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무래기시절, 수업이 끝나면 속셈학원에 가기 전에 끼니를 떼워야 했다. 지금이야 편의점에 가면 컵라면에 코를 박고 먹는 초등학생들로 북적이지만, 90년대만해도 편의점은 흔치 않았다. 선택지는 단순했다. 떡볶이에 튀김을 추가하느냐, 순대를 추가하느냐
나는 열에 아홉은 튀김 쪽이었다. 그중에서도 당면을 밥알처럼 잘게 다져 속을 채운 뒤 아무렇게나 튀겨낸 '못난이 만두'는 최애. 만두답지 않게 주먹밥을 연상시키는 투박한 셰입, 겉바속촉의 반전미 넘치는 질감을 어느 누가 거부하랴. 침이고이도록 새빨갛고 달착지근한 떡볶이 국물에 못난이 만두를 으깨어 포크로 퍼먹으면 산해진미가 부럽지 않은, 초딩의 맛이었다.
나는 학교 후문을 나와 코너만 돌면 보이는 '진분식'의 VIP단골이었다. 진분식에서 직진으로 서른 걸음만 옮기면 학원이 있으니 동선도 완벽했다.
4학년이 되던 해 겨울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친구 둘과 아지트로 발걸음을 옮겼다. 꽁꽁 언 손을 비비며 드르륵, 진분식 미닫이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후끈한 김이 얼굴을 덮쳤다. 쌀떡볶이가 적당하게 졸았다는 암시였다. 타이밍이 좋지 않으면 이제 막 사각팬에 두꺼운 쌀떡을 넣어 양념이 제대로 배지 않았을터이니 운수가 좋은 날이다.
못난이 만두도 추가해주세요
마침내 고요하게 놓인 쌀떡볶이 한 접시. 천원이라는, 초딩에게 다소 버거운 가격은 식사의 품격을 더했다. 300원짜리 떡꼬치가 간식일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분식 떡볶이는 유독 빨갰다. 주홍도 아니요, 다홍도 아닌 완벽한 장미의 빨강이었다. 엄지손가락 길이에 적당하게 도톰한 쌀떡은 쫀득쫀득 찰기가 있었다. 좋은 떡을 쓰는 게 분명했다. 떡볶이와 양념은 겉돌지 않고 살갑게 어우러졌다. 마치 '나는 태초부터 빨간떡이었다'라고 외치듯 위풍당당했다.
친구와 나는 하나 남은 못난이 만두를 정교하게 반으로 갈랐다. 아무리 절친이라 해도 떡볶이 국물을 끼얹은 못난이 만두는 양보가 불가능한 영역이었다.이미 멜라민 접시에 비닐이 씌워있어 설거지가 필요없겠지만 양념소스까지 알뜰하게 닦아먹었다.
최근에는 콧바람 쐬듯, 가끔 밀떡을 즐긴다. 어릴 적 당연했던 쌀떡볶이와 달리 밀떡은 비교적 성인이 된 후 접했다.
쌀떡이 쫄깃하다면 밀떡은 졸깃하다. 씹었을 때 어금니에 착 감기는 쌀떡이 '은근한 포옹'이라면, 단면이 깔끔하게 끊어지는 밀떡은 '순간의 쾌감'이다. 물컹하는 사이에 하나가 둘로 분절되는 것이다. 밀떡은 마치 표면이 코팅되어있는 것 같다. 아무리 졸여도 반질반질했고 쌀떡처럼 양념이 배지 않았다. 그러니 밀떡은 보통 국물맛으로 밀어붙인다. 국물 떡볶이가 대부분 밀떡인 이유다.
사실, 밀떡이라는 이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두꺼운 면에 가깝지 않는가. 어쩌면 고추장 파스타라 불러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일까, 청*다방에서는 가느다란 밀떡을 자르지 않고 우동 면발처럼 길게 나오는데, 그 모습이좀괴이하게 느껴진다. 요즘 유행하는 로제 떡볶이도 기본값이 밀떡이다. 퓨전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가끔 별미로 즐기지만 그 녀석들을 '떡볶이' 카테고리에 넣기란 영 탐탁지 않다.
아마도 진분식이 길들인 내 입맛 때문이리라. 어릴 적 입맛은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는 법이니까. 평생에 걸친 확고한 미각의 기준이 되기도 하니까.
최근 화끈하고 얼얼한 마라 맛에 빠져 남편과 주 3회 집앞 '마라탕'집을 찾는 만행을 저질렀다. 술안주로 찰떡인 마라탕집에는 웬걸, 교복을 입은 여중고생들로복닥거렸다. '요즘 아이들은떡볶이 대신 마라탕을 먹는구나.'진기한광경에 우리는 격세지감을 느끼며칭따오가찰랑이도록잔을 부딪쳤다.
그들은 성인이 되면 '마라탕에는 양고기가진리다', '무슨 소리냐소고기다','옥수수면을꼭 넣어야 한다', '중국당면이 원조다', 진지한 표정으로 토론을 벌이지 않을까.
내일, 캐리브래드슈 작가님은 '당근 판매자'와 '당근 구매자'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