이 수상소감은 무한 채널 돌리기를 하며 널브러져 있던 내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나는 머리 위에 느낌표가 뜬 것 같은 얼굴을 하고 두 눈을 또렷하게 떴다. 흐릿하게 품고 있던 케케묵은 고민의 초점이 선명하게 맞춰지는 '결정적 장면'이었다.
디자인 실장으로 진급하고 생긴 고민이 있다. 그건 바로 확신에 대한 문제인데, 일을 진행할 때 확신을 가지고 추진력 있게 끌고 나가는 힘이 없다는 것이다. 신입, 대리, 과장까지는 괜찮았다. 결정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 나는 그 결정에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꽤나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직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경력과 비례해서 올라가야 할 자신감은 점점 하양 곡선을 그리며 내려왔다.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나온 현빈의 명대사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말이라도 들으면 한없이 작아진다. 나름 최선이라고 생각해서 내린 결론이지만 '네 확실합니다'라고 대답하기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름대로 안전장치를 두고 하는 대답은 고작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도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확신을 가질까? 저런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의 확신은 어떤 모습 일까.
프로 결정러 - 모 인테리어 회사 대표 J 씨
저도 확신이 없어요. 결정을 할 땐 항상 두렵고 벼랑 끝에 서있는 기분이에요. 하지만 결국 내가 해야만 하는 결정이라면 '모두를 위해서 지금 이 시점에 내가 결정해야 한다'라는 마음으로 수없이 연습한 끝에 지금처럼 잘 결정하는 사람이 된 거예요. -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서 내리는 '벼랑 끝 확신'
프로 추천러 - 프리랜서 영어강사 L 씨
저는 무언가 확신이 서면 주변 사람들한테 부담스러울 정도로 추천해요. 저도 처음부터 확신이 있는 건 아니에요. 시작은 그냥 하는 거예요. 그리고 시작했다면 후회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요. 어차피 잃을 게 없다는 생각으로 말이에요. 'Why not? better than noting!' - 밑져야 본전. '일단 하고 보는 확신'
인생을 살면서 확신을 가지는 순간들이 얼마나 있을까?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불확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중 100퍼센트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걸까? 확신에 차 보이는 사람들의 결정도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확신'이 아닌 '소신'에서 시작된다.
서두에 언급했던 글이 누구의 수상소감인지 눈치챘는가? 수상소감의 주인공은, 공중파에서만 16번째 연예대상을 수상하고 '방송 3사 프로그램 10년 진행'이라는 기록을 세운 대한민국 최고의 MC 유재석 씨이다. 유느님이라는 호칭이 찰떡같이 어울리는 그의 말속엔 확신보다는 소신이 가득했다.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였지만 그의 겸손함은 오히려 단단한 자신감으로 보였다.
내 마음속에도 작은 용기가 생겼다. '이게 맞아. 나만 믿고 따라와'는 못하더라도 '책임은 내가 질게.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라고 말하는 실장은 될 수 있다는 확실한 용기.
고질적인 우유부단과 결정장애를 안고 오늘도 우왕좌왕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남의 눈에 기준을 둔 '확신' 보다는 나를 기준으로 세우는'소신'을 지키는 쪽은 어떠신가요?
내일, 곰돌이빵 작가님은 '감자'와 '고구마'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