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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Mar 22. 2023

완벽주의 말고 완성주의

지치지 않고 글을 쓰는 비결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p.213



어느 날, 6년 차 편집자 H가 검은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자신도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고, 편집 일도 매력적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고 싶다는 그녀의 고백이 반가웠다. SNS에 올린 짧은 글만 봐도 H의 필력은 빠지는 편이 아니었다. 나는 브런치에 글을 올리다가 첫 책을 낸 나의 사연을 풀며 응원을 보탰다. H는 저자를 발굴하려고 수시로 들여다본 브런치를 직접 활용할 생각은 못 했다며 바로 브런치 작가 신청부터 해야겠다고 말했다.

     

두 달쯤 흘렀을까, H와 상암동에서 점심을 먹는 자리였다. “글은 잘 쓰고 있어?” 하는 나의 물음에 우선 목차부터 정리하고 있다고 했다. 편집자다웠다. ‘그래, 책으로 내려면 기획안을 잡고 목차부터 꾸려야 원고 쓰기도 좋고 산으로 가는 흐름을 막을 수 있지.’ 나는 H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었고 브런치에 그녀의 첫 글이 올라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그로부터 석 달, 육 개월이 흘러도 그녀의 첫 글은 올라오지 않았다. 카톡을 나누던 중 생각이나 물었다.      


글은 쓰고 있어?브런치에서 못 본 거 같아서

“아, 몇 꼭지 쓰긴 했는데 막상 올리려니 부끄럽네. 퇴고도 더 해야 할 거 같고.”     


3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H의 글을 만나지 못했다.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었다. 편집자로 일하면서 내로라하는 글쟁이들의 글을 수없이 읽었을 테니까. 그녀의 기준이 얼마나 높겠는가. 자신의 글이 초라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H의 글 또한 충분히 매력적이었고 그 글은 묻히기에 아까웠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모습이 나는 안타깝고 아쉬웠다.     


에릭 와이너의 말장난 같은 문장을 나는 여러 번 곱씹으며 나름의 해석해 봤다.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을 누리면, 즉 작은 것에도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유지하면 ‘충분히’가 떨어져 나간다는 말. 충분하지 않아도 ‘좋다’는 뜻 아닐까. 그러니까 ‘충분히’에 찍혀있던 방점이 ‘좋다’로 이동하는 것이다. 충분하지 않아도 좋은 경지에 이르는 것.     


지치지 않고 글을 쓰려면 ‘충분히 좋음’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매일 쓰는 글은 날씨와도 같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기분까지 산뜻한 날이 있고, 흐리고 습도마저 높아 온몸이 땅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날도 있다. 글쓰기 신이라도 몸속으로 들어온 양 술술 써지는 날이 있고,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엉망진창인 날도 있다.


매일 날씨가 맑지 않다고 구시렁거릴지언정 하루를 포기하지 않는다. 우중충한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면 ‘오늘은 커피가 더 맛있네.’ 정신 승리하고, 기온이 너무 높아 숨이 턱턱 막힐 때면 속도를 줄여 느긋하게 걸어본다. 글이 마음에 차지 않아도 때로는 ‘오늘은 흐린 날이구나, 내 글이 충분하지 않아도 좋아’라는 만족도 필요하다.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계속 쓸 수 있다. 글이 안 나오는 이유는 잘 쓰고 싶은 욕심과 남들의 평가를 지나치게 신경 쓰는 자의식 과잉 때문이다. 써보면 안다. 서운할 정도로 남들은 내 글에 관심이 없다는 것. 남의 시선이 두려울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은 오히려 쓰는 사람에게는 축복이다.     


애초에 완벽한 글이 가능할까. 헤밍웨이라고, 무라카미 하루키라고 본인의 글이 완벽하다고 생각할까. 글은 완성되는 것이지 완벽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마감 순간까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완벽한 글’이라는 말은 ‘완벽한 사람’처럼 실재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글과 친하게 지내려면 관대함과 엄격함의 밀고 당기기를 잘해야 한다. 더 나은 단어와 표현을 찾는 집착은 질기고 엄격해야 한다. 하지만 탈고를 마친 글에는 관대함도 필요하다. 마침내 놓아주어야 하는 글까지 인상을 찌푸리며 도끼눈을 뜰 필요 없다. ‘오늘의 내 글은 이런 모습이구나, 이 정도도 괜찮아, 충분해.’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자. 미련을 버려야 다음에 좋은 사람을 만나듯, 글도 그러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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